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가족이라는 이름의 허상
우리는 내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따져도 10년 넘게, 엄마 아빠의 기준에서는 20년 가까이 2주마다 한 번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현재 기준 막히지 않으면 한 시간 반 거리, 당시 도로 상황상 두 시간은 족히 넘었을 그 거리를 우리 아빠는 짧게는 매주, 길게는 격주로 효도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 아빠는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이것이 정말로 효도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니 우리 집은 다른 집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격주 방문은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것 마냥 반드시 온 가족이 함께 해야 하는 일정이었고 모든 가족 휴가는 당연하게도 할머니 집으로 혹은 할머니와 함께. 친구들과 약속이 점차 생길 나이가 됐지만, 우리 집에는 선약의 개념이 없었다. 당연히 방문해야 하는 가족 일정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약속쯤은 언제든 다시 잡아도 된다는 것이 나의 부모님의 생각이었다. 몇 번이나 나와의 약속이 어그러진 친구가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왜 부모가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때가 돼서야 이게 보통은 아님을 눈치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유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약속을 서로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을 뿐. 아, 이쯤 되니 우리 집에는 명절이 일 년에 네 번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설, 어버이날, 추석, 그리고 크리스마스. 아, 그리고 당연히 양력 새해도! 아아, 이 특별한 가족 명절은 절대로 예외가 존재하지 않는 온 가족 행사임에 틀림없다.
어느 흔한 추석,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던 어떤 집에서 사건은 발생했다. 애들은 방에 들어가 있으라는 엄마의 다급한 소리와, 발작하듯 소리를 지르는 처음 보는 모습의 아빠, 맞대응하며 악을 쓰는 할머니. 이 넓은 공간에 사람은 다섯 뿐이 없는데 순식간에 거실은 어떤 기차역보다 소란스러워진다. 듣다 듣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찬 내가 방문을 박차고 나가며 똑같이 악다구니를 쓴다. 제발 그만하라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친다. 이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는 어쩌면 유전이었을까. 그러나 고등학생 즈음 되는 아가씨의 목소리는 이 기혼자들의 삶에서 비롯된 악다구니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결국 나는 이 승리자 없는 싸움에서 유일한 패배자가 되어 엉엉 울며 동생이 있는 방으로 기어 들어간다.
내가 할머니와 결국 손절하기까지 수년 간, 짧게는 몇 개월에 한 번, 좀 괜찮을 때에도 일 년에 꼭 한번 이런 싸움이 발생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싸움들은 급기야는 달리는 자동차에서도 벌어진다. 무엇보다 가족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인내심이 대단한 아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미 다 같이 큰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어지는 할머니댁 방문은 어쩔 수 없는 현실들을 앞세워 강행되었으며 여전히 온 가족이 전부 함께였다. 나는 이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어른들의 해결되지 않는 갈등을 풀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대신 전화해 안부를 묻는 것은 예삿일이고, 몇 시간이고 한풀이를 들어주는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은 물론이고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라며 나보다 더 큰 성인 둘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했다. 나중에는 조금만 아빠의 말투가 예민해져도 심장이 두근거렸고 어느 시점에 이들을 막아서야 하는지를 고민하느라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태평하게 잠을 잘 자는 동생에게 화가 났으며, 할머니의 모든 이야기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할머니 댁을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형벌 같다고 느꼈으며 어떻게 해도 도망갈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진다면 이런 기분이겠거니 싶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내가 할 이야기 중에 가장 단호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미디어에서 주장하는 정상가족이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신화인 것은 자명한데 이 정상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 년을 애쓴 사람들에게 이것이 진실로 허상임을 주장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만, 지금은 그것이 허상이니 실상이니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정녕 허상일지라도 지켜주기 위해 온 사랑을 다 해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야 만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면서 동시에 사실 나는 힘들었노라고 울부짖을 뿐이다.
들춰보면 사실문제없는 가족은 없다. 모두가 어디 가서 말하지 못할 뿐. 가족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지나치게 사적이고, 내부적이고, 문제의 원인이나 주체가 불분명하지만 구성원들은 모두가 벗어날 수 없다는 데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증가한다. 가정 내 폭력이 폭력이라고 인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물리적 폭력이 아닌 정서적 학대는 여전히 인정받기 어려운 세상이다. 특히, 정서적 학대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사랑으로 끈끈이 엮여있다면 더욱 그렇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긴 어려워도, 피해자는 늘 가해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빠른 경제성장 속에서 발생한 핵가족화, 그리고 국가적으로 자식을 적게 낳는 것을 권장하며 등장한 4인 이상 가족 설은 이상적인 가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두를 고통에 빠뜨린다. 가족 공동체. 가족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개인이 탄생 후 가장 먼저 접하는 공동체이자 작은 사회다. 그러나 모든 사회에는 개인이 있고, 공동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타인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자식을 키워낸 부모님은 쉽게 자신을 자식에게 투영하고, 일치시킨다. 자식이 실질적으로 일손이던 과거와는 다르게 부모와 소수의 자식이 전부인 가정에서 자식이 지니는 의미는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상가족의 환상은 수도 없이 많은 보통의 가정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빛이 클수록 그림자가 큰 법이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통의 평범한 가족 형태가 화목하고 경제 활동에 문제가 없는 4인의 가족 구성원을 지닌 가족 형태로 좁혀지고, 미디어 등에서 이러한 가정의 모습을 사랑 가득하게 그려낼수록 대부분의 가족 형태는 보통 혹은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멀어진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는 모두 부족하고 어딘가 완벽하지 않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는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형성된 인식 아래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만든 보통의 성을 견고하게 유지하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성장한 가정은 이러한 이상에 완벽히 부합하는 형태를 지녔다.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 집안을 일으키고 가정을 부양하는 아버지, 내조와 가사노동, 육아 및 공공연히 맞벌이를 담당하는 어머니, 어머니가 바쁠 때 어려서부터 동생을 잘 챙겨 오고 키우는 대로 자신의 본분을 다해 학업에 열중하는 장녀와 대들지 않고 늘 우애 좋은 남매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순하디 순한 남동생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결혼을 거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가족은 이상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러나 집안을 일으키고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자신의 전 생애를 헌신한 아버지는 가부장의 늪에서 자신이 희생한 만큼 가장으로서 대우받길 바랐으며, 자식에게 희생하고 부모에게 온 마음을 다해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미덕인 줄 알고 평생 살아온 어머니는 본인의 짐을 자신을 이해하는 딸에게 조금씩 건네주기 마련이다. 눈치 빠르고 뭘 하든 보통 이상은 해내는 딸이 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아주 흔하고 어린 나이에 하기도 어렵지 않은 일들이었다. 어쩌면 보통의 가족이란 이런 크고 작은 시대적 오류들로 가득 찬 게 아닐까?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는 아무도 알려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