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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oo Kim Oct 19. 2022

에로 게임의 역사 (2)

00년대 전반의 에로 게임




그것은 흩날리는 벚꽃처럼それは舞い散る桜のように




들어가며



90년대 출생 서브컬처 유저들에게 "에로 게임을 해보셨다면 제일 처음 한 타이틀은 무엇인가요?"라 묻는다면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다. 카논, 투하트, 캔버스, 파르페, 둥지 짓는 드래곤 등등…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유저 한글 패치가 나왔거나, 유저 번역본이 나왔거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파급력이 컸던 작품을 꼽는다면 역시 Kj라는 국내 유저가 번역하고 그를 토대로 아르카디아 스튜디오에서 로컬라이징 및 개조한 『그것은 흩날리는 벚꽃처럼それは舞い散る桜のように』(2002)일 것이다. 벚꽃나무의 저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소년과 그를 사랑하게 되는 소녀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그림체로 일본 현지에서도 한국에서도 인기몰이를 한 작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는 90년대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건대 일본 에로 게임의 전성기는 00년대 전반기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또 OSMU로 파생되는 유수 에로 게임 콘텐츠들의 원작이 나온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연령 계열에서 유명한 몇몇 크리에이터들의 경우 이 시기에 청소년기~청년기를 보내며 몇몇 유명한 에로 게임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할 정도이다. 어떤 작품이 나왔고 어떤 담론이 생겨났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Fifteen~스쿨 걸즈 디지털 독본すくうるがあるずデジタル読本∼



(1) 00년대 전반의 에로 게임 – 1



① 인터넷 시대의 에로 게임


90년대 말부터 00년도 초반에 걸쳐 PC통신을 대신하여 인터넷이 PC를 경유하는 정보 인프라의 주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시기 픽션에서도 인터넷 환경을 화제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98년 리비도リビドー가 발매한 『Fifteen~스쿨 걸즈 디지털 독본~Fifteen∼すくうるがあるずデジタル読本∼』이 한 예이다. 게임 화면이 통째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모방한 브라우저 화면으로 되어 있으며, 주소창, 검색창, 즐겨찾기 등을 사용해 가공의 인터넷상에서 에로 사이트를 열람하는 느낌을 주었다.



나선회랑螺旋回廊



또한 새로운 기술이나 도구의 보급에 따르는 ‘이런 식으로 악용된다면 끔찍하겠구나’ 하는 발상을 토대로 한 작품도 나왔다. 00년 1월 발매된 ruf의 『나선회랑螺旋回廊』은,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인터넷 경유로 감시 혹은 계정 탈취를 당한 주인공 주변의 여자들이 처참한 폭력과 능욕의 늪에 빠지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하청으로 제작한 개발진은 이후 아쥬를 설립하게 된다.



퓨어 메일ピュアメール



00년 9월에 오버플로우에서 발매한 『퓨어 메일ピュアメール』 역시 메일과 채팅이 중요한 소재로 작용하여 히로인의 생생한 이면을 묘사하며, 이는 표면적으로는 학원 연애물을 자칭하면서 실체는 하드 조교물이라는 작품 자체의 이중성과도 연결된다.



PHANTOM –PHANTOM OF INFERNO-



② 니트로플러스의 업계 데뷔


00년 2월, 니트로플러스는 데뷔작 『PHANTOM –PHANTOM OF INFERNO-』을 발매한다. 주인공은 일본인 소년으로 해외에서 비밀결사단체에 의해 납치된다. 미소녀 암살자와 파트너가 되어 단련을 거듭한 끝에 그는 조직 내 최고의 암살자 ‘팬텀’의 칭호를 잇는다. 그러나 모종의 일로 조직의 간부와 대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학원 연애물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최루겜이 한창 나올 시기에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하드보일드를 고수한 역작으로, 3D 모델링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총기나 그를 설명하는 텍스트는 총기 매니아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했다. 이후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페이트 제로 등의 원안을 집필하는 시나리오 라이터 우로부치 겐虚淵玄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무크지 『이 미소녀 게임으로 모에하라!この美少女ゲームで萌えろ!』에 수록된 우로부치의 인터뷰를 동봉한다.


<저는 처음에 일반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거기서 미소녀 게임에 빠져 사는 동료를 만났고 “요즘 이 업계가 활발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략) 그 동료로부터 ‘키즈아토’를 빌려서 플레이했고, 제 입에선 “이건 소설이잖아!” 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작품이면서도 거기에 캐릭터의 심정이라든지 갈등이라든지 그런 부분을 생생하게 묘사하니 그것만으로 에로틱하게 느껴졌고 소위 정사 신의 묘사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꼭 특별한 경험이나 방법론이 필요한 세계가 아니구나 하고 말이죠. 물론 그런 특별한 게 필요한 게임도 실제로 있습니다만, 그런 게 아니더라도 상품으로 만들 수는 있다는 기대감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선 뭐 도박이었죠. 팔리느냐의 여부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리프의 90년대 명작들은 00년대를 장식한 유수의 시나리오 라이터들이 ‘딱딱한 소설이 아니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읽어 줄 수요 집단’을 찾아 업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00년대의 마에다 준, 나스 키노코, 우로부치 겐 등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20년대에 이르는 지금까지 수많은 인재들이 에로 게임계에 몰리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맞다.

판매 면에서 팬텀 오브 인페르노는 너무 유행을 도외시했다는 점과 소프륜 미가맹 상태라 유통 경로가 협소했다는 점에서 초동 물량이 소진되지 않았다. 우로부치 역시 해고를 각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넷상에서 입소문을 타고 호평이 늘어났고, 종국에는 컨슈머판 이식에 애니메이션까지 OVA와 TVA 두 차례에 걸쳐 제작되는 등 오랫동안 사랑받는 타이틀이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니트로플러스는 실력파 메이커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우로부치의 도박은 단기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흡혈섬귀 베드고니아吸血殲鬼ヴェドゴニア



팬텀 오브 인페르노 이후 00년대 전반 우로부치는 가면라이더 기조의 뱀파이어 헌터물 『흡혈섬귀 베드고니아吸血殲鬼ヴェドゴニア』, 사이버펑크 SF와 중국 무협소설과 남매애를 결합한 『귀곡가鬼哭街』, 그로테스크 호러와 비장한 순애를 양립시킨 『사야의 노래沙耶の唄』 등을 내놓는다. 이들 니트로플러스 초기작에서 훌륭한 캐릭터 디자인과 원화로 세계관을 지탱한 츄오 히가시구치中央東口에도 주목하도록 하자. (현재는 프리랜서이다)



행살♥신센구미行殺♥新選組



③ 라이어소프트의 약진


00년 4월 라이어소프트는 『행살♥신센구미行殺♥新選組』를 발매한다. 신센구미의 요인들을 여성 캐릭터로 TS한 역사물로, 각 캐릭터의 표정을 나타내는 다채로운 얼굴 파츠를 사용한 코믹한 연출과 더불어,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의 『불타라 검燃えよ剣』, 『신센구미 혈풍록新選組血風録』의 내용을 탁월하게 소화하며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스토리 구성이 일품이다. 주제가의 내용 역시 압권인데, 뭐든 할복으로 매듭짓는 국중 법도를 노래하고 있다.



쿠사리 히메腐り姫〜euthanasia〜



라이어소프트 약진의 발판이 된 본작 외에, 같은 메이커에서 00년대 전반에 출시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사피즘의 현창サフィズムの舷窓 〜The case of H.B.Polarstar〜』(2001)은 하나의 학원도시의 구조를 띤 초거대함선을 무대로 주인공 레즈비언 소녀가 선내에서 일어난 강간 사건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탐미 미스터리물로, 등장인물 전원이 여성이다. 『쿠사리 히메腐り姫〜euthanasia〜』(2002)는 루프 구조를 차용한 걸작 전기 SF물로, 일반적인 AVG의 스탠딩CG立ち絵와는 다르게 캐릭터가 배경의 구도에 따라 한 장의 그림처럼 녹아드는 화면 구성이 특징이다. 『포레스트Forest』(2004)는 영국 판타지 문예를 베이스로 한 공전절후의 걸작이다. 위 세 작품을 기획・집필한 호시조라 메테오星空めてお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시나리오 라이터는 누구인가 하는 논의에 단골로 등장한다.



