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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Dec 30. 2021

내 딸이 아니야

아이가 울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하나의 유치원에서 5살 수료식을 했다. 우리 가정은 맞벌이라서 바로 내일부터 다시 돌봄 교실로 등원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수료장을 받아보니 한 해가 다 갔구나 실감이 났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어플에 올려주신 아이의 1년 치 지난 사진을 돌아보며 유독 힘들었던 한 해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인스타에 짧게 적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아이가 잠들고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완벽하게는 찾지 못한 답에 대한 질문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하나의 행동은 매번 나를 궁금하게 했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왜 화가 났을까. 왜 우는 걸까. 뭐가 문제일까. 거기서 나아가 이 아이는 행복할까. 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내가 왜 이럴까. 질문은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는데 나는 그 어떤 것도 답을 을 알지 못했다.


하나는 울음이 많은 아이다. 기-승-전-결이 있으면 곧 울겠구나 감이라도 잡을 텐데 예능 프로에서 10초 안에 눈물 쏟기 대결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이 아이는 순식간에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해서 슈퍼를 가는 도중에 가게를 눈앞에 두고 바닥에 앉아 엉엉 운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해서 지금 사러 가는데 왜 우는 거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솔직한 심정이지만 나도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려본다.


"다리가 아프면 엄마가 기다려 줄게. 다시 힘이 나면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그렇게 우는 아이의 앞에서 왜 우는지 내가 뭘 놓쳤는지 고민하며 잠시 대기한다. 우리를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그리 길지 않은 그 시간이 나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하나가 안아달라고 하면 엄마는 언제든지 안아줄 거야. 그런데 울면서 안아달라고 하면 안 돼. 울음이 좀 그치면 엄마가 안아줄게."


어느 정도 울음이 잦아들면 다시 한번 말을 건넨다. 그러면 진정이 좀 되었는지 자존심을 꾹꾹 눌러가면서 겨우 들릴만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안... 아."


냉큼 안고 엉덩이를 두들겨 준다. 뽀뽀도 여러 번 해준다.


"엄마가 우리 하나가 안 울고 예쁘게 말하면 얼마든지 안아주지. 이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하나가 먹고 싶다 그래서 우리 지금 슈퍼 가는 길이잖아."


마치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듯 메롱 거리며 눈을 까뒤집고 장난을 친다.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하나가 운 이유를 정확하게 모른다. 내 걸음이 조금 빨랐을 수도, 피곤했을 수도, 졸렸을 수도, 조금 전에 속상한 일이 있었을 수도. 그래도 이제 우는 아이 앞에서 망연자실 괴로워하지는 않는다는 게 그나마의 발전이었다.


놀이터에서도 울음소리가 나면 예외 없이 우리 하나였다. 친구들과 놀다가 하나 혼자 울어버리는 패턴이 자주 반복돼서 이제는 같은 반 아이 엄마들에게 눈치가 보여 놀이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고 싶은 데 자꾸 미끄러지니까 신발이랑 양말을 벗겠다는 하나에게 놀이터 바닥에는 위험한 게 있을 수 있으니 안 된다고 설명하고, 계속 울면 놀이터에서 더 놀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하는 나를 아마 그 엄마들은 지겹도록 보았을 것이다. 매번 똑같이 설명하는 나와 그러거나 말거나 매번 우는 하나를 보며, 때로는 무안하고 때로는 울지 않는 자신의 아이가 기특하기도 했을 것이다.


우주를 키울 때 내가 그랬다. 누가 저렇게 우나 저 엄마 참 힘들겠네. 다른 세상 일처럼 여겼다. 놀이터에 가면 어느 누구와도 잘 어울리던 우주 옆에서 나는 우아하게 책도 읽고 다른 친구 엄마들과 이야기도 하며 느긋하게 있었으니까. 남편이 군인이면 부인의 계급도 남편 따라간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는 확실히 아이에 따라 달라졌다. 우주 엄마일 때 나는 한 번도 다른 엄마들의 눈치를 보거나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우주와 친해지고 싶은 친구의 엄마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었다. 어느 날은 하나와 놀이터에서 노는데 처음 보는 아이 엄마가 조심스럽게 '아이가 아픈가 봐요. 계속 우네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우주 엄마로는 받아본 적 없는 첫인사였다. 그러고는 '그런데 화를 정말 안 내시네요. 대단하세요.' 하는 그분에게 '원래 자주 울어요. 화낼 때도 있어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괜찮은 척 더 하나와 열심히 노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화를 잘 내지 않는 엄마였다. 훈육은 아이에게 규칙과 옳고 그름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지, 어린것에게 생명줄이자 보호자인 엄마가 화를 내는 것은 폭력이라 굳게 믿었다. 우주가 6살 때 온 가족이 양산에 있는 어린이 책방에 행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내가 글을 쓴 그림책 북토크가 있었는데 거리가 멀어서 온 가족이 함께 1박 2일로 출장을 겸한 여행을 갔다. 북토크가 끝나고 우주가 책방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엄마는 화 안 내는데.'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와 대화를 끝낸 대표님이 '작가님 애한테 화 안 내세요?' 하시는데 그렇다고 말하는 내 얼굴에는 뿌듯함과 만족감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우주를 키우는 나는 정말 그랬다. 이유 없는 울음은 없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울면 그 이유를 찾아 메꿔주고 설명해 주면 되는 거였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정답만 알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를 키우는 나는 가끔씩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른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내가 너무 혐오스러워서 한동안 심각하게 우울했었다. 대학 졸업하고 끊었던 담배를 한 갑 사서 몇 개비 피고 다시 버렸던 적도 있다.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어떤 것이라도 하고 싶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도저히 아이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때는 밤에 혼자 나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하염없이 걸었다. 지금의 내가 너무 싫은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끔찍했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모두 견딜 수 있었는데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건 복구가 안 됐다.


