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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 아빠 Nov 05. 2019

회사와 분위기 좋게 아빠 육아휴직 내는 방법

- 육아휴직을 위한 군불을 때는데 4개월이 걸렸다

아내의 배가 제법 불러온 2016년 초겨울, 큰 딸도 제법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내년 봄이면 새식구를 맞이한다는 기대감이 가득할 때였다. 한편으론 둘째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 큰 딸 육아 때처럼 아내가 많이 고생하는 수밖에 없는가, 사람을 써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때, 어디서 알고 읽고 생각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이 아빠도 육아휴직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관련 내용을 검색하고, 포털 사이트에서 무료 노무상담을 통해 기간, 급여, 조건 등 제반 여건을 모두 확인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먼저 제안했다. "내가 육아휴직을 낼게. 둘째는 백일때까지 함께 돌보자"

시작은 그랬다. 일단 백일 전후까지 2달을 낼 계획이었다. 2달이 1년이 되고, 1년이 2년이 될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차차 이야기 하겠지만, 나는 2년간 육아휴직을 내고 아내와 두딸을 키우고 현재 복직한 40줄에 접어든 사무직 아빠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4개월간 동유럽 여행을 했고, 제주도 한달살기, 오키나와 반달살기 등 집에서 힘겨운 육아에 지쳐 바깥을 떠돌며 육아 우울증과 싸운 경험을 했다. 남들은 "와~ 아빠가 육아휴직을 내다니, 대단해요!", "정말 가족들이 좋아했겠어요!" 등등 칭찬과 부러움이 자자하지만 실상은 하루하루 전쟁처럼 투닥거리며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불량 아빠다. 여하튼 이런 질문과 관심의 시발점은 보통 이거다.


"회사에선 괜찮았어요? 아빠가 육아휴직 내도 뭐라 안해요?"


내가 다니는 회사는 창립 이후 단 한 명도 육아휴직을 낸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여직원도 3개월 출산휴가도 미안해하며 내는 분위기였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며 연배가 비슷한 선후배 동료 직원에게 슬쩍 얘기를 꺼내면 모두들 "그게 될까?"라고 난감해했다. 몇 백명 근무하는 대기업도 아닌데, 너 하나 육아휴직으로 빠지면 그 업무부담과 피해는 다른 직원들이 보는거 아니냐며 극렬한 반대의사를 표시한 사람도 있었다.

결국 아내의 배가 슬슬 불러오는 시점부터 나는 앓는 소리를 시작했다. 와이프가 임신 안정기에 들어서니 슬슬 골반이 아퍼요, 고질적인 디스크 문제로 허리도 끊어질 것 같다네요, 큰 딸 임신 출산 때도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걱정이에요... 실제로 일어나고 어느 정도 사실인 사안들은, 마치 나는 곧 신병훈련소로 끌려가는 군미필 청년마냥 울상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회사라는 곳이 일로 만나서 하루에 8시간 이상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공간이라지만, 그렇게 인접한 자리에서 비슷한 공기 마시며 생활하는데 누군가 우환이 있다하면 그 사람의 이미지로 각인이 된다. 육아휴직 신청을 위한 나의 전략은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인 직원'으로 공인 받기였다. 그리고 내 의도는 나름 먹혀들었다. 둘째 출산 예정일은 4월 중순이었고, 나는 5월 중순부터 2개월간 육아휴직 신청을 하게 된다.

"와이프 몸조리라도 편히 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2달만 육휴 다녀올게요. 죄송합니다!"

3월중순에 부서 선배 직원들의 마음을 사고, 자연스럽게 소속 부서장의 허락을 받고, 당당하게 인사과로 향한다. 군불을 오랫동안 땐 덕에 관련 내용을 알고 있는 인사부장도 "그래, 가정이 먼저지, 회사가 먼저겠냐?"하며 잘 보살펴주라고 덕담도 건넨다.

