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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Dec 23. 2021

주머니 속에 사탕 하나

아가야 울지 말아라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비타민이나 사탕 같은 것들이 통에 남아 있을 때가 있다. 외투 주머니에서도 터지지 않고 용케 버틴 젤리 봉지가 나온다. 달콤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당연히 내가 먹는 것은 아니고, 하나를 달래서 집에 들어갈 때 써먹기 위한 비상식량이다. 그리고 가끔 우느라 어쩔 줄 모르는 아기를 달래느라 곤혹스러운 엄마를 만나면 건네주기도 한다.


하나가 세 살 때쯤. 단둘이 지하철을 탔는데 낮잠 시간이라 계속 찡찡거려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 하필이면 항상 가지고 다니던 간식이 떨어진 걸 모르고 용감하게 지하철을 탄 날이었다. 쳐다보는 사람들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아이를 재우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작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계시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사탕을 꺼내 주셨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서 봤던 유가 사탕과 음식점 계산대에 흔히 있는 땅콩 맛 알사탕이었다.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여러 번 인사하고 사탕으로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당연히 하나는 아직 그 사탕을 먹을 수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할머니께 감사했던 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울고 있는 아기와 를 달래는 나를 안쓰럽게 봐주는 누군가의 참견이 고마운 것이었다.


하나는 먹을 수 없는 사탕이었지만, 그게 사탕이라는 건 아는지 새로 생긴 장난감의 등장에 순간 울음이 그쳤다. 바스락거리는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껍질을 깐 사탕은 할머니의 주머니에 오래 있었는지 끈적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사탕은 그 어떤 어린이용 고급 사탕보다 더 위대했다.

껍질을 살짝 깐 사탕을 아이는 혓바닥으로 조금씩 핥았다. 다른 한 손에는 바스락거리는 사탕 봉지를 만지고 있었다. 그렇게 울음이 그친 아이는 거짓말처럼 곧 잠들었다.


조금만 더 달래도 울음이 안 그치면 다음 역에서 내려야겠다 마음먹은 참이었다. 우리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몇몇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어려워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게 할머니가 주신 눅눅한 사탕은 '괜찮다'는 위로가 되었다. 우는 아기를 보며 짜증 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기가 울어서 어쩌냐 엄마가 고생한다던 할머니의 한 마디와 사탕은 큰 위로가 되었다. 할머니의 따뜻한 참견은 지하철 안 공기를 바꿔놓았고, 잠든 하나를 안고 나는 마음 편히 도착역까지 갈 수 있었다. 그게 너무나 고마웠다.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면 나는 종종 카페에 글을 쓰러 나온다. 아무래도 집은 등원 전쟁을 끝낸 후라서 거실 바닥에 뒤집어져 있는 아이들 잠옷과 어질러진 아침 식탁을 모른척하고 집중하기 어려우니까 도서관이든 카페든 밖으로 나오는 편이다. 그걸 다 치우다가는 끝나지 않은 집안일이 꼬리를 물고 따라와서 일은 시작도 못할 게 뻔하다.

혼자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할 때도 하나의 간식 통을 열어 비타민과 젤리, 사탕 같은 것 여러 개를 집어 가지고 나간다. 혹시 이 작은 사탕이 어느 엄마에게 괜찮다는 위로가 될지도 모를 테니.


그 시간 카페에 가면 아직 어린 아기를 아기띠나 유모차에 태우고 오는 엄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혹자는 낮 시간에 엄마들이 팔자 좋다 생각하겠지만 혼자서 갓난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하루가 얼마나 긴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벗어나기는커녕 주위 풍경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이상한 트랙을 뛰는 기분 말이다. 요리를 하고, 밥을 먹이고, 청소를 하고, 아이와 블록으로 신나게 놀고, 산책을 하고, 간식을 먹이고, 그림책을 봤는데도 아직 정오가 안 되었을 때의 참담함이란.


이맘때 엄마들은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은 몸으로 허리와 손목 통증을 견디며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아기를 키운다. 인생 최악의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아기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느끼는 이 대비되는 모순 속에서 지금 내가 행복한지 괴로운지 종종 헷갈릴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기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예쁜데, 나는 가끔씩 13층이었던 우리 집 베란다 창밖을 보며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9년에 발표한 <자기만의 방>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다.