졸업여행卒業旅行



행살 신센구미는 개그 요소뿐 아니라 시리어스 노선으로 남성 캐릭터와의 동성애 루트와 엔딩이 있다는 점에서도 특필할 가치가 있다. 시바 료타로의 신센구미 혈풍록 중 조직 내 동성애 금지령을 테마로 한 단편 《앞머리의 소자부로前髪の惣三郎》가 있으며, 이를 염두에 두면 본작의 슈도衆道(남성간 동성애) 엔딩은 필연성이 높은 소재다. 근현대를 무대로 한 에로 게임에서 호모포비아적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당당히 동성애 엔딩을 배치한 타이틀로는 96년 쟈니스의 『졸업여행卒業旅行』의 선례가 있다.



카나리아~이 마음을 노래에 실어~カナリア∼この思いを歌に乗せて∼



④ 화려한 불꽃이 되어 짧은 생을 불태운 야마구치 노보루ヤマグチノボル


00년 8월, 프론트윙FrontWing은 『카나리아~이 마음을 노래에 실어~カナリア∼この思いを歌に乗せて∼』를 발매한다. 학원제의 라이브를 목표로 한 경음악부의 인간군상을 그린 작품으로 야마구치 노보루는 본작의 시나리오 라이터를 맡는다. 본작의 노벨라이즈를 통해 야마구치는 소설가 데뷔를 달성한다. 이후 야마구치는 『그린그린グリーングリーン』(2001), 『마계천사 지브릴魔界天使ジブリール』(2004) 등 주로 프론트윙과 그루버GROOOVER 작품의 시나리오나 노벨라이즈를 맡는 한편 라이트노벨 『제로의 사역마ゼロの使い魔』 시리즈를 집필하여 인기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제로의 사역마ゼロの使い魔



11년도에 투병 중임을 공개한 야마구치는 2년 후 타계하며, 유족의 의지에 따라 연재 중이던 제로의 사역마는 다른 작가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Sense Off ~a sacred story in the wind~



⑤ 시나리오 라이터 모토나가 마사키元長柾木


00년 8월, 비주얼아츠 계열 브랜드로 모토나가 마사키가 대표를 맡고 있던 Otherwise는 『Sense Off ~a sacred story in the wind~』로 업계에 데뷔한다. 본작은 무엇보다도 후반부의 대담한 전개가 당시 화제가 되었는데, 우주인이나 초능력자 등의 SF 설정에 모토나가 특유의 철학적 시선이 가미되어 많은 이야깃거리를 파생시켰다. 이 브랜드는 이듬해, 소꿉친구 소녀에게 자신을 노예로 삼아 줄 것을 종용받는 동거물 『미래에 키스를未来にキスを∼Kiss the Future∼』을 발매하고 얼마 안 가 해산하지만, 모토나가 본인은 비주얼아츠의 다른 브랜드의 작품에 03년 무렵까지 관여했고, 그 후는 소설 중심으로 활동하며 『전사대전全死大戦』 시리즈나 『야쿠자 걸ヤクザガール』 시리즈, 연재작 『성해대전星海大戦』 등 한 방향에 고착되지 않는 문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갱스터 리퍼블리카ギャングスター・リパブリカ



11년에는 WHITESOFT의 『네코나데 디스토션猫撫でディストーション』에 참가하였고, 13년에는 동 메이커에서 약 십 년만의 모토나가 단독 기획 작품인 『갱스터 리퍼블리카ギャングスター・リパブリカ』가 발매되었다.

모토나가 마사키의 작품 세계에 관해서는 《서브컬처와 철학 (7) ~프로이트 이론과 함께 읽는 모토나가 마사키~》( https://brunch.co.kr/@erasmut/49 )를 참고하길 추천한다.



은색銀色



⑥ 영화 같은 연출이 돋보이는 『은색銀色』


00년 8월 네코네코소프트ねこねこソフト는 두 번째 작품 『은색銀色』을 발매한다. 소원을 이뤄 주는 은색 실의 전설을 종축으로 헤이안・가마쿠라・다이쇼메이지・현대까지 천 년에 이르는 장대한 비극의 서사를 엮어가는 내용으로, 본작을 통해 네코네코소프트는 인기 메이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극장 스크린과 같은 화면 구성, 영화 자막을 연상케 하는 텍스트 표시 등 영화 관람을 방불케 하는 독특한 연출이 화제가 되었고, 초회판에서는 문장이나 음성을 영어로 출력하는 옵션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이후 나온 완전판에서는 영어 문장만 선택 가능하다)



朱~Aka~



이후 네코네코소프트는 『미즈이로みずいろ』(2001), 아카朱~Aka~』(2003), 『라무네ラムネ』(2004), 『사나라라サナララ』(2005) 그 외에도 죽음이나 비극을 엮은 서정성 짙은 작풍에 주력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티 묻지 않고 얼빠진 언동으로 우왕좌왕하는 촐랑이 히로인을 곧잘 선보였고, 팬들은 그런 히로인들을 덜렁이 캐릭터ぽんこつキャラ라 부르며 지지했다. 주로 토노 란遠野らん이 연기한 배역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으며,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미즈이로의 하야사카 히요리早坂日和가 있다. 당시 덜렁이 캐릭터의 인기와 위상을 생각해 보면 네코네코소프트는 00년대 전반 에로 게임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유키이로~육화가 핀 하늘의 마을~ゆきいろ∼空に六花の住む町∼



06년도에 활동을 중단하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지만, 08년도 여름 기동을 재개하였고, 09년에 『소라이로そらいろ』, 11년에 『White~blanche comme la lune~』, 12년에 『유키이로~육화가 핀 하늘의 마을~ゆきいろ∼空に六花の住む町∼』, 15년에 『스미레すみれ』, 22년에 『신의 나라의 마법사神の国の魔法使い』 등 신작을 계속 내놓고 있다.



히다마리 스케치ひだまりスケッチ



한편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제갈근, 사암각 등 네코네코소프트의 웹용 4컷 만화나 광고 일러스트, 그리고 사나라라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아오키 우메蒼樹うめ(사나라라 당시 후지미야 아프리藤宮アプリ 필명)가 있다. 이후 망가타임 키라라에서 『히다마리 스케치ひだまりスケッチ』를 연재하여 일약 인기 작가가 되고, 11년에는 우로부치 겐 각본의 TVA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魔法少女まどか☆マギカ』의 캐릭터 원안을 담당하게 된다.



