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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Sep 02. 2023

주말이 되었다

"언니, 휠체어 혼자 타고 내릴 수 있을 때까지는 곁에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나를 옆집이라 부르는 옆 침대 아줌마와 내 앞의 두 아줌마, 세 명의 '오지라퍼 명랑 아줌마들'은 공교롭게도 오늘 동시에 퇴원하게 됐다며 내가 진심 걱정되는 듯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에게 '단체' 퇴원 소식을 전했다. 정형외과 입원 환자가 '낙상 환자'만 있는 게 아닌데 세 분의 아줌마들은 모두 낙상 환자로 하루 이틀 차이로 수술과 입원을 하고 오랜 시간을 이 작은 병실 안에서 함께 지내다 퇴원까지 같은 날 하게 됐다며 '우연 같은 자신들의 인연이 참 특별하다'했다.


명랑 아줌마들퇴원이라는 '해방감'에 들떠서 이틀 전 내가 입원했을 때, 평소보다 훨씬 오버해서 친절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독립적인 내 성격에 누군가에게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상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내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한 발 앞서 알아서 챙겨 주려 했던 아줌마들의 호의와 지나친 관심은 솔직히 불편했다. 한국적인 '인정 (人情)' 보다는 누군가 분명히 도움이 필요한 걸 알면서도 "May I help you?"라 묻고 확인한 후 액션을 취하는 '서구식 문화'에 내가 더 '익숙해졌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줌마들은 아침 식사 후 말끔하게 씻은 모습으로 병원 밖에서 입는 일상복, '자기 옷'으로 갈아입었다

병원 로고가 어지럽게 쓰여 있는 펑퍼짐한 면 100%의 환자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은 아줌마들은 사뭇 달라 보였다.


과연 병실 안에서 맺어진 이 분들의 특별한 인연은 퇴원 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내 맘대로 해보았다.

병원 안에서야 동일한 모양의 환자복처럼 별차이 없는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었지만 각자의 옷으로 바꿔 입는 순간부턴 각자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로 복귀하게 될 테니 이 안에서 '동병상련'이라는 기반 위에 쌓은 그들의 '우정'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듯하다.

 '연락하며 지내자'라는 상투적 인사말을 하며 병원문을 나서면 '무사 귀가'라든가 '건강하게 잘 지내', '목발 없이 잘 걸을 수 있을 때 만나서 밥 한번 먹자'와 같은 톡을 예의상 몇 번 주고받다 다리가 다 나아질 때쯤이면 스쳐간 인연으로 기억에서 잊힐  분명하다.



아줌마들이 떠난 후,

'주말에는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했는데 초저녁이 되자 병실을 떠난 숫자와 동일한 숫자의 사람들이 들어와 병상을 채웠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한참 젊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오늘 입원한 사람들은 몸만 이곳에 있을 뿐 모두들 바깥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누군가에게 화와 불만을 실어 이메일을 쓰고 있는 듯한 요란한 타이핑 소리, 전화로 업무처리하는 소리, 영상 통화하며 어린아이를 달래는 젊은 엄마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시끄럽고 거슬렸던 아줌마들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빠져서일까, 정신을 몽롱하게 했던 링거액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서일까, 전신 마취 후유증일까... 나의 지병인 우울증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슈퍼 킹 사이즈 침대에서 좁고 딱딱한 싱글 침대로, 내가 좋아하는 락스 냄새가 진동하는 변기와 반짝반짝 닦아 놓은 세면대가 있는 욕실에서 여럿이 함께 쓰는 지저분한 장애인 화장실로, 아침저녁 시도 때도 없이 해대던 샤워는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내는 고양이 세수로,

바뀌었지만


'I have No Choice',  별 다른 방법이 없다.

그저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2022년 8월 25일, 정확히 1년 전 오늘,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혼자 지켰다. 자의 반 타의 반 호스피스 병동에 혀서 (코로나로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일주일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임종 때 '전환점'을 지나셨음을 나에게 알려 주시 듯 요란하게 몇 번의 숨을 고르시고 나서 길게 마지막 호흡을 뱉으시며 지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하셨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녁 회진을 마친 담당의사가 나에게 들러서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하며 명랑하게 인사를 한다. 


내 눈치를 살피며 고쳐서 다시 말한다.

"아.. 저기... 그게... 주말 잘 지내시고 저는 월요일 아침에 찾아뵐게요."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내 표정에서 무시무시한 '쏴함'을 느꼈던가 보다.

순진한 의사...

주말에 '무서운 표정'을 한 내 얼굴이 나오는 악몽에 시달리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25/0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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