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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Jan 11. 2022

잘해주고 싶은 마음

어디까지가 엄마의 일일까

어느 책에서 바쁜척하며 사는 사람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글을 읽었다. 유명한 사람이니 분명 나보다 더 바쁜 사람이겠지. 그런 사람도 바쁜 티를 안 낸다는데 나도 나를 좀 뒤돌아 봐야겠다 싶었다.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잠은 언제 자세요? 너무 바쁜 거 아니에요? 그 많은 일을 언제 다 해요? 등등이었으므로. 그 후로 가끔씩 열심히 사는 게 유일한 자랑인 듯 지냈던 나를 돌아봤다.


나는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보기에 힘들겠다 좀 버겁겠다 싶게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네. 유재석 님을 좋아합니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을 보며 내 삶에 동력이자 위안으로 삼았다. 꼭 일만이 아니라 육아든 취미든 여행이든 전후를 고민하느라 망설이지 않고 일단 실천하며 자신의 삶을 빼곡하게 채워가는 사람들의 힘이 참 좋았다. 그런데 책에서 그 글을 본 이후로 자꾸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의외로 단순하게 답을 내린다.


"그 사람은 애 안 키우나 보지! 넌 애 둘을 보면서 일하잖아."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 더는 못 해 먹겠다.’ 두 팔을 들고 항복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보통은 아이가 입원을 한다거나, 어디가 찢어지거나 부러지는 큰 사고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사실 엄마들은 사소한 것에 흔들린다. 비 오는 날 하원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내 아이만 외투를 입지 않고 오돌오돌 어깨를 움츠리고 나올 때. 길어진 손톱을 제때 안 잘라줘서 찢어진 후에야 빨개진 손가락을 호호 불어줄 때. 피곤하다고 잠든 아이를 깨우지 못하고 같이 쓰러져 잠드는 날들이 겹겹이 쌓여서 끝내 우는 아이를 달래며 치과에 가야 할 때. 학교 준비물을 우리 아이만 못 가져가서 그 시간에 자기는 가만히 앉아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도시락 쌀 시간이 없어서 포일에 쌓인 김밥 집 김밥을 들려 보낼 때. 등원하는 아이가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가는 걸 보는데, 문득 따뜻한 바람이 부는 초봄에 털 부츠를 신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위기는 그런 순간들에 온다.


'머리 깎여야 하는데....' 우주의 길어진 앞머리를 보고 이발시켜야겠다 생각하다가도 이래저래 바쁘게 일주일을 살고 나면 앞머리는 한여름 잔디처럼 자라서 어느새 아이 눈을 찌른다. 불편한 앞머리 때문에 눈을 깜빡거리는 걸 발견하고, 저러다 눈에 무슨 문제 생기는 거 아닐까 아차 싶어 서둘러 미용실에 간다. '여름옷 곧 사야겠네.' 하다가도 조금만 늦장을 피우면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만 긴소매를 입고 땀을 삐질 흘리는 걸 보게 된다. 그럼 그제야 부랴부랴 로켓 배송으로 반팔을 있는 대로 쓸어 담는다. 일이 바쁠 때는 그런 일상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물론 아이에게 큰 잘못을 한 건 아니다. 이런 일로 아이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나와 아이의 일상이 물 흐르듯 당연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못마땅한 걸 넘어 못 참겠는 순간이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다. 기름칠한 것처럼 잘 돌아가는 삶은 내가 일만 포기하면 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과 함께.


도저히 안 되겠다. 애들이라도 잘 키우자. 조금만 부지런하면 되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선생님이 뭐라고 생각하실까 주변 엄마들은 또 어떻고. 그럴 때면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삶 전체가 방향을 잃고 휘청한다. 누가 벌이라도 내리면 달게 받을 테니 정신 차리라고 내 뒤통수라도 한 대 갈겨줬으면.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뭐가 바쁘다고 아이를 방치하고 있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건가. 내가 엄마는 맞나.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울까. 아이도 제대로 못 보는데 왜 이렇게 바쁜 걸까. 뭘 위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걸까. 남편은 뭐 하나. 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으면 자기도 좀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애가 저 꼴을 하고 다니는 데 내가 일을 하는 게 중요한가. 나를 비난하고 상황을 비관하는 질문들이 대답을 정해놓은 체 그칠 줄 모르는 장대비처럼 쏟아진다.


