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 아빠 Nov 06. 2019

육아우울증은 아빠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 꼬박 2년을 아이와 붙어서 살면서 (그래도 잠잘땐 잠깐씩 자유로웠네)

큰딸이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나는 제법 착한 아빠였다. 좋은 아빠라고 할 순 없어도, 못된 아빠는 아니었다. 직장 외에 별도의 취미나 사교활동을 하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았고, 주말엔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냈다. 의도치 않게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제일 컸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의미와 무의미를 넘나드는 하루 일상을 마치고 돌아오면 큰딸은 그 급여활동이 의미없진 않다는 걸 증명해주며 사랑스러웠다.

둘째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을 내고, 온전히 가족과의 일상만 남게 되자 무언가 달라졌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없어지자, 내 가족이 모두 '일'이 되어버렸다. 육아도, 살림도, 특히 신생아의 리듬에 맞춰 산다는 건 '후딱 치뤄내고픈 과업'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계획하는대로 원하는대로 순탄하게 아이는 일상을 보내지 않는다. 때론 한시간을 안고 달래도 잠들지 않고, 배고픈 건 맞는데 젖병을 물지 않고, 기껏 배불리 먹어놓고 시원하게 토하기도 잦았고, 어쩌다 변비라도 걸리면, 아프기라도 하면 하루는 순식간에 망가졌다.

대학친구의 와이프가 한창 돌을 지나고 있는 아이를 키우며 한 말이 떠오른다. "하루종일 아이 잠드는 시간만 기다려요. 그런 나한테 너무 화가 나고,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데, 쉬고 싶고 매시간 버티는 심정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래요"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커다랗다 할 지라도, 말 안통하는 아이에게 24시간 묶여있는게 온전히 행복할 리 없다. 출퇴근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가족을 마주할 때의 소소함이, 전업육아로 들어서자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바라보는 것보다, 차라리 설거지, 빨래, 청소가 더 마음이 가벼웠다.

출산한 아내가 몸조리를 하고 있었고 경력단절이 된 터라 딱히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기에, 우리 부부는 함께 아이를 볼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았고, 서로가 아이에게 하는 세세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입장에선 아내가 출산 후 지친 체력과 건강을 회복하길 바라는데 일상 속 습관들이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서 못마땅했고, 아내는 기껏 육아휴직하고 집에 있으면서 과묵하고 어두침침하다못해 짜증이 넘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처음 육아휴직 시작한 시점에선 경제적인 측면의 스트레스도 심했다. 내가 육휴를 시작한 2017년엔 고용보험에서 주는 실질적인 육휴 급여는 75만원. 급여가 주니 지출도 줄여야 한다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나가는 돈을 아낄 수 없으니, 나 먹는 것부터 돈을 아꼈다. 그 덕에 술을 끊기도 했지만, 금전적인 초조함과 불안감에 마음도 옹졸해지고 몸무게가 10kg 이상 줄었다. 당시 개봉한 영화 '군함도'에 나오는 강제징용된 조선인의 몰골을 한 남편을 보며, 아내는 "차라리 돈도 쓰고 운동도 하며 당신 시간을 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돌봐줄 순 없겠어?"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난 그런 여유가 없었다. 둘째를 돌보는게 힘들고 예민해지니, 수시로 아내와 다퉜고, 큰 딸에게 걸핏하면 버럭 짜증을 냈다.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긍정적인 목표를 두고 시작한 육아휴직이, 모두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옥 터널을 견디며 흘러가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둘째가 200일로 다가설 무렵, 아기띠로 들처매고 큰 아이가 친구들과 뛰노는 놀이터를 서성이며 동네 아이엄마들이 떠는 수다를 엿들으며 저녁내음을 느끼곤 했다. 모두들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 이모/고모들이었고, 수다를 주도하는 재미있는 엄마가 있고, 주로 못마땅한 남편 흉을 보며 즐거워했고, 왠 이상한 아저씨가 갓난 아이를 안고 놀이터 한 구석에서 피식거리는 모양새였다. 가슴 속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창피하지만, 저들 사이에서 나도 낯설지만 유쾌한 대화에 끼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그렇게 어설픈 나들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저녁무렵 집은 실내등이 있어도 어두컴컴하게 느껴졌다. 아마 내 마음 상태가 그런 채광이었으리라.


