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희정 Aug 31. 2023

커피 맛도 모르면서

아주 뜨거운 카페라테


커피 맛도 모르는 사람이나 그렇게 먹는 거지. 그렇게 생각해도 별 수 없다. 나는 커피 최적의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한 적당한 온도 따위는 사실 상관없다. 촌스럽지만 전기 포트에 보글보글 물거품이 올라오게 끓인 뜨거운 물로 만드는 커피를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커피는 뜨거운 잔의 끝을 양손으로 겨우 잡고 호호 불어가며 조심히 먹어야 될 정도의 따뜻함이다. 절반 정도 마신 후에야 일반적인 온도의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되는 상태가 최적. 그래야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맛있게 마실 수 있다.  

당연히 추출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핸드드립이나 적정 온도가 설정되어 있는 캡슐커피는 즐겨 먹지 않는다. 가장 선호하는 건 가스불에 팔팔 끓인 모카포트 커피. 그다음은 (뜨거운 물로 만든) 아메리카노다.

      

그나마 원두와 물의 조합은 미지근해도 잘 참고 먹는 편인데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건 미지근한 라테다. 내가 커피를 받으며 듣고 싶은 유일한 말은 '뜨거우니 조심하세요'지만 내 요구는 번번이 수용되지 않는 편이다. 주문할 때 뜨겁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해도 내가 받은 건 미지근한 온도를 겨우 면한 수준의 따뜻함일 뿐. 

입천장이 홀라 까질 정도로 뜨겁게 해달라고, 이게 라테인지 국밥인지 모르게 아주 그냥 팔팔 끓여달라고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카페에서 뜨거운 라테 마시기는 은근히 어렵다. 그런 난리를 치면서 까지 뜨거운 라테를 주문할 용기는 없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주문을 마친 후에 카드를 챙기면서 ‘그런데... 좀 뜨겁게 해 주세요.’ 정도.


바리스타가 내가 원하는 만큼의 아주 뜨거운 라테를 만들어 주지 않는 이유는 알고 있다. 라테 한 모금을 마시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미지근함에 다시 데워주길 부탁하러 갔다가, 우유가 너무 뜨거우면 맛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유에서 비린내가 날 수 있다고 했었나, 아무튼 이러저러한 연유로 그렇게 먹으면 맛이 없으니 이게 적당한 온도라는 설명을 들었다.


기껏 잘 만들어준 커피를 맛없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손님이 되어버린 나는 낯 뜨거운 얼굴을 감싸고 황급히 자리로 돌아왔다. 지식 하나를 습득했고 민망함은 덤이었다. 그래서 아주 뜨거운 라테를 주문할 때마다 조금 민망해진다. 네, 저는 커피 맛을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맛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뜨거운 게 좋으니 어쩐답니까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으니.... 뜨거운 커피가 도착하길 바라며 기다렸다가 복불복으로 미지근한 라테 받았다면 그나마의 온기가 사라지기 전 단숨에 마셔버리는 수밖에.

     

해외 스타벅스에서 커피 주문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까다롭게 요구사항을 얘기하는지 알려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너무 뜨겁지 않게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뜨거운 커피에 얼음 세 알을 넣어달라고 하는 식이었다. 아마도 영상 속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정확한 온도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겁게, 덜 뜨겁게, 아주 조금 뜨겁게 등등 여러 번 주문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다, 비로소 딱 맞는 온도의 커피를 받아 들 수 있는 주문 법을 찾은 게 아닐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요청사항도 당연한 듯 불평 없이 주문받는 직원을 보며 살짝 부러웠다. 저기에 가면 나도 아주 아주 뜨거운 라테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키즈와 계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