그녀의 재능은 훈련을 받을 수 없었지요. 그녀가 선술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한밤중에 길거리를 배회할 수 있었을까요?


이 글은 1928년에 쓰였고 여기서 말하는 그녀는 셰익스피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시대와 무관하지 않게 읽힌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저녁에 친구 한 번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 있을까. 저녁에 잠깐 혼자 외출을 하고 싶어도 아빠 손에 안기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안쓰러워 단념한 적이 여러 번이다. 주변에 출퇴근하는 엄마들은 아이가 아프면 나라에서 일 년에 이 만큼은 쉬어야 한다고 지정해 놓은 휴가를 끌어다 아이를 돌본다. 내 지인은 야근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도, 친구들이 다 떠난 어린이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하원하는 아이에게 미안해서 허겁지겁 뛰어간다고 말해서 마음 아팠다. 일을 하든 하지 않 여전히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자유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니 엄마들이 낮에 아이와 함께 잠시 카페에 나온 것은 한가함과는 거리가 멀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도 여전히 아이를 떼어 놓고 자유롭게 시간을 쓰기 어려운 엄마들은 아이 낮잠을 재울 겸 유모차를 태워 바깥나들이를 나온다. 아이와 보내는 24시간에 잠시 쉼표를 찍으려고. 사회생활이 뭐였는지 잊을 때쯤 바깥바람이라도 쐬어 보려고. 카페에 와서도 조금이라도 더 앉아 있고 싶어 언제 칭얼거릴지 모르는 아기의 간식과 장난감을 바리바리 챙겨 간신히 커피를 주문한다. 한쪽 다리로 유모차 바퀴를 밀며 잠든 아이가 깰 새라 눈치를 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나는 그런 엄마들이 애틋하다. 나 역시 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너무 잘 아는 익숙한 고단함이었다. 아이와 카페에 왔다고 해서 커피를 제대로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가끔은 뜨거운 커피가 다 식도록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할 때도 있고. 반대로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단숨에 쭉 마셔버리고 바로 다시 나가야 할 때도 있다. '마음 편히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내가 일 년 전 까지도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니까. 정말 어쩔 때는 생리대를 갈 시간도 없어서 팬티까지 젖어버린 후에야 겨우 화장실에 가기도 했었다.


카페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보면 이제 나는 그 대견한 엄마들의 귀여운 아기를 잠시 안아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내가 한 5분만 안고 있어도 그 엄마의 손목은 무거운 아기의 엉덩이를 받치는 대신 따뜻한 커피잔을 들 수 있을 테니까.

엄마가 아무리 애써도 아기가 달래지지 않으면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챙겨 나온 간식들을 보여준다. 개월 수에 따라먹을 수 있는 것이 다르고, 아기가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아기에게 먼저 권해서는 안 된다. 아기가 발견하면 막무가내로 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엄마에게만 식탁 밑으로 슬쩍 보여주면서 '이거 아기가 먹을 수 있어요?' 하고 작게 묻는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며 친절한 사람들이 보여준 오지랖 덕분에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고 믿고 있으니 용기를 내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서 유모차를 끌고 내려갈 방법이 없어 당황하고 있을 때, 같이 들자며 유모차를 잡아준 다른 집 아이 아빠. 버스에서 아기띠를 하고 서서 가던 나를 자기 자리에 앉혀준 청년. 식당에서 유모차를 밀고 오는 걸 보고 문을 잡고 있어 준 아주머니. 토한 아이의 옷을 정신없이 닦고 있던 내게 가방 속에 있던 물티슈를 통째로 주고 간 학생. 나는 그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어린아이와 외출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경험들은 난감한 순간이 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도 될 거라,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 믿게 만들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며 배려심 가득한 오지랖을 여러 번 경험해 본 후로 나는 키오스크 앞에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망설이지 않고 말을 걸게 되었다. 노화된 청력과 함께 커진 목소리로 대화하는 할아버지의 통화소리에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우당탕탕 떨어뜨리고 부딪히는 어린이들의 아직 덜 다듬어진 행동을 과정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꼭 아기 엄마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 세상에 모든 약자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돕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이건 한 번도 약자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의기양양한 20대 여자가 자라서 아기를 키우며 배운 커다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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