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의 2인 3각 달리기
최근에 우따따 매거진과 인터뷰를 했다. '다양한 주 양육자의 얼굴'이라는 주제로 첫 인터뷰 주자가 되어 일과 육아 전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목은 <파트타임 워킹맘의 남편 도움 없이 혼자 양육하기>로 올라왔다.
인터뷰이였던 수정님이 뽑은 제목이 기가 막혔다. 남편 도움 없이 혼자 양육하기라니. 정곡을 찔려서 웃펐다. 하지만 돌려 말하지 않는 방식이 나와 닮아 있는 참 적절한 제목이었다.
남편이 얼마나 바쁘길래, 남편이 얼마나 육아를 안 하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육아를 하지 않는 남편이 아닌 아이와 떨어질 수 없었던 나의 이야기였다. 그 인터뷰를 한 건 남편을 욕 먹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저는 육아와 일 모두 잘 해내고 있답니다 뽐내기 위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잘하고 있기는커녕 여전히 구렁텅이에서 빠졌다가 겨우 기어 나와 며칠은 잘 살고 있구나 안도하며 행복했다가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니까. 그저 이런 삶을 살고 있다고. 비슷한 입장인 다른 엄마가 있다면 함께 발버둥 쳐서 구덩이 밖으로 나가 허리 한 번 펴고 마주 서서 토닥이고 싶었다.
인터뷰이였던 수정님은 갓난아기를 키우며 프리랜서로서의 시작을 고민하고 계셨다. 그래서 말하는 내내 인터뷰를 한다기보다 이제 막 육아의 맛을 알아가는 동생에서 언니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마음이 되었다. 종국에는 인터뷰를 접할 엄마들도 육아는 아주 힘든 일이지만 그 안에서 진심으로 아이들과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할 수 있다고. 해보니 또 되더라고. 나보다 더 나을 거라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희정 님은 어떻게 주 양육자가 되었나요?
인터뷰의 첫 질문은 어떻게 주 양육자가 되었냐는 것이었다. 사전에 받은 질문지를 읽으며 나는 '출산'이라고 짧게 메모해놓았다. 인터뷰에서는 무통주사를 맞거나 수술을 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했다고 짧게 언급되어 그게 주 양육자가 된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조금 의아할 수 있지만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자연주의 출산은 의학적 시술을 최대한 배제한 자연스러운 출산 방식으로 통증을 줄여주는 무통주사나 촉진제 등 약물의 사용을 자제하고 엄마가 아이가 주체가 되는 출산 방식을 말한다. 출산 환경도 병실이 집과 비슷하게 꾸며져 있거나 병원이 아닌 조산원이나 집에서 낳을 수도 있다.
자연주의 출산에서 중요한 건 호흡이다. 흔히 출산을 할 때 산모가 계속 비명을 지르고 고통스러워한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진통은 주기적으로 간격을 두고 찾아온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이걸 파도에 비유하는데 진통이 밀려올 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지만 그 진통의 파도가 밀려가면 잠시 이야기할 정신도 있고 목을 축일 수 있는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진다(물론 컨디션이 좋은 상태라 할 수는 없다)
진통이 느껴진다는 건 아이가 나오려고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고 잠시 진통이 사그라들면 아이도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맞는 무통주사는 이 진통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 비록 아픔은 덜하겠지만 아이가 언제 나오려고 하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합을 맞춰 엄마가 힘을 줘야 할 때도 알기 어렵게 된다.
나에게 자연주의 출산은 아이에게 좋은 출산 방법이라던가 유행하는 출산 방법이라던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출산이라는 그 두렵고 감동적인 순간에 내가 주체가 된 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는 내 결정권이 중요한 사람이어서 내가 아픔을 느낄 때도 내 몸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불안했다. 아이가 나오려고 해서 아픈 것인지 출산 과정에 문제가 있어 아픈 것인지 아프더라도 이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아픔의 파도가 어떻게 지나가게 되는지, 보이지 않는 뱃속에서 아이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아플 때와 견딜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고통을 줄이는 대신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치고 무작정 아이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날 진통하면서 아이와 내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주 강렬하게 깨달았다. 필요하다면 중단하고 수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술이 꼭 필요한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내 혼자의 힘으로 낳길 선택할 수도 있다.
아이가 나올 때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만큼의 인내심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쏟아부으며 해내고 싶었다.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이 아이를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도울 수 없다. 이 아이를 배 밖으로 밀어내는 건 이 지구에서 지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는 나보다 더 애쓰고 있다. 태어나기 위해서. 엄마가 자신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주길 바라면서.' 이대로 기절이라도 하면 어떻게든 아이가 태어나 있지 않을까.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이런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프다는 것과 아픔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할 때, 아픔에 지배당하지 않고 아이와의 교감에 집중하려고 했다. 너도 애쓰고 있을 텐데. 나도 생명을 품어본 게 처음이라 이렇게 아파 본 적이 없어. 이런 종류의 고통은 처음이라 번번이 네 시도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파도가 잦아들고 잠시 진통이 멈추면 욕조 안에서 잠시 한 숨 돌렸다. 우리 다시 한번 해보자. 다음 신호에는 엄마가 진짜 잘해볼게. 내 마음속의 말이 나도 모르고 튀어나왔는지 나를 돕던 조산사는 미안하다는 말 그만해도 된다고 다독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빨간 아이를 품에 안고 미안하다고 끊임없이 얘기하며 울고 있었다.
출산은 아기와 내가 탯줄로 묶인 2인 3각 달리기였다. 우리는 아직 얼굴을 마주 본 적 없는 사이일 때부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믿는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태어나고 태어나게 하기 위해 서로를 도왔다. 그러니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건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가 아니었을까. 내 몸 밖으로 떨어져 나온 심장처럼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도 이 날부터였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