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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31. 2023

커피는 만병통치약

산고(苦)를 직접 겪어 보진 않았지만, '무릎으로 애를 낳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게 지속되는 둔탁한 통증으로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통증이 심하면 지금 링거로 맞고 있는 진통제보다 강력하고 효과 빠른 '엉덩이 주사'를 놓아주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한 방' 맞아야겠다.


주무시는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이 깰까 싶어 숨죽여 끙끙거리며 간호사를 호출한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서른이나 되었을 까 싶은 앳된 간호사는 마치 적군을 물리치고 기세등등하게 귀향하는 '장군' 마냥 드르륵 힘차게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왔다.


"환자분~ 많이 아프세요? 엉덩이 주사 한 대 놔 드릴게요. 옆으로 살짝 돌아서 바지 조금만 내려 주세요."

'우렁찬 목소리가 톤(tone)까지 높을 수도 있구나. 그냥 조용히 들어와서 조용히 주사 놓고 조용히 나가면 될걸. 뉘 집 딸인지, 참 씩씩하다.'

"좀 뻐근해요~"

하는 말과 동시에 손가락 몇 개로 주사 놓을 자리를 '찰찰찰' 소리를 내며 두드린다.


주사를 맞고 있는데 옆 침대 아줌마가 커튼을 휙 제치고 몸은 침대에 똑바로 누운 채 머리만 내 쪽으로 쑥 디민다.

"옆집~~ 많이 아파요? 수술하고 하루 이틀은 많이 아파요. 마약성 진통제 없인 힘들어요."

이 상황에 프라이버시를 운운하는 것도 뭣하지만 뭘 굳이 저렇게까지 아는 체를 해야 하는 건지. 간호사가 잘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처럼 커튼까지 열어서 주사 맞고 있는 나를 끝까지 지켜본다.


내 앞에 놓인 두 침대에서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줌마들의 길고 낮은 한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흐이이 이 이 이이 이~~~~ 후이이 이 이 이이 이~~~~"


요가식 호흡을 하면서 날숨을 길게 뱉어내 듯, 아줌마들의 한숨소리는 엿가락 마냥 끝도 없이 길게 죽~ 늘어졌다. 이제야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흐이이 이 이 이이 이~"로 시작해서 또 주~~ 욱 한숨이 늘어진다.

본인들이 겪었던 통증을 생각하며 '지금 이만큼 아프겠구나.' 말하는 것 같았다.

'동병상련'일까?


주사의 효과는 대단했다.

간호사가 주사통을 덜그럭 거리고 수선을 떨며 나간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팔다리가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잤을까?

"아아아악."

내가 지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반질반질한 돌 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꿈을 꾸었다.


'꿈이구나'

'그런데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그렇게 거친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간호사는 플래시처럼 자극적인 형광등을 예고도 없이 환하게 켜고 병실 환자들의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러 들어왔다 나갔다. 다시 좀 더 자볼까 했는데


"식사 왔습니다."


식이 식으로 나오는 건 당연한데, 아침(새벽)에 동태국이라~~

쟁반 위에 놓인 흰밥, 동태국, 계란찜, 마른반찬과 김치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닫는데,


앞 침대 아줌마가

"언니~ 밥 먹을 수 있겠어요? 내가 요거트를 만들어서 병실에 있는 분들 아침마다 한컵씩 나눠드리는 데 한 컵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옆 침대 아줌마는 포도알을 떼어서 종이컵에 가득 담아 내민다.

"옆집! 포도 먹어요. 과일 많이 먹어야 돼."


아줌마들은 나를 자기들 맘대로 '옆집' 혹은 '언니'로 부르기 시작했다.

'생사가 걸린 병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다 치유되는 거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요. 걱정과 조급함은 부서진 뼈를 붙여 주기 위한 진액 생성 속도에 가속도를 붙여 주지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는 병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데, 시간이 치유해 주는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걸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감사하세요.'


동아리에 처음 가입한 새내기를 챙기 듯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의 조언을 하다 내 반응이 시큰둥하자 비슷한 연배의 아줌마 셋은 마치 트리플룸에서 호캉스를 하는 여고 동창생들 마냥 하하 호호 다시 자기들만의 수다 세계에 빠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상하자마자 커피를 마셔야 하는 언니'를 너무 잘 아는 동생이 병실로 배달해 준 '귀한 생명수' 같은 '찐한 아메리카노'와 '베이글'.

조카 연이가 커피 마시는 인증샷을 보고 안부 인사를 전해왔다.

"커피는 만병통치약, 통증은 어떠십니까? 이모."


Coffee Fixes Everything!

지금 마시는 커피가 모든 걸 고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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