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 마음에 안 들어
나와 다른 속도로 아빠가 되는 남편
하나가 티브이에 바짝 붙어서 만화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저러다 눈 나빠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나에게 여러 번 이야기한다. 그게 걱정이면 직접 아이에게 얘기하면 될 것을 꼭 저렇게 돌려 말해서 나를 시킨다. 내가 못 들은 척하고 있자 보다 못한 남편이 직접 나섰다. 하나에게 뒤로 가서 앉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질 않자 억지로 들어 티브이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면 아이는 울고불고 나에게 오는 안 봐도 뻔한 드라마.
"애를 그렇게 억지로 잡아당기면 어떡해. 이해할 수 있게 말로 설명해야지."
그러고 얼마 안 있어 또 하나가 티브이 앞에 붙어 앉았다. 여지없이 남편은 나에게 하나 안과 한 번 가봐야 되는 거 아니냐 왜 저렇게 자꾸 앞에서 보는 거냐 한다. 하나의 시력은 평소에 문제없었고, 티브이를 앞에서 보려는 건 대부분 아이들이 저 나이 때 하는 짓이기에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진짜 문제라고 느낀다면 남편이 직접 아이와 해결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걱정이면 안과에 데려가던가 하다못해 주말에 함께 안과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할 것이지, 저렇게 은근히 나에게 미루는 방식이 지겨웠다. 내가 꿈적도 안 하자 남편이 온갖 말로 아이를 설득해 본다. 그런데 하나도 나처럼 반응이 없다. 설명은 점점 협박조로 바뀌고 화만 안 냈다 뿐이지 대화라고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또다시 눈물바다가 되었다. 남편과 아이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이렇게 예외 없이 같은 결말일까.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단짝 들어서 뒤로 앉히면 되잖아."
그랬더니 남편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저번에는 말로 하라 그러고 이번에는 또 말만 한다 그러고 어쩌라는 거야. 당신은 그냥 내가 하는 게 다 마음에 안 드는구나."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우주가 태어나고 나는 아이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떨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붙어 지냈더니 곧 끊어질 것처럼 팽팽한 고무줄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2박 3일 훌쩍 여행을 떠났다. 우주와 남편은 집에 두고서. 그때까지 남편은 이유식을 만들어 본 적도 없었고, 혼자서 종일 아이를 돌본 적도 없었다. 당신도 아빤데 이유식 좀 만들어 봐라, 애랑 좀 놀아줘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 먹는 것을 만드는 게 좋았고 잘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종종 그렇게 엄마로 치열하게 살다가 휙 떠나는 걸로 족했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느긋하게 쉬고 방해받지 않고 일도 하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터미널로 나를 데리러 온 남편은 첫날 자기가 겪은 혼란을 들려줬다. 아이가 너무 울어서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봤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한참을 다시 안아주고 재웠다고 한다. 유모차를 끌고 호기롭게 집 앞 카페에도 갔었는데 생각해 보니 기저귀랑 물병도 없이 가제 손수건 하나 달랑 들고나가서 곧바로 들어와야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다음 날은 안 되겠어서 아버님 댁으로 갔고 거기서는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니 좀 나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2박 3일을 아이와 붙어 있어 보니 이제야 진짜 아빠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꼭 지난 1년 동안 나 혼자 엄마였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남편의 손에 안겨있는 우주의 볼이 발긋했다. 심상치 않아 보여서 이마를 만져보니 뜨끈했다. 어째 쉽게 볼 열이 아닌 것 같았다. 엄마의 손바닥은 때로는 체온계보다 정확하니까. 열이 나는데도 카디건을 껴 입힌 아이를 받아 들고 서둘러 옷부터 벗겼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부터 우주는 열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살림이나 육아를 공평하게 하기 위해 남편을 개조시키려고 싸우거나 혹은 어르고 달랬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그렇게 많은 열의와 정성을 쏟아붓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내 아이와의 시간이 너무 좋았으므로 함께 하거나 나누지 못한다고 해서 억지로 끼워주고 싶지 않았다. 20분 40분 때로는 한 시간씩 아이를 안고 팔이 떨어져 나가라 재울 때도 왜 저 사람은 애가 우는데 자기가 달래거나 재우려고 하지 않을까 화나기보다, 이 시간을 통해 쌓이는 아이와 양육자의 유대를 저이는 평생 모르겠구나 안타까웠다.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아이의 표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 세상에서 그걸 아는 건 나뿐이겠구나 아까웠다.
