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눈이 떠지질 않았다. 추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윗니와 아랫니가 딱딱 부딪혔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움직이는 중에 희미하게 동생과 남편이 내 옆에 서서 따라오는 게 보였고 나는 정신없이 어딘가를 통과하고 있었다.
따뜻한 담요에 덮여서 병실로 옮겨졌다.
'목마르다. 물 마시고 싶다. 무울...'
"4시간 동안 금식이에요. 물도 마시면 안 돼요."
감정도 생각도 들어 있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로 귀가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치듯 말하는 간호사.
'네, 알고 있습니다. 안다고.'
간호사가 물에 적신 거즈를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아직 물은 못 마시지만 입하고 입술이 많이 말라서 거즈 넣어 드렸어요. 옆에 몇 개 더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교체하세요. 금식 시간 끝나면 조무사님이 식사 가져다 드릴 거예요."
몸도 이빨도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는데 거즈 덕분에 위아래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을 다물 수 있었다.
"환자분!! 잠드시면 안 돼요. 눈 뜨세요. 심호흡 열 번만 하세요.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당신, 목소리 너무 커... 시끄러워. 아. 귀찮아... 나 좀 내버려 둬.'
수술 전 얼핏 보았던 아줌마 세 명이 내 발치로 와서 심호흡을 해댔다.
"언니, 눈 떠. 숨 들이마셔, 크~게... 하나, 둘, 셋. 내 쉬어!. 하나, 둘, 셋. 들이마셔!"
오지라퍼들 셋이 한 방에 같이 있기도 쉽지 않을 텐데, 화통을 삶아 드셨는지 무슨 힘으로 저렇게 목소리가 큰 지.
한국에 보험이 없는 나로서는 1인실이나, 간호간병통합병동 다인실이나 병실료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혹시라도 간병인들의 도움이 필요할지 몰라서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생각지도 않은 '목청 큰 오지라퍼 아줌마들'과 함께 좁은 이곳에서 공생하게 생겼다.
오늘 참 버라이어티한 날이다.
"언니, 숨 쉬어. 안 그럼 폐가 아파. 후우욱,, 휴우우. 후우욱,, 휴우우."
아줌마들 수선에 휘말려 어느새 나도 숨을 크게 들이고 내고, 들이고 내고 쉬고 있었다.
누워 있자니 희고 환한 형광등 불빛이 거슬렸다. 물론 병실이니까 그렇겠지만 자극적으로 내려 비추는 하얀빛에 눈이 부시고 다리는 다리대로 무겁고 귀에는 이런저런 소음이 들려오는 중에도 깜박 잠이 들어, 자다 깨다 하길 반복했다.
취침 시간인지 병실 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고 복도 쪽에서 작은 불 빛만 문 틈을 통해 들어온다.
아줌마들도 주무시는지 조용하다.
내 입안에 든 거즈는 사극에서 보았던 가정 출산할 때 산모의 입에 물리던 헝겊 마냥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어도 이가 상하지 않게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꿈만 같았던 긴 하루, 앞으로 수술 자리에 별 다른 이상이 없으면
2주 후, 퇴원
8주 후면, 비행기 탑승 가능
6개월간의 재활 치료
2주 후 퇴원하면 거처를 어떻게 할까?
장애인 시설이 갖춰진 서비스 레지던스를 찾을 수 있을까?
이번 국제 이사는 남편에게 책임지고 알아서 하라고 말해 왔는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전적으로 남편 차지가 되었으니 알아서 하겠지?
앞으로 두 달 어디에 가서 뭐 하면서 재밌게 놀까?
남편과 아침에 커피 마시면서도 얘기했는데...
한국에서 치료받으며 눈물 콧물 짜면서 살게 됐다.
미국으로 이사 가기 전에 한두달 한국에서 지내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예상치 못했던 방법이지만 이렇게 이루어졌다.
표지 사진: 남편과 쌍둥이 동생이 열 살 때 집뒷마당에 심어 올해 50세가 된 나무.
2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