자신을 대하던 것과 너무 다른 엄마를 보는 우주도 괴로워했다. 하나가 울면 귀를 막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거나 같이 눈물이 글썽거렸다. 동생이 장난감을 빼앗거나 티브이를 독차지해도 뭐든 다 양보했다. 이건 우주에게도 억울하고 힘든 일이었다.


한 번은 울고 있는 하나를 어찌 달랠 방법이 없어서 포기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간 적이 있다. 다 벗고 욕조 안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 놓고 얼굴을 감싸며 울었다. 혼잣말로 제발 그만 좀 울어. 제발 제발 빌고 있었는데 하나가 계속 우니까 우주가 욕실로 따라 들어왔다. 하필이면 그런 엄마의 모습을 봐 버린 우주는 '엄마 하나가 계속 울어요.' 하고 문을 열더니 '엄마도 너무 힘들겠다.' 하고 그냥 문을 닫았다. 나는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마음의  반대편에 우주의 말에 위안 받은 내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1년이 지났고 나는 하나라는 아이에 대해 꽤 많은 힌트를 얻었다.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지만 우선 하루에 한 번도 울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하나는 뭐든 자기가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아이다. 낑낑거리며 기저귀를 직접 입으려고 하던 갓난아기 때부터 그랬다. 스스로 하길 좋아하는 아이가 뭐가 문제일까 싶지만, 예를 들어 하나는 혼자 옷을 입고 싶으면 옷에 내 손끝이 조금만 닿아도 애써 입은 옷을 다시 다 벗고 울음은 터뜨렸다. 심지어 자기가 옷 입고 있는 것을 쳐다보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엄마가 도와주지 않을 거야. 그냥 하나가 잘 입는지 보는 거야.'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하나는 뭐든 자기가 하고 싶어 했고 나이가 어리니 당연히 대부분은 혼자서 완벽히 할 수 없었다. 그럼 그때마다 화가 나고 속상해서 울음이 터지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면 언덕에서도 절대로 엄마가 밀어줘서는 안 됐다. '내가! 내가 할 거야! 나 혼자 할 수 있어!'는 하나의 단골 대사였다.


그런 하나와 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이 정도까지 가 되었다. 옷을 꺼내 주면서 먼저 얘기한다. '이건 단추가 아주 작아서 언니들도 못하는 거야. 하나가 혼자 입어보고 안 되더라도 울지 말고 엄마한테 도와주세요- 하면 돼. 알았지? 옷 입으면서 울 필요 없어요.' 이걸 매일 아침마다 했다. '지퍼 올리는 건 5살이 하면 진짜 대단한 거야. 하나가 해보고 안 되면 엄마가 해줄게. 울지 말아요.' 이것도 매일 했다. 자존심이 강한 하나는 도와주세요 소리를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그래서 '하나는 아직 5살이잖아. 못해도 괜찮아. 도와주세요- 하면 엄마가 방법을 알려줄 거야.'는 나의 단골 대사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이제 울지 않고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가는 5살이 된 것이다.


또 경쟁심은 어찌나 대단한지. 가족들이 다 함께 외출하려고 옷을 입으면 자기가 꼭 가장 먼저 준비를 마쳐야 했다. 이를 닦는 것도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타는 것도 내가 먼저. 밥을 먹으러 식탁에 앉는 것도 1등, 씻는 것도 1등. 아직 1등 하기 좋아하는 8살도 종종 지지 않고 1등을 하는데 그럴 때도 여지없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장난으로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하나의 한쪽 신발이 벗겨진 적이 있다. 잠깐 멈칫하더니 망설임 없이 양말만 신고 내달리는 걸 보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다 내 딸.