그럴 때마다 우울하고 속상한 게 사실이지만 굳이 이제 당신 차례야 나도 좀 쉬 자며 우는 아이를 넘겨주지 않았다. 남편을 바꾸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대신 아이와의 시간을 더 만끽하다가 가끔씩 한 번 퓨즈가 나가면 반나절이나 하루 나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면 됐다. 그러면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끔 힘에 부친다 싶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여행을 가거나 그래도 안 되면 '나는 미혼모다' 주문을 걸었다. 너무 힘들어도 피곤해도,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도 나는 미혼모니까. 남편 없이 혼자인 게 당연하니까라고 생각하면 버틸 수 있었다.
남편이 어느 정도로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없었는지 세 살이 된 하나가 가위질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빨리 나에게 하나 가위질하는 거 보라며 놀라워했다. 세상에 아기가 저절로 잘하게 되는 게 있을 리가 있나. 수저를 잡는 법,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 법, 빨대를 쪽 하고 빨아들여서 컵에 든 것을 삼키는 법, 가방을 메는 법, 변기에 쉬 하는 법 등등 어른들이야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부모가 옆에서 알려주고 도와줘야 겨우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가위질은 두 손가락을 동그란 곳에 넣고 반대편 손가락이 다치지 않게 가위 뒤로 오게 한 다음 종이가 잘 잘리도록 들고 있는 법까지 모두 가르쳐야 하는 고급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엄마인 내가 무수히 많은 색종이를 자르고 치워가며 가르친 것이다. 아이가 가위질을 할 때마다 엄청난 재능을 발견한 것처럼 적절한 칭찬을 곁들여 가면서 말이다. 그걸 모르고 마치 아이가 스스로 터득한 것처럼 신기해하며 물어보는 꼴이라니.
어느 날은 주말에 낮잠을 자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하나와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남편이 너무 잘 그렸다며 이거 엄마 보여주자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막 쉬려고 누운 사람에게 딸을 들여보내는 저 사람은 지금 제정신인가. 내가 잠시도 쉬는 꼴을 못 보겠는 게 아니라면 왜 저럴까. 이쯤 되면 나랑 싸우자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자랑스럽게 그림을 들고 온 하나를 우선 칭찬해 주고 뒤따라온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
"당신이 처음 본 거라고 나도 처음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본건 이미 다 내가 수십 번 봤던 거야."
언젠가 내가 아이를 키우며 겪은 일을 글로 풀어낸다면 아빠 혹은 남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우주 하나와 나 우리 셋은 그렇게도 잘 굴러가는 팀이었으니까. 그 단어를 배제하는 것이 너무하다거나 부당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주가 자다가 열이 40도가 넘게 펄펄 끓어서 응급실 가야 한다고 깨워도 술을 이기지 못하던 남편을 볼 때 그랬다. 급성 중이염으로 귀가 아프다고 울면서 깬 우주와 갓난쟁이 하나를 아기띠에 안고 새벽에 택시를 불러 응급실에 갈 때도 그랬고. 우리가 병원에 갔다 올 때까지 우리가 나간지도 몰랐던 남편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꼈다. 카페에서 내내 아이를 안고 있다가 잠깐 남편에게 하나 좀 안고 있으라고 하고 빵을 한 입 무는 순간 핸드폰을 하느라 아이를 테이블 밑으로 떨어뜨렸을 때 역시 그랬다.