AIR



⑦ “새의 시는 국가”, 『AIR』


00년 9월 Key의 두 번째 작품 AIR가 발매된다. 오늘날까지도 최루겜 끝판왕으로 일컬어지는 인기작의 등장이었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Kanon에서 일신하여 여름 땡볕이 맹렬한 해안가 마을을 배경으로 한 본작은, 인형술사 청년 쿠니사키 유키토国崎往人가 여행 도중, 수수께끼의 병을 앓고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가 서툰 소녀 카미오 미스즈神尾観鈴와 얽히며 일어나는 1부, 천 년 전 등에 날개를 지닌 이종족 익인翼人 소녀 칸나비노마코토神奈備命에게 일어난 비극과 그에 따른 저주,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호위 무사 류우야柳也의 바램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음이 밝혀지는 2부, 까마귀 소라ソラ의 시점을 통해 현대편을 다시 그리며 미스즈와 그녀의 양어머니 카미오 하루코神尾晴子의 가족애와 사별을 담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카논에서는 히로인에게 다가가는 친구 소녀나 보호자 포지션의 여성을 배치하여 주인공과 서브 히로인이 부모와도 같이 히로인을 ‘지켜보는’ 구도였다면, 에어에서는 더 나아가 히로인의 운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 애잔함을 배가시켰다. 역사적으로 히로인의 벗은 몸을 엿보는 포르노가 목적이던 에로 게임의 서사가 여기까지 다다른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를 비롯한 비평가들이 숱하게 다룬 시나리오는 물론, 미려한 배경 그래픽과 서정적인 BGM 등 시청각적 연출 역시 에어의 매력이다. 카논 때부터 악곡 제공이나 편곡을 도맡은 사운드 크리에이터 집단 I’ve와 주제가 새의 시鳥の詩로 작품의 테마를 청아하게 읊은 가수 Lia도 주목해 두자.



SNOW



여담이지만 에어를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작품으로 스튜디오 메비우스スタジオメビウス의 『SNOW』(2003)가 있다. 바로 전까지 뼈대 굵은 능욕물 제작사였던 메비우스가 누가 봐도 카논과 에어의 영향을 받아 순애 노선에 몽환적인 겨울 배경에 3부 구성의 게임을 만들어 화제가 되었는데, 스탭이 직접 ‘Key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공언한 점과 애당초 개발진에 Key 작품군에 참여한 인원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유저들은 그럭저럭 납득한 분위기였다.



Routes



또 비슷한 시기에 리프에서는 『Routes』(2003)가 출시되었다. 투하트 이후 육 년만의 리프 비주얼 노벨 시리즈로 주목을 받았는데 구성 면에서 역시나 ‘이거 에어네’ 하는 감상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구성이 비슷하다는 것만 따지면 ‘은색’ 등을 끌어들여도 됐겠지만, 막바로 에어를 연상할 정도로 해당 작품이 에로 게임계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본 문단의 제목인 ‘새의 시는 국가’는, 불과 몇 해 전까지 니코니코동화에서 유저들이 뽑은 에로게임 주제가 랭킹에서 새의 시가 십 수 년째 1위를 석권한 것을 빗댄 표현이다.



Bless ~close your eyes. open your mind.~



⑧ 니시마타 아오이西又葵와 스즈히라 히로鈴平ひろ, 속칭 ‘물자매’


00년 9월 바실Basil은 『Bless ~close your eyes. open your mind.~』를 발매한다. 지금은 업계 굴지의 인기 원화가가 된 니시마타 아오이와 스즈히라 히로의 데뷔작이다. 얼마 안 가 스즈히라는 퇴사하여 프리랜서가 되고 03년에 라이트노벨 『은반 컬라이더스코프銀盤カレイドスコープ』의 일러스트를 담당하는 등 일러스트레이터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니시마타 역시 Basil의 출세작 『그것은 흩날리는 벚꽃처럼それは舞い散る桜のように』(이하 소레치루)의 원화를 맡아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연인 관계였던 사장을 차는 바람에 회사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니시마타는 소레치루의 시나리오 라이터 오우쟈쿠손王雀孫 등 핵심 멤버들을 이끌고 퇴사, 03년도에 Omegavision 산하에 에로 게임 브랜드 네이블Navel을 설립한다.



SHUFFLE!



동창이자 절친 스즈히라를 불러들인 니시마타는 블레스의 메인 라이터 아고바리아あごバリア의 시나리오에 니시마타&스즈히라 투톱 원화로 04년 1월 『SHUFFLE!』을 발매한다. 이 작품이 『Fate/stay night』, 『CLANNAD』에 이어 당해 세일즈 랭킹 3위를 기록하며, 네이블은 데뷔와 동시에 인기 브랜드로 발돋움한다.



달에 다가서는 소녀의 작법月に寄り添う乙女の作法



스즈히라는 그 외에도 01년 피아캐롯 3, 08년 요스가노소라ヨスガノソラ의 캐릭터 원화에 참가하며 활동을 이어나갔고, 12년도부터는 달에 다가서는 소녀의 작법月に寄り添う乙女の作法(이하 츠키오토) 시리즈의 메인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있다. 츠키오토는 셔플의 미디어믹스로 흥행가도를 달리던 네이블에게 ‘여장남자 기믹’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었고 당분간 이들의 아성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물자매’라는 별칭은 동인 활동 시절 낸 회지에 그들의 학창 시절 성 경험을 토대로 한 내용을 그려낸 비범한 이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물은 ‘즙汁’을 연상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거.



월희月姫



⑨ 『월희月姫』 완전판 배포


00년 12월 겨울 코믹 마켓에서 『월희月姫』 완전판이 배포된다. (반년 전 여름 코믹에서 완성 전 ‘반월판’ 배포) AIR에서 에로 게임의 우화적・관념적 최루겜이 끓어오를 만큼 끓어오르고, 유저들은 ‘앞으로 어떤 게 더 나올까’ 기대하던 참에, 본작은 농후한 전기 속성의 활극과 방대한 정보량의 세계관 설정으로 단숨에 겨울 코믹 마켓을 들끓게 했다. 동인 서클 TYPE-MOON은 시나리오 담당 나스 키노코奈須きのこ와 일러스트 담당 타케우치 타카시武内崇로 이루어진 콤비로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이들은 우로부치 겐과 더불어 소위 ‘간지 나는’ 에로 게임을 찍어내는 새 시대의 총아로서 부상하게 된다.



저속령사냥低俗霊狩り



도시 호러물이라는 설정을 기반으로 이능력자들이 인외의 존재와 다투는 월희를 이해하려면 키쿠치 히데유키菊地秀行의 소설 『흡혈귀 헌터 D吸血鬼ハンターD』나 『마계도시魔界都市』 시리즈, 오쿠세 사키奥瀬サキ의 만화 『저속령사냥低俗霊狩り』, 『화염마인火閻魔人』 정도를 참고하면 좋다. 비슷한 타이밍에 나온 작품으로는 히라노 코우타平野耕太의 만화 『헬싱HELLSING』이 00년 겨울 연재 3주년을 맞은 바 있다. 흡혈귀 + 액션이란 점에서 월희와 비교할 수 있겠다.

원래 나스는 테이블 토크 RPG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하던 경위가 있다. 세계관을 구성하고 등장인물의 디자인, 성격, 능력을 배분하는 캐릭터 메이킹의 방법론은 그야말로 TRPG에 기반을 둔 것이며, 훗날 만들게 되는 『Fate / stay night』에서 이는 보다 현저히 드러난다.



별하늘 플래닛星空☆ぷらねっと



⑩ 시나리오 라이터 야마다 하지메山田一 3부작


마찬가지로 00년 12월, 상업 에로 게임 쪽에서는 D.O.가 『별하늘 플래닛星空☆ぷらねっと』을 발매한다. 우주에의 동경을 품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소년소녀들을 그린 청춘 이야기로, 카나~여동생~, 『가족계획家族計画』(2001)과 더불어 D.O.에서 야마다 하지메가 집필한 작품이다. 앞서 소개했듯 카나는 여동생+난치병 소재에, 가족계획은 세간에서 튕겨나간 자들이 모여 유사 가족을 형성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D.O. 사내에서는 세 작품을 통틀어 ‘사회파 타이틀’ 또는 ‘야마다 하지메 3부작’이라 부른다. 야마다 하지메는 이후 필명을 타나카 로미오田中ロミオ로 바꾸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하게 다루도록 한다.



