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것

by 리나

퇴직을 결정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캘린더에 꽉 차다 못해 넘쳐흘렀던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남의 시간까지 훔쳐서 쓰고 싶었던 일상을 살다가 퇴직 후엔 '오늘은 뭘하며 시간을 보내나' 하며 '목적 없는 삶'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하루라도 못하면 '금단 증상'을 겪을 만큼 좋아하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베이비시터로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우리의 시간을 훔쳐갈 자식도 없고.

그렇다고 재취업을 할 만큼 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일은 할 만큼 해봤다. 어떤 일이건 '업'으로 하게 되면 액수와 상관없이 일에서 오는 보람보다는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 또한 따라온다는 걸 잘 알기에 재정상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굳이 하고 싶지 않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퇴직을 했거나 퇴직 연령인 60대 전후에 퇴직했거나 상관없이 '퇴직 선배들'이 우리가 '퇴직하기로 결정했다' 말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질문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축하해.
그런데 이제부터 뭘 할 거야?"


"글쎄. 아직 잘 모르겠는데... 뭔가 해야지. 아직 '은퇴'는 아니야. 현직에서 물러나는 '퇴직'이지.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다시 할 수도 있고. 파트타임으로 컨설팅이나 강연을 할 수도 있고. 뭐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다시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장황하게 대답을 한다는 건
아직 명확하게 결정한 것이 없다는 거다.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해도 인생에서 겪는 모든 일상과 마찬가지로 퇴직 후의 생활에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돼. 철저히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게 되면 생활을 재정비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할 거야."

.

"나는 퇴직한 요즘이 일할 때보다 더 바빠. 왜 바쁜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바빠. 그래도 젊었을 때 누리지 못했던 충만한 삶을 살고 있어. 요즘이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훨씬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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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좋아했었는데 시간이 없거나 상황이 되지 않아서 하지 못했던 게 분명 있을 거야. 잘 생각해 봐. 그걸 퇴직 후에 다시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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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

깜깜하던 머릿속에 환한 불이 켜진 듯했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게 뭐였을까?'

'피아노 치기, 학교 놀이하면서 아이들 한글과 숫자 가르쳐 주기, 글 쓰기, 고전 소설 읽으면서 주인공인 척 상상하기, 동네 아기들 돌보아 주기, 집안 치우기, 오래된 물건 반짝반짝 닦기...'


사소한 것까지 내가 어려서 좋아했던 일을 생각해 내서 노트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적고 보니 '어렸을 때~'라고는 하지만 적어 내려 간 항목은 모두 내가 '열 살 때, 초등학교 3학년 때' 좋아했던 것들이었다. 아마도 그때가 내 유년기 중 가장 '빛났고 행복했던 때' 였던지 어린 나를 상상하니 딱 열 살 (만 나이로 8살^^)인 때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나의 성적표는 수수수수수수수~ '올 수'였다.

그 성적표 뒷면에 담임 선생님께서 쓰신 평가란의 글이 생각났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으며 ~~~~"

글쓰기를 해보자.


30이 훌쩍 넘긴 나이에 붙인 취미가 있다면 '컨템퍼로리 아트'를 감상하며 작품을 만든 작가의 생각과 그 작가의 인생을 상상해 보는 거다. 항상 나는 왜 이런 예술적 감각이나 재능이 없을까 아쉬웠다. 남이 그린 그림을 놓고 흉내 내서 모사도 못하는 나로서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무에서 유를 창작하는 예술가'였다.


그 때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글'로도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됐고 단 한 번의 '작가 신청'으로 글을 써서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쓴 지 이제 6개월이 되었다.

체질상 블로그, 인스타그램 하다 못해 페이스북에 내 일상을 올리는 것도 싫지만 남의 일상을 보는 것도 거부감이 많은 나였는데 요즘은 나의 일상을 구구절절^^ 써서 브런치에 발행도 하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많이' 배우기도 한다. 만약에 일기를 쓰듯 노트에 글을 써서 혼자 해보려 했다면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글쓰기'를 지금처럼 즐기면서 하지 못했을 거고 진작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어렸을 때 좋아하던 것'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데 그치지 말고 생각 나는 대로 노트에 적어서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 순간 Aha! 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남편은 쌍둥이 동생을 자극해서 싸움을 시작하는 게 '가장 좋아하던 것'이었다며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 나 생각났어.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거. 게임~"

"굿굿... 어떤 게임?"


"모노폴리"

"그래? 그 게임이 왜 좋았어?"


"땅사서, 집도 짓고, 호텔도 짓고. 통행료 하고 임대료도 받아가면서..."

"음. 다른 사람들을 다 파산시키면서 까지 독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생각해 보자... 어렸을 때 그 게임을 왜 좋아했었는지. 그러다 보면 찾을 수 있을거야, 퇴직 후에 하고 싶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