즐거울 때도, 아플 때도, 힘들 때도 우리는 거의 대부분 셋이거나 셋인 게 나았다. 자기 새끼라면 껌뻑 죽는 딸바보 아들바보 아빠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사람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아빠 노릇을 배워가고 있는 저 사람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준비 완료 상태가 된 나와 속도가 다를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핸드폰 뉴스 기사와 웹툰을 보는 사이, 야구 중계를 보는 사이, 잠을 자는 사이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나중에 얼마나 후회스러울까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고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을 조금 바꾸게 된 건 우주가 커서 아빠를 많이 따르게 되면서부터다. 아빠는 엄마가 못하는 게임을 잘했고, 새로 산 장난감을 척척 조립해 줬고, 엄마는 하기 싫어하는 수학과 한자 공부를 도와줬고, 학교에서 배운 프로그램을 깔아주고 컴퓨터를 알려줬다. 두 아이의 아빠이지만 여전히 하나를 달래서 욕실에 들어가는 것도 못해서 발가벗은 하나가 엉엉 울며 나에게 안기게 만들었지만, 우주가 크고 내가 일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종종 셋이 아닌 넷이 한 팀으로 잘 굴러가게 되었다. 마치 원래 넷이었던 것처럼 아빠의 자리는 따로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채워졌다. 가끔 넷이었다가 셋이 되면 나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게 버겁다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아빠로서의 남편을 못마땅해하는 것과 다른 이유로 남편도 나에게 불만이 있을 것이다. 남편의 불만은 아마 나와 종류가 좀 다를 거다. 표현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라 내 짐작일 뿐이지만 나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예상해보자면, 그건 바로 내가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오로지 엄마로만 살고 있다는 점일 거다. 부부 중심의 가족이 좋다는 걸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는데도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가끔 실수로라도 아이가 나를 다치게 하면 남편은 아이를 혼내고 나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애를 혼내냐며 남편을 뭐라 했다. 우주와 놀다가 나에게 뛰어들어 내 새끼발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나는 아이와 웃으면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병원에 갔다. 악 소리 나게 아파서 눈물이 줄줄 났지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내가 아프다고 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험한 말을 하는 건 절대로 싫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철심 박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길 듣자 우주에게 '야. 내가 조심하랬지.' 무서운 얼굴로 말했고,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남편을 흘겨봤다. '애한테 야라고 하지 마.', '엄마 다치게 하면 아빠는 안 봐줘. 너 진짜 조심해.', '실순데 왜 그래. 말 그렇게 하지 말랬지." 뭐 이런 대화가 계속 반복됐다. 남편 딴에야 속상해서 나를 위한다고 하는 말이였겠지만 그렇게 나를 아끼면 애나 볼 것이지 하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햄버거 집에 갔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쟁반에 쏟아 놓고 다 같이 먹고 있었다. 잡기 편하고 먹기 좋게 잘 튀겨진 노릇노릇한 것들을 아이들 앞에 밀어 두고 나는 작고 탄 것만 골라 먹고 있었는데, 내가 골라둔 기다랗고 예쁜 감자튀김들이 자꾸 남편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눈치를 주려고 계속 쳐다봐도 모르길래 참다 참다 그만 좀 먹으라며 한 소리 했다. 남편은 내 황당한 잔소리에도 '아, 그랬어? 몰랐네.' 하고 집었던 것을 다시 놓았다. 당신 너무하다 라거나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핀잔의 말없이. 그 말을 뱉어 놓고는 스스로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깟 감자튀김이 뭐라고, 양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나는 아이들 일이라면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내 지구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았다. 그런 내가 남편을 못마땅하게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나를 남편이 서운해하지 않을 리도 없었다.
남편으로 아빠로 서운한 일을 남에게 털어놓을 때면 주변에서 참 다양한 조언을 해준다. 외할머니는 옛날에 엄마에게 남자들은 말을 해줘야 안다며 콩나물에 물 주듯 끊임없이 얘기해 주라고 하셨단다. 한 친구는 쌍욕을 하며 박 터지게 싸워 드디어 쟁취하게 된 아빠 노릇에 대해 일러주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러려니 하고 산다. 한의원에 갔더니 화병이라던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도 아마 내 마음가짐과 무관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바꾸는 사람 역시 괴로울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도하는 게 두렵다. 나 역시 남편이 나에게 아내로도 잘해주길 변화를 요구한다 해도 바뀔 자신도 없고.
내가 기대를 거는 건 언젠가 때가 있을 거라는 거다. 남편이 지방에 발령받게 되어 서울에 있는 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여기로 함께 내려와야 했을 때 나에게 한 얘기가 있다. 언젠가 내가 당신을 위해 사는 날이 있을 거라고. 나는 그 말이 남편이 아닌 아빠의 자리에도 해당되는 말 같았다. 남편은 뭐든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닦달하며 상처를 만들고 싶지 않다. 필요하다면 내가 엄마 노릇을 놓고 잠시 쉬고 싶을 때 이 사람이 아빠 노롯을 할 것이다. 그때는 또 그들 셋이서 아주 잘 굴러가는 한 팀이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정성을 쏟을지 모른다. 아빠에게 긴 감자튀김도 못 먹게 하는 엄마나 애가 열이 나도 세상모르고 자는 아빠나. 우주와 눈사람을 만들고 자전거를 알려주며 쌓은 유대감도 닌텐도 게임 몇 번에 아빠 편이 되는데 누가 잘하고 있는 거라고 확신이 들지 않았다.
혹여나 이 글을 보고 역시 비혼, 역시 비출산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노파심에 얘기하자면 결혼과 육아의 좋은 점은 다들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게 이쪽 룰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렇다고 결혼하라는 건 아니고 그냥 알고는 있으라고. 아무튼 사람들은 입으로든 글로든 행복한 일 보다 힘든 일을 털어놓고 싶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