시스터 프린세스シスタープリンセス



⑪ 열두 명의 여동생과 함께 하는 『시스터 프린세스シスタープリンセス』


일반 매체에서는 00년대 초반 여동생 모에가 하나의 형태로 집약되어 갔다. 『시스터 프린세스シスタープリンセス』 통칭 ‘시스프리’ 콘텐츠가 미디어를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격 G’s 매거진電撃G's magazine이 90년대 말부터 심혈을 기울인 이 기획은 당초에는 여동생 한 명당 오빠 한 명씩 유닛을 짜서 나열해 독자 참여로 시추에이션을 진행하는 지면상의 게임이었다. 그러던 중 01년 3월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이 발매되고 곧바로 애니메이션이 나오며, ‘단 한 명의 오빠를 둘러싸고 마구마구 사랑하는 총 열두 명의 여동생’의 구도로 정리된다. 당시 이차원 콘텐츠 유저의 감각으로선 꽤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게임판에서는 혈연・비혈연을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어서, 여동생 애호가들을 보다 깊은 업에 빠뜨리는 원흉이 되었다.



베이비 프린세스ベイビープリンセス



덧붙여 07년에 나온 『베이비 프린세스ベイビープリンセス』 통칭 베비프리 기획은 시스프리의 재래와 같은데, 최소 0세부터 최대 18세까지 열아홉 명의 여동생에게 둘러싸인 유일한 남자(즉 플레이어)가 겪는 장대한 홈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코스모스의 하늘로秋桜の空に



⑫ 크리에이터 타케이 토우카竹井10日의 『Marron』 설립


01년 7월 유한회사 마론マロン의 브랜드 Marron이 『코스모스의 하늘로秋桜の空に』를 발매하며 업계에 데뷔한다. 본작에 등장하는 히로인 사쿠라바시 스즈카桜橋涼香 통칭 스즈 누나すずねえ는 이후 여동생 모에의 아성과 양대 산맥을 이루며 지금까지도 대립하는 누나 모에姉萌え의 기념비적인 캐릭터이다. 여기서의 ‘누나’는 넓은 의미에서 선배 여성이나 연상 소꿉친구 등 ‘누나와 같은 존재’를 포함한 개념으로, 여동생 모에와 비슷한 대상 적용 방식이다.

에로 게임 히로인 대부분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메이드든 간호사든 여교사든 소꿉친구든 SM여왕님이든 필연적으로 주인공에게 마음을 씀으로써 유저에게 ‘돌봄 받는 느낌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경향이 크다. 에로 게임은 성애나 연애뿐 아니라 친애의 욕망에도 대응함으로써 그릇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여동생 모에가 ‘귀여워하는’ 대상으로서 로리콤 붐의 한 줄기에서 비롯되어 인기를 끌었다면, ‘코스모스의 하늘로’에서 남동생 혹은 남동생 같은 존재를 한결같이 지나치게 귀여워하며 응석을 받아주는 연상 누나 캐릭터의 ‘귀여워해 주는’ 면모 역시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호감도를 서서히 올리는 게 아닌, 처음부터 풀 게이지의 호의를 지닌 존재. 의심이나 불안 따위 생각할 수도 없는, 지극히 순도 높은 친애를 손윗 여성에게 들이부어지는 기쁨. 넓게 보면 어머니 캐릭터나 숙녀 캐릭터의 마더콤 요소와도 통하는 게 있다. 하지만 주인공과의 나이차가 크면 클수록 세대 차이나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따른 거리감이 발생하므로, 누나라는 속성은 적당한 밸런스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누나 세제곱お姉ちゃんの3乗



Marron의 다른 작품으로는 『누나 세제곱お姉ちゃんの3乗』(2003), 다른 이름으로 누나 큐브おねえちゃんきゅうーぶ라 불리는 게임이 있다.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한 명의 누나가 셋으로 분열하여 주인공의 응석을 마구 받아주는 내용이다. 거꾸로 『해바라기의 성당에서 너와ひまわりのチャペルできみと』(2007) 통칭 히마챠키는 남동생에게 응석을 부리는 형태로 도를 넘어선 사랑을 주는 누나가 등장한다.



해바라기의 성당에서 너와ひまわりのチャペルできみと



Marron의 대표 타케이 토우카竹井10日는 위 세 작품의 기획과 집필을 도맡은 게임 개발자로, 하이텐션 개그를 연발하며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텍스트는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직접 ‘코스모스~’의 노벨라이즈를 집필할 당시 이를 읽은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角川スニーカー文庫 편집자의 추천으로 타케이는 본격적으로 라이트노벨을 쓰기 시작했다. 『러키스타らき☆すた』, 『칸나기かんなぎ』 등 애니메이션의 미디어믹스로서 노벨라이즈를 집필했고, 오리지널 작품으로는 『주머니 속 로리ポケロリ』(2005), 『동경 황제 호죠 렌카東京皇帝☆北条恋歌』(2009~), 『열 살의 보건교육10歳の保健教育』(2010~) 등을 집필했다. 대부분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와 이치진샤문고一迅社文庫에서 발매되었다.



그녀의 플래그가 꺾이면彼女のフラグがおられたら



비교적 최근에 코단샤라노베문고講談社ラノベ文庫에서 나온 『그녀의 플래그가 꺾이면彼女のフラグがおられたら』은 14년도에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Noel



덧붙여, 타케이가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설 때와 비슷한 시기에 에로 게임 시나리오 경험자로서 라이트노벨 작가가 된 유명인이 있다. 플라잉샤인Flyingshine에서 『노엘Noel』(2004)을 집필하고, 이듬해 『우리들의 타무라わたしたちの田村くん』로 라이트노벨 데뷔, 이후 『토라도라とらどら!』, 『골든 타임ゴールデンタイム』을 히트시킨 타케미야 유유코竹宮ゆゆこ가 그 장본인이다.



네가 바라는 영원君が望む永遠



⑬ 멜로 드라마의 기복을 자아낸 『네가 바라는 영원君が望む永遠』


01년 8월, 아쥬의 세 번째 작품 『네가 바라는 영원君が望む永遠』(통칭 키미노조)이 발매된다. 주인공 나루미 타카유키는 연인 스즈미야 하루카가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삼 년간 두 사람의 절친 하야세 미츠키와 새로운 연인 관계를 맺지만, 하루카가 깨어남에 따라 돌이킬 수 없게 된 인간관계의 변화로 모두가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멜로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강한 기복의 전개가 열렬한 지지를 얻어 03년 무렵까지 키미노조는 아쥬의 간판 타이틀이 되었다. 메인 히로인인 하루카의 여동생 스즈미야 아카네는 타카유키를 오빠라 부르며 따랐지만 언니의 사고를 이유로 복잡한 태도를 취하는 소녀로, ‘여동생 모에’의 측면에서도 호소력을 발휘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아예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격 타이틀 『아카네 매니악스アカネマニアックス』가 나왔을 정도이다.



네가 있던 계절君がいた季節



참고로 아쥬의 데뷔작은 『네가 있던 계절君がいた季節』(1999)로, 청년 카메라맨 마에지마 마사키가 일에 대한 꿈과 사랑 사이의 갈림길에 서는 내용이다. 두 번째 작품 『화석의 노래化石の歌』(2000)는 기억 상실을 앓는 소년 에밀이 양관에서 ‘인형’이라 불리는 안드로이드를 조종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SF물이다.  



그린그린グリーングリーン



⑭ 청춘 군상극 『그린그린グリーングリーン』


02년 10월 GROOVER는 『그린그린グリーングリーン』을 발매한다. 깊은 산 속의 전원 기숙사제 남학교가 공학이 되며, 여학생들의 눈길을 끌고자 발악하는 남학생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히로인 이상으로 개성이 짙은 서브 남캐 진영의 활약으로 이야기를 견인하는 청춘극이 호평을 받았다. 남주인공 한 명 : 루트별 히로인 한 명의 관계로 정립되다시피 한 종래의 에로 게임과 비교하면 군상극에 힘이 강하게 실린 게 특색이다.