만약 누가 육아우울증 극복 방법에 대해 묻는다면, 신박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는 없다. 다만 몇 가지 팁이 있다면 바로 '소통'과 '소비'를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우선 '소통'... 나에게 초반 육아휴직 기간동안, 대화 다운 대화를 나눌 대상은 아내 밖에 없었고, 그런 아내와는 할 얘기 중 절반은 싸움으로 번졌다. 어정쩡하게 말이 통하는 큰딸에겐 되지도 않게 논리를 써가며 다그치고 혼내니 큰딸은 논리고 나발이고 늘 화가 나 있는 아빠에게 질려버렸다. 많은 일반적인(?) 가정에서 육아로 인한 체력과 정신적 부담이 온전히 엄마 몫이 되어있는 실정이다. 그 엄마가 대인관계가 서툴고 교류가 어색하다면 그처럼 힘든 상황도 없다. 그런데 늦게까지 야근하고 집에 온 남편이 "나도 힘들어. 나도 다 우리 가족 먹여살리려고 이렇게 고생하며 회사에서 일하잖아! 너만 힘드니?"라고 대꾸하면, 그건 지옥문을 활짝 여는 대화방법이다. 돌이켜보면, 아내가 큰딸을 만5년간 혼자 육아하던 시절, 아내는 퇴근한 내가 별 관심도 없을 아이 친구들 얘기,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사소한 사건이나, 다른 아줌마들과 떤 수다를 풀어놓곤 했다. 건성으로 "응, 응. 그랬어?"했건만, 이 여자가 왜 관심도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있나 싶었는데, 이젠 난 그 심정을 백십분 이해한다. 육아하는 엄마가 나 자신을 위해, 내 자존감을 키워가며 몰두한 무언가가 없을때, 아이와 보낸 시간, 아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와 대화가 일상의 전부가 되고, 그걸 남편과 공유하며 내가 살아가는 일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육아휴직 내기 전, 회사에서 가끔 점심때 부서원들과 가까운 멀티 쇼핑몰에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때가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들이 아이 데리고 식사하고 차마시고 애들 걸음마 하며 넓직한 쇼핑몰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회사 부장은 "야~ 팔자 좋다~ 남편들은 회사에서 죽어라 돈 벌면, 와이프들은 애 데리고 나와서 브런치 즐기고, 차 마시고, 영화 때리고~" 하며 빈정거렸다. 이거 정말 한대 쳐 맞을 소리다. 엄마들이 어린 아이들 유모차 끌고 갈 곳이 그리 많지 않다. 기온, 바람세기, 미세먼지 등등 조건 모두가 완벽하지 않은 이상 바깥 산책을 섵불리 나가지 못하고, 결국 집 가까이에 멀티 쇼핑몰에서 커피 마시며 아이들 걸음마라도 시키면서 다른 엄마들과 수다라도 떨어야 그 시간이 좀 유쾌하고 행복해진다. 집 근처 천정이 높은 답답하지 않은 실내가 있는 것이 육아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그렇게 육아하는 사람들은 '소통'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비'.... 우습지만, 나는 절약을 한다며 빈궁하게 출발한 육아휴직을, 궁극엔 있는 돈 없는 돈 다 탈탈 털어쓰고 가계살림 개념을 초탈을 한 후 복직을 했다. 수입이 줄어드니까 아껴야 한다는 강박으로 시작했지만, 표현그대로 사는 재미가 없어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소비'가 아닌 나와 아내를 위한 소비를 시작했다. 그 정점이 육아휴직여행이었다. 네 식구가 여름 4개월동안 짧게는 2~3일, 길게는 한달씩 동유럽의 이 도시, 저 도시에 머무르고 이동하며 '소비'했다. 물론 숙소나 이동편의 편의성과 가성비를 꼼꼼하게 따졌지만, 그 긴 여행 자체가 '절약'을 육아의 기본 방향으로 잡았다면 시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시에서 체류했기에 생필품 비용은 한국에서 육아할때보다 나쁠 건 없었지만, 일단 우리 식구 원래 자는 내 집 두고 '숙소'를 옮겨가며 했던 생활 자체는 큰 도전이었다. 

돌이켜보면 육아휴직 2년동안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월급, 그에 반해 나를 위로하기 위해 강박적인 절약 개념을 내려놓고 카드를 긁은 일상, 그리고 적금 한 두개는 별거 아니란 듯 깨진 동유럽 4개월 여행, 이로 인한 가계 재무재표 상의 손실이 발생했으나 전혀 아깝지 않다. 그 월급 못챙겼다고 거지가 되지도 않았고, 그 돈 아꼈다고 빌딩을 샀을 리도 없다. 물론 하루하루 생계가 빠듯한 사람들, 직업의 안정이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다소 사치스런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육아 스트레스에, 절약의 압박이 얹혀지면 삶은 피폐하고 고루해진다. 그렇게 결혼 9년차에 여전히 전세기간이 만료되면 새집을 찾아 전전하는 평범한 네 식구가, 과감하게 없는 돈 탈탈 털어가며 인천 → 자그래브행 비행기표를 사게 되고, 육아우울증과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출발을 하게 된다.


#육아휴직 #육아휴직여행 #아빠육아휴직 #남편육아휴직








이전 01화 회사와 분위기 좋게 아빠 육아휴직 내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