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욕 나온다.
이 사람들은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작년 8월에 신청한 내 미국 영주권은 아직도 '처리 중'이다.
지난 달에 남은 예상 처리 기간을 'USCIS (미국 이민국)' 웹사이트에서 확인했을 때는 '2개월'이라고 했다.
어제 확인해 보니 '6개월'이라고 뜬다.
"뭐야 이거.
어떻게 처리 기간이 더 늘어날 수가 있어?"
미국에서 ParaLegal로 일하고 있는 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야, 뭐 이런 경우도 있어? 어떻게 처리 기간이 줄어드는 게 아니고 늘어나냐고?'
'응, 요즘 그렇더라구. 그래도 NVC (National Visa Center) 처리 기간은 좀 빨라졌대.'
'전화를 해도 직원과 연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되는 건 말이 안 된다.'
'언니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기다릴 수밖에.'
'사실 우리처럼 간단한 케이스가 어딨어? 영주권자였지, 결혼 한지 20년 넘었지, 미국 은행 통장도 부동산도 모두 공동 명의지, 세금도 꼬박꼬박 냈지.....'
미국 이민국에서 왜 내 케이스를 빨리 처리해야 하는지 이유를 열거했다.
'언니가 보기엔 쉬운 케이스이겠지만 공무원들이 보기엔 전형적인 케이스가 아닐 수도 있어 ㅎㅎ.'
'아~~~ 뭐라구?? 뭐래?'
'그러니까 좀 일찍 신청하라 그랬잖아.'
미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면 영주권 신청을
빨리하라는 동생의 말을 듣지 않았던 건
퇴직 후 미국으로 이전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었고,
계획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주권만 받아 놓았다가 미국에서 거주하지 않으면 추후 미국 입국 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도 됐고,
무엇보다 내가 10여 년 전에 반납한 영주권을 맡긴 물건 찾든 다시 되찾으면 될 거라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받았던 미국 영주권을 해외(미국 영지 외)에서 체류하는 동안 미국 대사관에서 '재입국허가'를 연장하다가 '영주권을 반납하고 추후 미국에 거주하게 되면 그때 다시 영주권을 신청하는 방법도 있다'는 말을 듣고 '과감하게 영주권을 포기해 버렸다. 대사관 직원은 내가 스스로 포기했으니 'surrender'라며 나에게 재차 확인한 후 접수했다. 그렇게 내 첫 미국 영주권은 효력 상실됐다.
20년 전에 미국 영주권을 신청했을 때는 승인까지 3개월가량 소요됐었다. 당시 9.11 테러로 인해 미국 대사관이 일시적으로 업무를 중단했던 일이 겹쳤음에도 총 100일이 걸리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과정이 쉽기만 했던건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 일정 기간 이상 거주했던 모든 나라의 범죄 경력 증명서를 첨부해야 했는데, 한국의 범죄 경력 증명하는 것에 시간이 걸렸다. 요즘은 '경찰청 웹사이트'를 통해 바로 출력할 수 있는 증명서가 당시에는 미국 대사관에서 직접 경찰청에 의뢰해서만 받게 되어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이 '범죄경력증명서' 위조가 많은 나라여서 그렇다고 미국 대사관 직원이 그 부분은 직접 정부 간 처리한다고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라 해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내가 어떤 예방접종주사를 맞았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죽기야 하겠나'하며 미국 대사관 건너편에 있는 병원에서 미국 거주 전에 필수로 접종해야 할 모든 예방주사를 한 번에 맞고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증명서를 제출했다.
남편은 이미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였고, 나만 싱가포르에 덩그러니 남게 됐다.
가뜩이나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차에 9.11 테러까지,
'아무래도 미국은 살 곳이 못 돼.
뭔가 느낌이 안 좋아.'
불안과 걱정으로 잠을 못 잔다는 말을 듣고 동생이 세 살 난 어린 딸과 싱가포르에 와서 나와 함께 지내 주었다. 나의 출국일자가 내가 정한 스케줄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불쾌하고 자존심 상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내 케이스가 특별히 신속하게 승인되었던 거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당시에 우리가 거주하고 있던 '싱가포르 미국 대사관'에서 신청했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 까 싶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민비자나 영주권 신청 건 수가 얼마 되지 않았을 테니.
'코로나 때 처리 못한 신청서 처리 하느라 아직도 많이 밀려 있는 상태라 그렇대. 이민국에서만 10~15개월 가량 걸리고, NVC (National Visa Center)에서 2~12개월 소요된다는데. 그나마 '배우자 초청'이라 다른 종류의 영주권 보다 우선 순위가 있어서 처리 기간이 빠른 편이야.'
동생의 말에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럼 그냥 미국에 입국해서 다시 신청할까?
우리가 지금 제출한 건 '해외 거주 미국 시민권자'가 배우자를 미국으로 초청하는 건데, 미국에 입국해서 내용을 변경해서 다시 신청하는 건 어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어.'
그나마 영주권 승인 처리 기간 중에도 미국 출입은 자유롭다니 다행이다. 싱가포르에는 영주권자로 거주하고 있으니 남편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거주 비자 문제로 싱가포르에서 당장 출국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큰 문제는 없지만 '정해진 기한이 없는데 기다리는 방법 밖엔 없다'는 것에 힘이 빠진다.
우리가 최근 이민비자 신청 과정이나 절차가 많이 달라졌음에도 사전에 잘 알아보지도 않고 이민국 웹사이트에 나온 대로 인터넷으로 서류 작성해서 제출하면 알아서 일사천리로 처리해 줄거라 믿었던 무지함도 잘못이지만 일처리가 이렇게 느려서야 '명 짧은 사람은 돌아가시겠다.'
'일을 철저하게 잘하느라 일이 지연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서 일 처리가 늦어진다는 건 이해가 안 돼. 여전히 코로나 핑계를 대고 있는 미국 정부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미국은 여전하구나. 답답해, 답답해. 뭐든 답답해. 나 같은 다혈질, 미국에서 혈압 올라서 어떻게 사냐.'
'ㅋㅋ 언니! 그러지 말고 형부 미국 이민국에 취업하면 어때?'
'뭐?'
'요즘도 충원한다고 광고는 계속하는데 여전히 인력이 부족한 가봐. 미국은 그렇잖아, 구인 구직할 때 남녀노소 차별 없는 거. 형부 이민국에 취업하라 그래.'
'뭔 소리야! 말이 되는 소릴 해. IT업계에서 광속의 스피드로 일하던 사람이 미정부 기관에서 공무원들 하고 일하다 열통 터질 일 있어?..................
그런데, 연봉이 얼마나 되는데?'
'ㅋㅋㅋㅋㅋ'
사는 나라를 옮기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
내 영주권 승인은 아마 시작에 불과할 거다.
'살아본 나라'라고 해도, 50이 넘은 나이에 외국인으로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고 적응해야 하는 나도 힘들겠지만, 30년 넘게 해외에서 일하고 살던 남편이 외국인 배우자와 본국인 '미국'에 적응하는 건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거다.
많은 나라에서 살아본 사람이
적응하기 가장 힘든 나라는?
'나의 나라, 나의 조국'
이라 하지 않던가,
이유는
'나는 그곳에서 애매한 이방인이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