또한 배역을 맡은 성우 대부분이 아오니프로덕션青二プロダクション 소속으로 보통 에로 게임에서 쓰는 가명이 아닌 오버 활동명을 크레딧에 올린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키라☆키라キラ☆キラ



본작의 프로듀서는 밴드 milktub의 리더 bamboo로, 이후 주식회사 키친가이즈팩토리株式会社キッチンガイズファクトリー와 산하 브랜드 OVERDRIVE의 대표가 된다. 오버드라이브에선 밴드 소재의 에로 게임을 여럿 발매했고 그를 모티프로 한 라이브도 개최하는데, 유명한 작품으로는 『CARNIVAL』, 『SWAN SONG』의 라이터 세토구치 렌야瀬戸口廉也가 집필한 마찬가지로 청춘 군상극인 『키라☆키라キラ☆キラ』(2007)가 있다.



최종치한전차最終痴漢電車



⑮ 안정과 신뢰의 브랜드 아틀리에 카구야アトリエかぐや


01년 10월 26일 아틀리에 카구야アトリエかぐや는 『최종치한전차最終痴漢電車』를 발매한다. 철도를 좋아하여 사철의 차장이 된 청년이 이용자 감소로 노선 폐지의 위기에 처한 국지 노선을 구하고자, 아무도 타지 않는 심야의 막차를 이용해 고액의 승차권을 사면 마음껏 치한 짓과 능욕을 저지를 수 있는 ‘최종치한전차’를 운행하여 매출을 올리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차량에 풀 여성을 조달하고자 봉인해 온 치한 테크닉을 펼치는 주인공, 사실 그는 한때 전설의 치한으로 알려진 남자였던 것이다…



인형의 집~음몽에 감싸인 메이드들~人形の館~淫夢に抱かれたメイドたち~



이즈음 아틀리에 카구야는 『광음학원狂淫学園』(2001), 『치욕진찰실恥辱診察室』(2002) 등 능욕 성향이 강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신비한 힘을 지닌 인형의 집을 이용해 양관의 주민들을 장기말처럼 조종하는 『인형의 집~음몽에 감싸인 메이드들~人形の館~淫夢に抱かれたメイドたち~』로 발판을 굳히는 데 성공했다. 02년에는 『매즙妹汁』을 발매하는데, 마법에 걸린 주인공이 저주를 풀기 위한 재료로 여동생들의 체액을 수집하는 내용이다. 그리고는 누나 3부작을 연이어 발매하는데, 각각 『간호사에게 맡겨줘ナースにおまかせ』(2004), 『가정교사 누나~야함의 편차치를 올려버릴게요~家庭教師のおねえさん~Hの偏差値あげちゃいます~』(2005), 『자즙~시라카와 세자매에게 맡겨줘~姉汁~白川三姉妹におまかせ~』(2005)으로 밝은 분위기의 일상물을 선보였다.



자즙~시라카와 세자매에게 맡겨줘~姉汁~白川三姉妹におまかせ~



엄청난 히트작은 없지만 안정되고 견실하게 에로를 즐길 수 있는 작풍으로 아틀리에 카구야는 00년대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눈물 나오는 에로 게임, 피가 끓는 에로 게임, 무서운 에로 게임, 어려운 에로 게임, 산뜻한 에로 게임 등으로 업계가 활발한 와중에 카구야의 작품군은 ‘에로 게임은 무엇보다도 에로가 우선’이라는 기본을 과거부터 지금까지 환기해주고 있다.



처음 하는 집보기はじめてのおるすばん



(2) 00년대 전반의 에로 게임 – 2



① 로리 계열의 새로운 약동 『처음 하는 집보기はじめてのおるすばん』


21세기에 들어서고 조금 시간이 지날 무렵, 로리 계열 에로 게임은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왜 로리 ‘계열’이냐면 설정 상 등장인물 모두 18세 이상이기 때문이다) 불씨를 당긴 건 01년 ZERO가 내놓은 『처음 하는 집보기はじめてのおるすばん』 통칭 하지루스다. 주인공 옆집에 사는 조그마한 쌍둥이 소녀들이 집보기를 하게 되어 돌봐 주게 되는 게 본작의 발단으로, 한없이 순진무구한 소녀들과 시종일관 꽁냥거리며 야한 짓을 마구 하는 밝고 구김살 없는 내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조그마한 히로인에게 방뇨 플레이를 시키는 상황에 여러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리고는 ‘이건 진짜다…’ 하며 전율했을 것이다.



처음 하는 의사놀이はじめてのおいしゃさん



제로는 캐릭터를 교체한 속편 『처음 하는 의사놀이はじめてのおいしゃさん』(2002)을 통해 병원을 무대로 의사놀이를 하는 내용을 선보이는데, 이후 타 브랜드인 Studio Ring에서 가정교사물 『나나미와 코노미의 가르쳐줘 ABCななみとこのみのおしえてA・B・C』(2003), 메이드 카페를 경영하는 SLG 『처음 하는 도우미はじめてのおてつだい』(2005)로 시리즈가 이어졌다. 어떤 작품에선 히로인의 공식적인 신체 데이터가 ‘신장 : 작다’ ‘체중 : 가볍다’ ‘가슴 : 빨래판’ ‘허리 : 얇다’ ‘엉덩이 : 가늘다’로 표기되었고, 여러 사람들이 침을 (이하생략)



처음 하는 도우미はじめてのおてつだい



하지루스 전후 다른 메이커에서 내놓은 로리 계열 에로 게임으로는 SCORE의 『선생님 정말 좋아先生だ∼いすき』(2002)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션계열 학원의 신참 교원인 주인공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소녀들의 가정 문제나 사회적 사정과 맞닥뜨리며 인연을 쌓아가는 내용으로, 캐릭터성으로나 극의 완성도로나 공들인 게 엿보인 작품이었다.



선생님 정말 좋아先生だ∼いすき



00년대 후반부터는 소프륜의 규제 강화로 성적 묘사가 등장하는 히로인을 5등신 이하로 디자인할 수 없는 등 상업 로리 계열 에로 게임은 기본적인 표현 단계부터 까다로운 상황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씨는 여전히 살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이너리 포트バイナリィ・ポット



② 오거스트オーガスト의 데뷔


02년 2월 주식회사 하즈키株式会社葉月의 브랜드 오거스트オーガスト가 데뷔작 『바이너리 포트バイナリィ・ポット』를 발매한다. 인터넷 카페와 온라인 게임 세계를 무대로 한 내용으로, 오거스트 작품군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촉수, 능욕, 방뇨 신이 모두 들어간 작품이다. 이후 밝은 분위기를 원하는 유저의 목소리를 반영, 판타지물 『프린세스 홀리데이~데굴데굴 사과정 천일야화~Princess Holiday〜転がるりんご亭千夜一夜〜』(2002), 착의着衣 정사 신을 중시한 학원물 『달은 동쪽으로 해는 서쪽으로月は東に日は西に~Operation Sanctuary~』(2003)(이하 하니하니)에서는 떠들썩하고 즐거운 이야기에 주력해 팬층을 두텁게 했다.



달은 동쪽으로 해는 서쪽으로月は東に日は西に~Operation Sanctuary~



07년에는 필자의 표현으로 오늘날의 오거스트를 지탱하는 기둥 네 개 중 두 개를 세운 작품 『夜明け前より瑠璃色な동 트기 전보다 유리빛의』(약칭 케요리나)을 발매, 모바일 게임으로 전회한 지금까지도 오거스트를 유수 에로 게임 메이커로 있게 해 주는 발판이 되었다.