모든 엄마들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매사가 진지하고 모든 게 심각하고 아이에게만큼은 완벽하고 싶은 나라는 사람이 좀 유난이라는 걸 안다. 내 이런 점을 아는 지인들은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맨날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위로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유치원 하원을 기다리는데 도시락 싸는 게 너무 귀찮다며 어떤 이는 냉동식품으로 돌려 막고 어떤 이는 어제 먹다 남은 피자를 싸줬다며 애들은 그걸 더 좋아한다고 깔깔거리는 엄마들 사이에서 망연자실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이상하거나 내가 이상하거나.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에 중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적의 엄마이자 세 아이를 모두 서울대학교에 보낸 것으로도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 님은 엄마들에게 육아서의 바이블을 쓴 저자로 통한다. 그분의 책을 읽으며 참 많이 배웠다.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깨닫게 했고, 내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적으로 아이의 삶을 살게 했다. 그분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 존경스러우면서도 나는 그 쿨한 육아가 참 어려웠다. 유퀴즈에(네. 유느님 프로는 모두 보고 있습니다) 박혜란 님이 나오셨는데 아이가 하교할 때 비가 와도 우산을 가져다준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짧은 거리이고 그 정도 맞고 오는 것은 괜찮다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당사자였던 이적도 비를 맞으며 아이들과 신나게 집에 갔던 경험이 나쁘지 않았다고 추억했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제일 먼저 학교 앞에 가는 엄마다. 우산이 없다면 내 외투라도 벗어서 감싸고 집에 왔을 것이다. 마음은 그녀처럼 한 발짝 물러나 키우고 싶은데 어쩌란 말인가 이미 글러먹을 것을. 아마 그분이 나를 보신다면 '까짓 냉동식품 좀 먹이면 어때서 유난이야. 너만 잘 키우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하실 것 같다.


엄마의 자리는 성취감은 적으면서 자괴감은 자주 찾아온다. 며칠만 청소를 게을리하면 욕실에 분홍색 물곰팡이가 피는 것처럼. 아이를 씻기다가 분홍 곰팡이가 눈에 들어오면 그게 그렇게 화가 난다. 종일 일에 치여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때우는 스스로가 못마땅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이들은 우동이랑 돈가스 먹는다고 신이 나 있지만 나는 배달 용기를 버리면서 내 아이의 건강도 쓰레기통에 처박는 기분이 든다.


깨끗한 집과 제철 음식으로 차린 식탁, 계절과 성장에 맞는 옷과 침구, 커가는 아이 발에 맞춰 바꿔 주는 신발, 매일 챙겨야 하는 가방 속 준비물, 아이의 관심사에 맞춘 놀이와 발달에 맞춘 학습 모두 하나라도 삐끗하면 곧바로 절망에 빠져버리는 게 나라는 엄마다. 어떻게 된 게 매 순간이 고비일까. 도대체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게 하나라도 있는 걸까. 엄마가 조금만 느슨해지면 아이들은 거지 꼴을 하고 있고, 그런 아이를 마주하면 엄마로서의 내가 아주 못마땅해져서 어딘가에 저주를 퍼붓게 된다. 너무 소중해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같겠지만 나만 너무 조급해하는 건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내 걱정에 불을 지핀건 영화 ‘캐빈의 모든 것’이다. 엄마가 된 후에 본 영화라 충격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캐빈을 이해하고 싶었다. 엄마니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여러 번 봤다. 그런데 볼 때마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꾸 전 세계를 여행하던 일을 접고 엄마로만 사는 에바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캐빈의 작아진 흰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감독의 의도를 내가 너무 늦게 알아챈 건지 그제야 캐빈이 되어서 영화가 다시 보였다. 아이는 성장했지만 옷은 그대로다. 몸에 딱 붙는 작아진 옷을 입고 나오는 캐빈은 종종 나에게 경고를 보낸다. 엄마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아이는 작아진 티셔츠를 작다고 말하지 않고, 혹은 작은 건지도 모르고 입은 체 살아간다고.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박혜란 님이 계시지. 그깟 옷 좀 작게 입으면 어떠냐고.

그 사이에서 나는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어차피 완벽한 엄마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일과 나 사이에 타협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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