에 조김을 싸서 주는 데 하나가 운다. 사과를 썰어서 접시에 주는데 운다. 왜 그러는지 아시는 분? 난 그걸 몰라서 참 황당하고 또 화가 났었다. 이것도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건 하나가 직접 결정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뭐든지 우선 하나와 상의해야 했다. 밥을 자기가 직접 싸서 먹고 싶은지, 엄마가 싸주길 바라는지. 오빠처럼 크게 싸줄지, 한 입에 쏙 들어가게 해 줄지. 사과를 썰어줄 때도 그랬다. 동그랗게 통째로 들고 먹고 싶은데 엄마가 잘라서 접시에 주면 싫었던 거다. 내가 손으로 들고 와그작와그작 먹고 싶은 걸 엄마는 왜 묻지고 않고 작게 썰어 포크에 찍어 먹으라는 것일까 했을 거다. 키위도 마찬가지. 반으로 잘라서 수저로 떠먹고 싶을 때도 있고, 동그랗게 슬라이스 해서 먹고 싶을 때도 있고, 작게 라 수저로 먹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주도적으로 결정권을 갖고 싶어 하는 하나에게 이제 나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먼저 물어본다. 하나가 고르면 안 되는 것에는 제한을 두고 그것 외에서는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예를 들어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고르기 전에 미리 얘기를 해준다. '겨울에는 샌들 신을 수 없어. 너무 추울 거야. 반짝거리는 구두는 발이 아파서 이따 놀이터에는 못 가. 놀이터 안 가도 괜찮으면 구두 신고, 놀이터 가고 싶으면 분홍색 부츠랑 빨간색 운동화 중에 골라서 하나가 좋아하는 걸로 신어.' 그러면 겨우 두 개뿐인 선택지에서도 하나는 만족스럽게 그날 신을 것을 고른다. 이것 역시 방법을 아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상상해 보자. 자주 먹던 코코볼을 우유에 말아줬을 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면. 뭐 어쩌라는 건지 왜 또 그러는 건지 황당한 눈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을 나를. 지금의 내가 찾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 엄마야, 코코볼을 우유에 넣어서 먹을 건지 물어봤어야지. 오늘은 우유 따로 코코볼 따로 먹고 싶었을지 누가 알아.'


내가 하나가 참 어렵고 힘들었던 건 앞서 말한 성격들이 모두 나와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나는 경쟁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서 치열한 싸움이 예상되면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와 관망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 체육 평가로 농구와 뜀틀을 같이 했는데 한 번 해보니 농구는 못하고 뜀틀은 잘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농구는 아예 포기하고 뜀틀만 연습해서 농구는 최저 점수, 뜀틀은 최고 점수를 았다. 못하는 건 안 해버리면 그만이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경쟁심 같은 건 느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아마 하나는 밤낮으로 농구공을 튀겼을 것이다. 안 될 때마다 화가 나고 속상해도 계속 연습해서 중간이라도 갔을 것이다.


창피를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나는 이렇게 다르고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를 보며 어쩌면 내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내 생각의 끝이 여기까지 오고만 것이다. 이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내 모든 걸 쏟아부어도 정답을 모르겠으니까 내 딸이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편에게 '하나가 내 딸이라면 이럴 수는 없어. 내 딸 아닌 것 같아. 유전자 검사를 해야겠다.' 했더니 자기가 직접 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코웃음을 쳤다. 하긴, 수중분만으로 하나를 낳을 당시 담당 선생님이 늦으셔서 함께 욕조에 들어와 있던 남편이 직접 하나를 받았다. 남편은 하나가 눈을 말똥거리며 나오더라면서 그 순간을 여러 번 얘기했었다. 그래 그렇지, 바뀔 일은 없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겠지. 나와 다른 하나를. 엄마를 닮지 않은 딸을.


뱃속에 아이가 딸인 걸 알았을 때, k 장녀로 자란 나는 사실 나와 정 반대의 딸이길 바랐었다. 좀 이기적이어도 좋으니 자기만 알았으면, 철없이 자랐으면, 고집도 있고 자기주장 강한 캐릭터였으면. 하나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던 내게 언니 같은 사이인 안나가 '그거 희정 씨가 바라던 거였잖아요. 딱이네!' 하길래 그제야 생각났다. 그때는 그런 딸이 태어나길 바라기만 했지 그 딸을 키우는 건 나라는 걸 왜 몰랐을까.

하지만 안나는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희정 씨 그런데 그렇게 자란 하나가 정말 멋질 것 같지 않아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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