동 트기 전보다 유리빛의夜明け前より瑠璃色な



주목할 인물로는 오거스트의 전신인 동인서클 왕궁마법극단王宮魔法劇団 시절부터 비교적 최근인 『천의 인도, 도화염의 황희千の刃濤、桃花染の皇姫』(2016)(이하 센모모)까지 혼자서 거의 대부분의 원화를 담당하여 브랜드의 간판이 된 벳칸코べっかんこう가 있다. 작품과 캐릭터의 연령에 관계없이 한결같은 이목구비는 ‘벳칸코.gif’라는 전용 파일이 돌아다닐 정도라, 한때 니시마타 아오이, 다카포의 원화가 나나오 나루七尾奈留와 더불어 에로 게임 3대 도장圖章이란 별명이 붙었다.



별의 목소리ほしのこえ



③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와 미노리minori의 관계


02년 2월 동경 국제 애니메이션 페어東京国際アニメフェア에서는 자주제작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ほしのこえ』가 화제가 되었고, 제작자 신카이 마코토新海誠는 이를 계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러닝타임 25분의 고퀄리티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원안・영상제작・각본・미술・편집 등을 혼자서 해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야깃거리였다. 이후에도 신카이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雲のむこう、約束の場所』(2004), 『초속 5센티미터秒速5センチメートル』(2007) 등 스케일이 크고 정감을 흔드는 작품을 연달아 내놓았고, 최근에는 『너의 이름은君の名は。』(2016), 『날씨의 아이天気の子』(2019)를 통해 여전히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봄의 발소리はるのあしおと



신카이는 게임 쪽에도 발을 걸치고 있었는데, 한때 팔콤ファルコム에서 일했고, 그 당시 만든 처녀작으로 CG 애니메이션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바 있다. 또 에로 게임계에서는 주식회사 미노리株式会社ミノリ의 브랜드 minori의 데뷔작 『BITTERSWEET FOOLS』부터 시작해 『Wind-a breath of heart-』(2002), 『봄의 발소리はるのあしおと』(2004), 『ef-a fairy tale of the two-』(2부작 2006, 2008)를 비롯한 00년대 타이틀의 오프닝 무비를 제작하였다. 미노리는 오프닝뿐 아니라 게임 본편에서도 화면 연출에 공을 들이기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왜 과거형이냐면 19년도작 『그 날의 짐승에게는その日の獣には、』을 끝으로 소프트웨어 제작에서 손을 떼고 해산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다카포D. C. ダ・カーポ



④ 서커스サーカス의 『다카포D. C. ダ・カーポ』 발매


02년 6월 서커스サーカス의 간판 타이틀인 학원 연애 AVG 『다카포D. C. ダ・カーポ』 시리즈의 첫 작품이 발매된다. 일 년 내내 지지 않는 벚꽃이 피는 신비한 섬에 사는, 손에서 과자를 만들어내는 소소한 마법을 사용하는 소년이 주변의 소녀들과 펼치는 ‘살짝 낯간지러워서 좋은ちょっとこそばゆいくらいが丁度いい’(공식 프롤로그 문구) 연애 이야기로, 이듬해 TVA로도 방영되었다. 01년에 발매된 어뮤즈먼트 소프트 『아르키메데스가 잃어버린 것アルキメデスのわすれもの』은 다카포 본편의 2개월 전을 그린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시리즈의 시작은 이쪽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잃어버린 것アルキメデスのわすれもの



서커스는 하나의 타이틀 패키지를 좋게 말하면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전개하는, 나쁘게 말하면 사골까지 우려먹는 상법으로 유명하다. 일명 곡예상법이라 한다. 가령 CD에서 DVD로 저장 매체의 주류가 넘어갈 과도기에, 하나의 작품을 갖고 CD 초회한정판과 통상판, DVD 초회한정판과 통상판, 마우스 패드 특전동봉 통상판(CD, DVD 각각), 신을 추가하고 음질을 높인 리메이크판(CD, DVD 각각), 팬디스크(CD, DVD 각각)까지 정말 신물이 나올 정도다. 당연히 저 모든 판본들의 패키지 일러스트는 전부 다르다.



토라카풋! 트러블 캡터とらかぷっ!TROUBLE CAPTOR



⑤ PULLTOP 데뷔


02년 6월 주식회사 WillPlus 계열 브랜드 PULLTOP이 『토라카풋! 트러블 캡터とらかぷっ!TROUBLE CAPTOR』로 데뷔한다. 이후 풀탑은 00년대에 에로 게임계에서 활약하는 메이커군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브랜드 런칭 당시 중심 멤버는 시나리오의 시이하라 쥰椎原旬, 마찬가지로 시나리오의 시모하라 마사下原正, 원화의 타케야 마사미たけやまさみ, 마찬가지로 원화의 후지와라 와라와라藤原々々가 있다. 시이하라 쥰은 원래 Leaf에 있던 인물로, 2010년에는 다른 영광스러운 창립 멤버들과 함께 다시 한 번 퇴사하여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브랜드 SEVEN WONDER를 세운다.



쓰르라미 울 적에ひぐらしのなく頃に



⑥ 『쓰르라미 울 적에ひぐらしのなく頃に』 오니카쿠시鬼隠し편 배포


02년 8월 62회 코믹 마켓에서는 전연령 지향 노벨 게임 『쓰르라미 울 적에ひぐらしのなく頃に』 첫 번째 이야기 오니카쿠시鬼隠し편이 배포되었다. 청춘 군상극에 촌락 특유의 음울한 작은 사회 설정을 엮어, 연속 괴사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전기 요소까지 덧붙인 내용으로, 00년대 중반에 4편째가 배포될 때 의욕적으로 광고한 게 성공하여 히트하기 시작한다. 06년도부터 TVA가 방영되었고 실사 영화까지 나오는 등 동인 게임 원작으로는 동방 시리즈와 더불어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제작자 용기사07竜騎士07 및 당시 동인 서클 07th Expansion은 한때 Leaf의 트레이딩 카드 게임 『리프 파이트リーフファイト』의 오리지널 카드(정규 발매품이 아닌 동인 자주 제작품)를 만드는 서클이었다. 그런 유래 때문인지 동 메이커는 2차 창작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 왔으며, 쓰르라미 울 적에 당시 스퀘어 에닉스가 창설한 2차 창작 소설상 쓰르라미 울 적에 대상ひぐらしのなく頃に大賞을 수상한 응모작이 본편과 마찬가지로 미디어믹스의 전개를 이어가고 있다.



츤데레 캐릭터의 전형인 키미노조의 다이쿠우지 아유大空寺あゆ



⑦ 츤데레ツンデレ의 파급


02년 후반 무렵부터 인터넷 게시판 일부에서 에로 게임 유저가 히로인을 평할 때 츤데레ツンデレ란 말을 쓴 게 확인되었다. 전년도의 코스모스의 하늘로나 키미노조에 나온 몇몇 캐릭터를 지칭한 게 사례로는 훨씬 오래되었으나, 이 시점에선 ‘처음에는 틱틱대며 차가운 태도로 대하는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마음을 열고는 헬렐레 하는 것’이라는 스토리 전개에 따른 태도를 통틀어 일컫는 용법으로 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것만 따지면 연애 게임에서 공략되는 대부분의 히로인이 해당되어 버린다. 이윽고 뉘앙스가 바뀌기 시작해, ‘남들 앞에선 부끄러워 틱틱대면서 둘만 있을 땐 헬렐레 하는(또는 마음속으로는 주인공에게 헬렐레 하는 걸 아무에게도 밝히지 못하는)’, 쑥스러움을 숨기는 고집쟁이의 양태를 가리키게 되었다.

츤데레의 성질을 잘 나타내는 몇몇 유명한 대사 레퍼토리가 있다. ‘벼, 별로 좋아서 이러는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라고!べ、別に好きでやってるわけじゃないんだから、勘違いしないでよね!’ ‘바, 바보 아냐?ば、馬鹿じゃないの?’ 등등 이쯤 되면 양식미마저 느껴지는 레퍼토리지만, 역사적으로 따지면 후발 주자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쑥스러움을 숨기는 유형을 가리키는 츤데레 용법이 오늘날까지 생존하였고, 기어이는 당사자인 에로 게임이나 걸 게임의 크리에이터들도 곧잘 사용하는 친근한 문구가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에로 게임을 넘어 일반 매체에도 나오고 있으며, 성별과 상관없이 사용될 정도로 확산되었다.



