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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11. 2024

나르시시스트를 부모로 둔 아이가 부모가 될 때

K-장녀 및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끔찍한 혼종의 탄생

한 사람분의 몫을 열심히 하며 살다 보면 문득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놓칠 때가 있다. 아이를 키워 독립시켜 제 밥벌이를 하게 하고 결혼을 잘 시키는 것, 그리고 손주를 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신앙심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평생을 헌신하며 산 우리 부모님이 그랬다. 사실 우리네 모든 부모님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당시 시대에 맞는 가치를 쫓으며 살았는데 시대가 변했다며 갑자기 아이들은 결혼을 거부하고 가정 내 온갖 문제들을 들쑤시고 다닌다. 우리 집의 불쏘시개 및 화염방사기 담당은 늘 나였다. 당신들이 살아온 자락 한 순간순간이 모두 잘못됐다며 고함을 치고 거부한다. 그러나 탓할 수는 없다. 우리 가족 구성원 중에 최선을 다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는 이 예민하고 책임감이 두터운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한다.


반복되었던 격주 방문에 더해 방학마다 나는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한 달가량까지 할머니댁에 맡겨졌다. 정확하게는 당시의 나도 행복하게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 같긴 하지만. 충청북도의 어느 한 시골에서. 우리의 작고 든든한 흰색 티코가 논두렁에 처박힌 날도, 눈 내리는 날 더 튼튼한 싼타모를 타고 좁은 골목길을 누비던 순간도, 그중 가장 예뻤던 소울이 자꾸 고장 나 카센터를 가던 순간에도 늘 나는 할머니 조수석에서 함께 했다. 나는 늘 가사와 음절이 제멋대로인 노래를 즉흥으로 지어 할머니를 위한 세레나데로 바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래에 할머니는 운전을 하면서도 화답해 주었다.


이때의 나는 할머니가 참 빛난다고 느꼈다. 그토록 완전한 슈퍼 우먼이 따로 없었다. 집안의 실질적 가장 역할도 해냈지만, 직업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어 보였다. 지역사회에서 선생님 소리를 듣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거나, 성질이 더러운 할머니와 한참을 싸우다가도 필요하면 꼬리를 내리고 할머니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린 마음에 나름 우쭐해지기도 했다. 종교인의 마음인지 의료인의 마음인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 닥치면 손발 걷고 나서서 궂은일을 해 주는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어느 누굴 만나도 주눅 들지 않았으며 무서워하는 것이 티 날지언정 늘 개기는 태도로 주어진 삶에 대항했다. 다른 할머니들과 다르게 자식이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고, 자기 자신의 삶을 잘 이루어나가는 신여성으로 보였다. 손녀딸 콩깍지를 빼고 보더라도 말이다. 늘 반짝거리며 하고 싶은 일은 해내고, 할 말을 다 하는 멋진 사람이지 않은가.




이렇게나 멋진 할머니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사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며느리를 아주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을 뺏어간 존재로는 보지 않는 것이, 손녀와 손주를 나름 공평하게 사랑하는 것이, 깨어있는 할머니여서가 아니고 누구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어서 그랬다는 사실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우리 할머니는 적어도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모든 부분에서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하고 있단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불면증이 생겼다.


할머니와의 숱한 갈등이 우리 가족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힘든 순간들을 보내며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가 그냥 보편적인 못된 시어머니면 좋겠다고. 자신의 아들만 예뻐하고 손녀와 손주를 성별로 차별하고 며느리를 무조건적으로 핍박하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 그 자체이자 남편의 대체물이자 유일한 성과인. 그래 바로 그런 굉장히 보편적인, 그래서 이해할 수 있는 그 시절의 안타까운 여성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껏 미워하고 싫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가서 얘기하면 서로서로 어어 맞아 우리도 그래! 하면서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텐데. 그렇게 풀면서 살 수 있을 텐데.


고성이 오가는 싸움 속에서 꿋꿋하게 할머니댁을 가는 것을 강행한 아빠, 사실 그는 홀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 집안의 의사 결정은 얼핏 보면 아빠의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결정을 아무도 못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늘 주요한 결정은 집안 여성들이 함께했다. 목소리 큰 두 여성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도덕적 신념이 확실하고 마음의 크기가 태평양인, 늘 ‘할 도리는 해야 한다.’는 엄마. 그리고 이에 더해 타고난 기질과 가정교육을 통해 나를 죽이고 부모의 목소리를 이해하는데 익숙한, 빼어난 k-장녀로 거듭난 나. 모든 결정에는 이 반복되는 상황이 스스로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였던 나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이 자칫 민주적 이어 보이는 의사결정 구조 아래, 모든 결정의 가장 주요한 근거는 남편과 아빠에 대한 이해와 사랑 되시겠다.


갈등이 심화되어 온 집안이 살얼음 판 같던 시절, 나에겐 아빠가 이 온갖 사건에도 불구하고 나를 그 지옥으로 계속 데려가는 것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매 달 돌아오는 일박 이일의 긴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할머니 댁에 가는 주말이 다가오면 한없이 예민해지는 집의 분위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가기 전에는 별 것도 아닌 걸로 서로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는 우리에게 흡연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어디선가 담배를 피우는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매 번 화가 나 얘길 하며 풀길 바라는  엄마와 역시나 한껏 화가 난 채 지금은 그만 얘기하자고 하는 아빠를 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것뿐이었다. 한참 이어폰 소리를 높이다 진짜로 잠에 들면 늘 막히는 구간에서 잠에서 깼다. 조용히 도란도란 내가 듣지 못하길 기대하며 대화를 나누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가만가만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되는 나. 그들은 아직도 내가 차만 타면 자는 줄 안다.


도저히 할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을 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장점을 착즙 했다. 도저히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엔 나를 지옥 같은 공간에 끌고 가는 아빠를 미워했다. 시간이 흘러 이렇게 지내다가는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 아빠와 함께하는 앞으로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슴에 원망을 품고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할머니와 아빠 중에 한 명을 골라야만 했다. 여전히 아빠는 내가 할머니와 연을 끊은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아아 내가 이 고통의 최초 원인 제공자를 끊어내지 않는다면 그녀를 끊어낼 수 없는 당신과 멀어질지도 몰라 그랬다는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하느냔 말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아이는 평생을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나르시시스트 양육자에게 인정받고 진실로 사랑받기 위해 애쓰며 살게 된다. 당연한 도리인 효도의 이면에 가려진 우리 가족의 그림자에는 영원히 나르시시스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어린아이가 있다. 자신의 평생을 다 해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없었던 나의 아빠가 있다. 자신의 처참했던 어린 시절을 우리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본인이 간절히 바라온 가장으로서의 아빠 노릇에 최선을 다한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다만,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몰랐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아빠를 너무나 사랑해 상처주기 두려워하는 착한 딸이 있다. 기꺼이 그의 짐을 나눠지고 싶어 하는 그런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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