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Sep 24. 2024

눈에 보이는 마음의 구멍

원형탈모와 5년째 동거 중

*** 이 글은 원형탈모 이미지를 포함합니다.



“따끔~할 거 에요”

과속방지턱을 넘기 전 “덜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 본 경험이 있는가?


내 머리통을 잡고 주사기로 한 땀 한 땀 머리에 수를 놓는 순간마다 “따끔~”을 주문처럼 말하는 의사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어린이 보호구간을 지나며 ‘덜컹’을 수도 없이 외치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진료실에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의사 선생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의 구멍에 몇 번의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지 세어본다. 하나, 둘, 셋,,, 작은 구멍에는 여섯 번, 큰 경우에는 열 번도 넘게 바늘이 들어갔다 나온다. 서른 번쯤 따끔 소리를 들을 때에는 이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끝까지 ‘따끔’을 외쳐 주실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50번을 더 지나자 더 이상 수를 세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한다. 열심히 빗으로 가르마를 타며 구멍을 찾아주는 조무사 선생님과 그녀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구멍 위치에 따라 요리조리 머리를 돌려주다 때때로 “이쯤에도 하나 있어요!”라고 외치는 나, 여전히 끊임없이 “따끔” 한마디에 바늘 한 번 집어넣는 선생님, 이렇게 여성 세 명의 조합이 꽤나 합이 잘 맞는 아카펠라 중창단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익숙하게 만원을 결제하며 떠나는 내 뒤로 “2주 뒤에 다시 오세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은 커튼콜일까.


뒤통수의 정중앙, 상부 승모근이 시작하는 그 어드메에 오백 원짜리 동전크기만큼의 빵꾸를 처음 발견했던 순간, 5년 전 그때도 아마 이맘때쯤,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기 시작했을 때였다. 난생처음 만져보는 매끈한 두피에 평생` 머리가 나지 않는 걸까, 평생 이 끔찍하도록 아픈 머리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일까 의료계 종사하는 모든 지인에게 연락하며 두려워하던 것도 아주 잠시. 주사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난다는 사실이 나를 지나친 낙관으로 이끌었다. “어? 큰일 아니야. 주사 맞으면 금방 머리 나는데?” 하며 넘기면 스트레스가 덜해져 정말로 괜찮아질 줄로 철석같이 믿었는데. 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지고지순함 덕분에 5년을 함께했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 말 그대로 머리털이 뽑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예언이 가능하고 두통과 편두통은 물론이고 탈모통까지 구분해 내는 경지에 이르러 버렸다.  


하도 머리가 후두둑 떨어져 이렇게까지 영역 확장을 하면 원형 탈모가 아니라 그냥 탈모가 되는 걸 텐데? 싶다가도 아 머리가 원형이니 원형이긴 하겠다 하고 웃고 지내면 어느 순간에는 또 원형탈모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한동안 멀쩡하다. 스트레스 상황 발생이 발생하면 나는 두피에 느껴지는 통증 위치를 파악하고 기억하고 있다가 종종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만져본다. ’없을리가 없는데’를 속으로 되뇌이며 머리카락 숲을 헤맨다. 매끈- 하고 느끼할 정도로 기름진 맨 두피 위를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지는 손가락.


“아하, 이곳이다. 여기가 바로 새로운 빵꾸 자리다.”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사이즈를 확인하다 슬쩍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본다. “아이고 이번 사건은 이 정도 크기의 스트레스로 다가왔구나. 내 마음에 구멍이 이 정도 크기로 났구나.”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내 머리에 존재하는 빵꾸조차 기대보다 클 때도 작을 때도 있는 것이 이제는 웃길 따름이다. 이렇게 또 한 번 더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라 마음을 다잡아 본다.

비로소 원형 탈모는 내 머리가 알려주는 눈에 보이는 스트레스 척도로 기능하게 되어 내 몸에서 역할을 얻어낸 것이다.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 내가 아는 내 머리의 빵꾸는 총 8개, 가장 근래에 피부과에서 빵꾸 의심지역까지 주사를 놔주었던 것을 다 합하면 13개가량. 그중 머리카락이 다시 잘 자라나고 있는 빵꾸가 대표적으로 네 개가 있다. 나머지는 노력 중. 가만히 빵꾸의 생성과 복구를 지켜보다 보면 내 마음에 난 구멍도 함께 메워지는 기분이라 괜찮아질 때가 있다. 머리카락도 열심히 자라나는데 내 마음도 곧 괜찮아지겠지 않겠냐며.






내 빵꾸 조금은 귀여울지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