⑧ 에로 게임 시장의 성쇠


홋카이도의 지역 경제지 월간 재계 삿포로月刊財形さっぽろ가 해당 지역의 미소녀 게임 메이커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은 07년 9월호는, 사 년 전인 03년에 에로 게임 시장 규모가 560억 엔으로 최전성기였음을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소프륜 자료나 야노 경제연구소矢野経済研究所의 『‘오타쿠’ 시장에 관한 조사결과「オタク」市場に関する調査結果』 등 모든 자료를 종합하자면, 02~03년 무렵의 560억 엔대 중후반이 정점이었고 이후는 어떻게든 급락은 하지 않고 버티면서도 12년도까지의 십 년간 거의 절반으로 감소하는 곡선을 그려 왔다.

시장 축소의 부정적인 이유로 늘 지적되는 사항은 소프트째 불법 복제나 추출된 화상 데이터가 파일 공유 사이트 등을 통해 유출되고 그를 입수하여 만족하는 층이 정규 구입층을 압도하고 있는 현 상황이다. 그 외에는 풀 프라이스 패키지 판매 방식이 아닌 에로 게임 즉 다운로드 판매하는 저가형 타이틀이나 모바일 이식판, 디지털 동인 소프트 등 유저 입장에서 타이틀당 가격이 저렴해지는 방향으로 선택지가 늘고 있는 시장 동향 역시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란 시각이 있다. 타이틀 수의 증가가 작품별 이용자의 분산으로 이어져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 옛날 격투기 게임계가 이미 겪어본 상황이다. 애당초 세계적인 불황이 이어지고 있고 결정적인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닌 종합적인 요소들로 벌어진 작금의 상황이다. 이쪽의 분석은 경제에 밝은 집단 지성인들에게 맡기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러나 시장이 수축할지언정 히트작이 없진 않았고, 내용 면의 평가 역시 별개의 문제이다. 사십여 년에 달하는 에로 게임의 역사에서 주목할 인물, 메이커, 작품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계속해서 소개해보도록 한다.



마브러브マブラヴ



⑨ 아쥬의 새로운 중심 『마브러브マブラヴ』


03년 2월 아쥬는 일 년 반만의 완전 신작 『마브러브マブラヴ』 발매하였다. 자칭 장르명 ‘초 왕도 학원 어드벤처’. 선전 당시의 정보는, 소꿉친구 히로인이나 세계적 재벌 영애 등이 나와 활기찬 생활을 펼쳐나가는 학원 연애 AVG…로 보였으나, 이미 키미노조에서 1부 말미의 교통사고로 노도와 같은 굴곡을 선보인 아쥬답게, 그리 평이하게 넘어갈 리 없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발매 후 플레이를 하다 보니 역시 충격의 도가니였다. 학원 코미디를 그린 EXTRA편이 일단 끝나더니, 갑자기 지구인류가 외계 생물의 대군의 침공을 받는 전쟁 상황인 평행세계로 주인공이 날아가선 훈련병으로 단련되는 UNLIMITED편의 막이 열린다. 로봇 병기마저 등장하며, 하인라인의 소설 『우주의 전사』와 같은 하드 SF 전쟁극에 돌입하는, 참으로 대담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플레이타임 100시간에 달하는 대작임에도 종래의 AVG와 달리 스탠딩 CG가 어지러울 정도로 움직여대는 화면 연출로 마지막까지 플레이어의 집중을 이끌어낸다. 흔히 AVG를 종이 연극에 비유하는데 본작의 스탠딩 CG의 활용은 그런 종이 연극의 특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브러브 얼터너티브マブラヴ・オルタネイティヴ



덧붙여 애당초 본작의 제작 공지 자체는 00년도부터 올라 있었으며, 에로 게임 전문 잡지인 테크자이언テックジャイアン에서 발표될 당시엔 01년 가을 경 발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내용을 정리하고 볼륨을 늘리기 위한 연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03년에야 발매한 것이다. 더군다나 전쟁편의 스토리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은 이후 나온 완결편인 『마브러브 얼터너티브マブラヴ・オルタネイティヴ』(약칭 오르타)로 넘겨졌다. 이 역시 04년 발매 예정이었던 게 거듭된 연기 끝에 실제로 발매된 건 06년 2월이었다. 오르타에선 평행세계로 날아가 가혹한 운명과 마주한 게 주인공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나 외계 생물의 행동원리 등을 이야기하며 등장인물이 참살당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화상으로 보여주는 등 언리미티드편 이상으로 장대하면서도 장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에는 코믹스화 등의 미디어 전개도 이루어지는데, 스핀오프 소설 『마브러브 얼터너티브 토탈 이클립스マブラヴ・オルタネイティヴ トータル・イクリプス』는 12년에 TVA로 방영된 바 있다. 출시 이래 지금까지 마브러브는 아쥬의 중심으로서 여전히 건재하다.



참마대성 데몬베인斬魔大聖デモンベイン



⑩ 『참마대성 데몬베인斬魔大聖デモンベイン』과 『사야의 노래沙耶の唄』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1920~30년대의 펄프 잡지에 그는 우주 스케일의 생명체들과 관계하며 광기와 공포에 사로잡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괴기 환상 소설군 통칭 ‘크툴루 신화’라는 세계관을 전개했다. 이 암흑의 신화 설정에 매료된 창작자나 편집자는 지금까지도 양산되고 있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매체를 막론하고 설정을 공유하여 파생된 작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일본에서도 단편 번역이 늦어도 50년대에는 시작되었으며, SF 소설 잡지에 특집으로 다뤄지는 형태로 70년대 전반부터 러브크래프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80년대에는 TRPG 『크툴루프가 부르는 소리クトゥルフの呼び声』 등을 통해 아날로그 게임 분야의 애호가가 생겨나고, 이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또 다시 새로운 창작 활동을 행해나갔다.

03년 니트로플러스는 이러한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에로 게임을 두 편 연속 발매했다. 03년 4월 발매된  『참마대성 데몬베인斬魔大聖デモンベイン』은 시나리오 라이터 하가네야 진鋼屋ジン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에 일본 서브컬처의 전유물인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 식의 액션을 버무리는 대담한 취향을 발휘했다. 마술과 과학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아캄 시티를 무대로, 청년 사립탐정인 주인공이 마도서를 미소녀로 의인화한 히로인과 계약을 맺어 악마를 섬멸하기 위해 기신機神에 탑승해 이형의 신들과 싸우는 게 본편의 내용이다. 쿨하면서도 열혈스럽고,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대 활극이다. 04년에 PS2로 이식되고 06년에는 『기신포후 데몬베인機神咆吼デモンベイン』란 제목으로 TVA가 방영되어 실제 로봇 애니메이션이 되었으며, 기어이 13년에는 『슈퍼로봇대전 UXスーパーロボット対戦UX』에 참전하는 기염을 토하여 팬들을 열광시켰다.