근로기준법에 육아휴직은 직원이 신청하면 회사가 거부할 수 없다. (물론 소규모 사업이거나 근속기간이 1년이 채 안된다면 좀 예외이긴 하다) 그렇다고, "전 법에 정해져있는 권리를 사용하는 겁니다!"라고 큰소리치며 육아휴직 나갈 분위기가 아닌게 우리나라 회사들이다. 협의하지 않아도, 허가를 득하지 않아도 되는 육아휴직을 참으로 조심스럽게, 욕 안먹게끔 신청하느라 근 4개월을 연기하며 출퇴근을 한 셈이다. 회사 최초 육아휴직 신청자였기에 그랬겠지만, 내 덕에 후배 직원들은 앞으로 좀 수월하게 육아휴직을 낼 수 있으리라(이러한 내 노고를 알긴 아는지...)

2개월 급여 감소하는거야, 인생 길게 놓고 보면 큰 돈 아니지 않나? 아내는 예술 계통 프리랜서라 큰 딸 출산 이후 일을 줄여가다가 사실상 전업주부로 생활한지 4년이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갓난 아이 두고 큰 애 유치원 등하원하고 몸상할까 걱정해서 낸 육아휴직인데, 출산이 가까워지고 현실화되자 아내는 더 파격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바로 '제주도 한달살기', 6살 큰딸과 50일이 갓 넘은 둘째를 데리고 떠나는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결혼 후 매년 한번 이상 제주도는 휴가 혹은 주말껴서 단기로 다녀왔던 터라, 제주도 한달살기 진행은 숙소를 함덕 쪽으로 계약한 후 술술 추진되었다. '그래, 육아휴직도 냈는데 좀 더 의미있게 보내야 하지 않겠나. 이왕 몸조리하고 가족들 챙기는거 제주 한달살기도 나쁘지 않겠다' 내가 육아휴직을 결정하고 추진하기까지 고민과 뜸들이는 시간이 많았다면, 아내의 한달살기 추진은 꽤나 단호하고 과감했다. 회사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와이프 출산후 건강이 걱정된다더니, 네식구 제주도 가고 팔자 좋네~ 라는 비아냥 듣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개월로 선을 긋고 시작한 육아휴직이, 제주도 한달살기를 하며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낭만적이고 추억 가득한 제주 함덕의 한달살기를 꿈꾸고 출발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6월의 제주는 바람도 차고 갓난아이와 외출은 쉽지 않았다. 아내도 몸이 시렵다며 숙소에서 쉬는 시간이 길어지니, 그저 공간만 바뀐 신생아 육아로 채워졌다. 큰딸과 간간히 산책을 하고 물놀이를 했지만, 수시로 먹고 자고 기저귀 갈기를 반복하는 둘째딸을 돌보랴 한달살기 숙소 근방을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그런 마음이 든 것이다. '이대로 육아휴직을 끝내자니, 너무 무의미하고 아쉬운걸?'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 전 어느날, 사무실로 전화를 한다. 육아휴직 1년 채우겠다고 말이다. 공식적인 이유는 아내의 건강 회복이었지만, 내 안에는 '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육아휴직으로 1년을 보내고, 나는 다시 또 1년을 추가로 신청한다. 처음 2개월 신청할 때가 어려웠지, 그 이후로 연장신청하고 재신청할 때는 뻔뻔했다. 회사에선 "쟤 저래놓고 복직 안하고 퇴사할 것 같아" 라고 말도 돈 것 같다.


지금 육아휴직 2년을 마치고 복직한지 5개월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그렇게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회사 분위기를 만들어가던 심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주중 주말 구분이 없는 육아의 세계에서, 큰딸의 유치원, 어린이집 스케줄이 일상생활의 기준이 되고, 매달 15일마다 육아휴직수당을 신청하며 '아, 이제 복직까지 얼마 남았지?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를 곱씹던 그 지리한 일상이, 방금 극장에서 2시간동안 보고 나온 영화처럼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처음엔 회사와 문제만 없이 잘 진행되면, 아내의 몸조리도 돕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란 나의 망상이 깨지기 시작한 그 지점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군불을 때워가며 분위기 조성한 후, 용기있는 선택이라 주변의 시기와 부러움을 받아가며 출발한 육아휴직은, "이럴거면 왜 휴직 냈어? 그냥 회사로 돌아가!"부터 "우리 이혼하자. 너를 선택한 내 인생이 실패다"까지 각종 푸닥거리와 다툼도 많았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물론 다시 없을 아름답고 가치있는 추억과 경험도 많았다. 그 이야기를 하나 둘씩 풀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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