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왜 부모님이 그걸 강요한다고 말해요? 결국 00님이 가기로 선택한 것이잖아요. 00님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20년도의 가을 즈음. 버티다 못해 터져 버린 뇌를 수습하러 겨우겨우 몸을 추슬러 방문한 심리상담센터에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인 발언되시겠다. 저는 선택을 한 적이 없어요, 선생님. 그걸 고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게 어떻게 선택이에요. 그렇게 굳게 생각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통상적이라면 사수의 지도 하에 연구 주제를 잡고, 분석을 위한 방향을 잡아나가고 시행착오를 해야 하는 석박사통합과정 1년 차라고 쓰고 학사따리라고 읽는 그 시기. 분야와 팀 특성상 제대로 된 고민을 할 시간조차 없이 일 배우기 바빴던 시간을 보내고 막 2년 차가 된 햇병아리에게 주어진 팀장 직함, 그리고 그의 목에 걸리는 외부 연구 과제 추진 목걸이.
팀 내의 모든 일정을 관할하고, 외부 인력과 조율하고,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팀장의 일부터 인수인계받을 때는 분명 없었던 일까지. 모든 팀 내 행정처리와 외부 행정처리는 물론이고 전공한 적 없는 내용을 공부하며 새로운 연구 과제를 추진하던 그때. 나는 박사 희망생이지 박사 졸업생이 아닌데 눈 높은 교수님의 지도 아래 박사급의 업무를 난데없이 맡아서 수행하던 그때. 그래 바로 그때 말이다.
아뿔싸. 나는 우리 가족의 대명절인 어버이날을 잊고 말았다. 전날 밤부터 나의 연락과 방문을 기다리던 아빠의 역대급 대분노와 중간에서 조율해 주기 지쳤다며 본인도 섭섭하다는 엄마까지. 샤우팅보다 더 한 차게 식어 화를 누르는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전해졌는지. 어버이날을 잊은 게 그렇게 중죄야?라고 조심스레 물어오는 주변 동료들의 시선 아래에. 그러게. 이게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나 중한 죄다. 내가 주말이고 휴일이고 없이 현장에서 팀을 진두지휘하느라 정신이 나가 있더라도 해야 할 도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그 정신머리만큼은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딱 이맘때쯤부터였을 것이다. 가속화되는 집안의 싸움터에 늘 끌려다니는 우리를 차량 뒤에 앉힌 채, 우리가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며 나이에 맞는 행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아빠가 주장하기 시작한 시점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이 집에서의 역할을 단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송두리째 부정하고 없었던 일 취급하기 시작한 시점이. 도대체 매 순간 제 역할을 다하지 않던 저 동생 놈과 나란히 묶여 이 나이에 혼이란 것을 나고 있는 내 처지가 제법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 사람 중에 내가 제일 효녀던데..? 턱 끝까지 차오른 소리가 튀어나올까 다문 입에서는 피맛이 난다.
새로 맡은 과제는 듣도 보도 못한 물리학 주제였으며, 나는 해당 분야의 지식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과제를 추진하고, 분석하고, 보고 자료를 만들고,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인수인계받아 알고 있던 일의 행정 처리는 물론이고, 새로운 두 과제의 행정처리도 전부 내가 해야 했으며, "원래" 팀에서 당연히 하던 팀 기본 데이터를 위한 분석 작업, 인턴 관리는 너무나 숨 쉬듯 당연해 일 취급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갔는데 내 연구는 하나도 진행되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할 겨를 조차 없이 내가 아니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업무 분장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누군가에게 일을 알려주고 교육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으며, 그렇게 기초 교육을 받은 인턴들은 방학 한-두 달 찔끔 연구실 체험을 하고 나갔다. 그들이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일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당연하다. 이것은 너무나 흔한 이공계 대학원생의 모습이다.
동시에 집에는 2-3주에 한 번씩 주말마다 방문해야 했는데, 이는 딸을 절대로 결혼 전까지는 밖에 두지 않으려 했던 부모님과 할 수 있었던 당시 최대의 암묵적 타협 지점이었다. 평생을 효도라는 이름 아래에 본인의 어머니에게 2주에 한 번 방문하던 아빠는 자신의 자식이 보고 싶으면 응당 그 자식이 자신을 보러 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당연하지 않다. 이것은 흔한 가정의 모습이 아니다.
용기를 내 심리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한 시간의 상담 시간 내내 어떤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며 울고 돌아왔던 첫날. 우리는 나의 여러 상황을 파악하고 그중 어떤 것이 가장 나를 지금 힘들게 하는지 우선순위를 정해 상담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나는 단연 가족 키워드를 골랐다. 일련의 스토리를 들은 상담 선생님이 정말 대학원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고 가족이 맞는지 재차 확인을 했고, 나는 현재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나의 가족이 맞다고 시인했다. 그렇게 우리의 6개월간의 만남이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