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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Aug 10. 2023

피랑

통영에 처음 간 것은 2015년 2월 말 아이들 봄방학 때였다. 막 겹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통영은 그때도 지금처럼 무척 아름다웠다. 그때 숙소를 동피랑 벽화마을에 잡았었다. 아름다운 마을을 산책하고 남양산 공원에 오르고 윤이상 기념관에도 걸어갔다 오고 중앙 시장에서 회도 먹고... 하루는 배를 타고 소매물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남편의 통영 한 달 살이 마지막 날 하루 내려간 것이 두 번째, 어제 잠시 반나절 다녀온 것이 세 번째다. 아마도 첫 기억이 강렬하고 좋아 계속 찾고 또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 통영에 갔을 때 '피랑'이라는 말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동피랑, 서피랑. 한자인가? 물결을 뜻하는 한자 '랑'인가 싶었다. '피랑'을 사전에서 찾아보고 '1. 절벽의 순우리말 2. 벼랑의 순수 우리말'이라는 말에 몇 번이고 다시 소리 내 읽어봤던 기억이 난다. 바다가 들어와 만들어진 항구, 강구안을 등에 지고 서면 정말 절벽처럼 깎아지른 서피랑과 동피랑이 좌우로 솟아 있다. 또 서피랑 꼭대기에는 통영성의 서포루가 통영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였을 과거의 하루를 떠올리게 해 준다.


피랑처럼 자꾸 입안에 맴도는 고운 우리말들이 참 많다. 안다미로, 희나리, 시나브로, 미리내, 모꼬지 같은 말들은 조금 낯설다 치더라도 바투, 얼개, 갈무리, 터울, 우수리, 여울 같은 말들은 참 흔하게 쓰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 사이에 이런 말들이 통 쓰이지 않는다. 아쉽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개'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심한 정도를 표현하는 말은 '굉장히, 하늘만큼 땅만큼, 까무러칠 정도로, 엄청나게, 감당하지 못하게, 견딜만하게, 넘치도록... '처럼 많고도 많은데 오로지 '개' 하나만 남아 버렸다. 다양하고 풍성한 낱말과 꾸미는 말들을 사용하면 내 마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쉽다.


피랑, 피랑. 자꾸 읽다 보니 입안에서 가벼운 바람이 부는 듯 기분이 상쾌해진다. 고운 말들은 이렇게 기분을 좋게 한다. 물론 피랑에는 통영에서의 행복한 추억이 담겨 더 그러하겠지만, 그래도 고운 우리말들을 많이 찾아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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