사야의 노래沙耶の唄



03년 12월 발매된 『사야의 노래沙耶の唄』는, 사고 후유증으로 인식 능력이 일그러져 눈에 비치는 인간들이 모두 참기 힘들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고깃덩어리로 보이게 된 젊은이가, 경악스런 세상에서 홀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 사야와 만나게 되는 내용이다. 사랑과 정욕, 기어코 인육을 먹어야지만 마음에 평안을 느낄 정도로 광기에 물든 주인공, 그의 변이를 깨달은 주변 인물들도 두 사람의 사랑에 휘말려 운명과 정신을 잡아먹히게 되는 게 본편의 대략적인 흐름이다. 주관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형의 히로인과의 순애라는 점에선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 『불의 섬火の島』 6부 ‘부활편’의 인간과 로봇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연상된다. 실제로 본작을 진행하다 보면 불의 섬을 떠오르게 하는 대사가 있다. 히로인 사야는 극중 묘사나 설명을 정리하자면 그 정체는 이차원에서 온 꾸물꾸물거리는 괴물로, 다른 문명을 약탈하여 자신들의 번식의 장으로 삼는 지적 생명체였으며, 여기서 크툴루 신화의 코즈믹 호러 요소를 엿볼 수 있다. 총 플레이타임은 5시간 전후로 매우 작은 볼륨이지만 아직도 니트로플러스 작품군 중 대적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네크로노미콘ネクロノミコン



⑪ 크툴루 신화 소재 에로 게임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에로 게임 자체는 90년대부터 상당히 축적되어 왔다. 단순한 용어 차원의 차용부터 이야기의 근본까지 관여하는 수준까지 다양하며, 아래 열거하는 작품들은 그런 면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가장 오래된 축에 드는 작품은 영국을 무대로 한 페어리테일의 오컬트 미스터리물 『네크로노미콘ネクロノミコン』(1994)이 에로 게임에 크툴루 신화라는 모티프를 본격적으로 차용한 선례라 할 수 있다. 뒤이어 아보카도 파워즈アボガドパワーズ의 통칭 『스즈사키 탐정사무소 파일涼崎探偵事務所ファイル』 시리즈 중 『흑의 단장黒の断章 THE LITERARY FRAGMENT』(1995)과 『Es의 방정식Esの方程式 Wo Es war, soll Ich werden.』(1996) 역시 차분한 미스터리 분위기에 크툴루 신화 세계관을 적절히 도입했다.



종말의 하늘終の空



그 외에 히메야 소프트姫屋ソフト에서 내놓은 옴니버스 형식 에로 게임 『YES! HG』(1995) 본편 중 한 줄기로 해외여행 중이던 커플이 사신 부활의 제물로 노려지는 ‘호주괴기행豪州怪奇行’이나, 바닐라Vanilla에서 내놓은 문어 신이 다스리는 해저 나라에서 찾아온 마녀의 임무를 돕는다는 코믹 노선의 변화구를 노린 『매지컬 딥 원マジカルディープ☆ワン』(1997), 철학 농도가 짙은 테마를 기조로 뒷맛이 강한 『종말의 하늘終の空』(1999) 등이 90년대에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에 안겨朝の来ない夜に抱かれて



00년대에 들어서면 크툴루 에로 게임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는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같은 구성이나 음악 연출을 의식했다고 스태프가 언급한 『끝없이 푸른 이 하늘 아래서果てしなく青い、この空の下で…』(2000)는 톱캣TOPCAT의 시골을 무대로 한 일본식 호러물로 산신山神을 둘러싼 전기 구성으로 크툴루 신화를 연상케 한다. 앞서 소개한 데몬베인, 사야의 노래와 같은 해 F&C FC03에서 발매한 『아침이 오지 않는 밤에 안겨朝の来ない夜に抱かれて』는 사신邪神 무모의 신無貌の神의 힘을 얻은 젊은이가 마물을 퇴치하는 활극이다. 메이커 단위로는 『어둠의 목소리闇の声』 시리즈(2001~2006), 『쿠 리틀 리틀 ~소녀에게 닿는 천사의 손끝~ク・リトル・リトル ∼魔女の使役る、蟲神の触手∼』(2010), 『개의 울음소리狗哭』(2011) 등을 제작한 사이크Cyc가 주목할 만하다.



창천의 세레나리아蒼天のセレナリア



라이어소프트 작품 중 『창천의 세레나리아蒼天のセレナリア』(2006)부터 시작하는 사쿠라이 히카루桜井光 시나리오의 스팀펑크 SF 시리즈는 등장인물에게 하워드 필립스 또는 다레스 이런 식으로 러브크래프트 본인이나 주변 인물의 이름을 붙였고, 샤르노스나 녹색 돌처럼 지명이나 키 아이템에 크툴루 신화를 끌어 쓴 걸 숱하게 볼 수 있다. 시스템 차원에서 독특한 사례는 주사위를 던져 나온 눈을 입력해 진행하는 게임북으로 회귀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Lost Script의 『파리의 왕蠅声の王』(2006)이나 카드 배틀 형식을 도입한 『강염의 솔레이유鋼炎のソレイユ』 등이 있다.



종말소녀환상 앨리스매틱終末少女幻想アリスマチック



특히 추천할 만한 작품으로는 캐러맬박스キャラメルBOX의 06년도작 『종말소녀환상 앨리스매틱終末少女幻想アリスマチック』이 있다. 이공간에 점점 잠식되어가는 인류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로, 단순한 설정놀음으로 크툴루 신화를 차용하지 않고 깊은 수준까지 소화해 구사한 점에선 데몬베인과 비견할 만하다.

2012년에는 크툴루 신화의 니알라토텝 신을 오타쿠 취향 미소녀 외계인으로 조형한 라이트노벨 『기어와라 냐루코 양這いよれ!ニャル子さん』과 TVA가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일본 내 크툴루 신화의 응용 방법은 시리어스부터 코미디까지 매우 폭이 넓고, 그것만 다루어도 두꺼운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한 분야이다.



우리 집 여동생의 경우うちの妹のばあい(はあと)



⑫ NTR물의 선구작 『우리 집 여동생의 경우うちの妹のばあい(はあと)』


03년 5월 EGOイージーオー는 『우리 집 여동생의 경우うちの妹のばあい(はあと)』 약칭 우치바이를 발매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소중한 여동생을 눈앞에서 잘생긴 불량아에게 성적으로 빼앗기고, 함락된 여동생에게 남성으로서 온갖 면에서의 기능을 철저히 매도당하는 강렬한 네토라레寝取られ(상대 히로인을 다른 남자에게 침대에서 성적으로 빼앗기는 전개 혹은 취향, 다른 말로 NTR) 드라마로 화제가 되었다. 이전에도 부분적인 장면이나 전개 차원에서 히로인이 다른 남캐에게 범해진다든지 마음이 옮겨간다든지 하는 에로 게임은 있었지만, 전체 콘셉트로서 강하게 어필한 작품으로는 우치바이와 리림 다크니스LiLiM DARKNESS의 02년작 『TRUE BLUE』가 손꼽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TRUE BLUE



덧붙여 NTR 서사 자체는 문예의 역사에서 오래전부터 있던 하나의 패러다임이었다. 국내에는 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처용가가 있다. 서양으로 눈을 돌리면 프랑스 문학에는 나이 든 남편이 젊은 부인을 젊은 남자에게 빼앗기는 꼴을 조소하는 이야기의 전통이 있으며, 이렇게 여자를 빼앗긴 남자, 우리말로 오쟁이 진 남자를 프랑스어로 코큐cocu라 한다.

한때 에로 게임계에서는 NTR 취향의 유저는 유부녀나 연인이 있는 히로인이 능욕당하는 장면 등 NT(네토리寝取り, 잠자리에서 빼앗는, 임자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가로채는)하는 쪽의 시점에서 그린 작품을 플레이하며 NTR 진영의 시점을 상상하는 간접적인 소비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00년대에 들어서 주인공(연인 중 남자 쪽)이 없을 때 히로인이 처한 상황으로 시점을 전환한다든지, 텍스트 자체를 NTR 히로인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다든지 하는 진성 네토라레물이 늘어나게 된다. 몸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히로인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 다른 남자로 갈아타는지를 파고드는 편이 보다 설득력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코코로나비こころナビ



⑬ 근친 드라마의 작법을 고민하다


소프륜 체제 아래 근친상간의 표현이 금지되던 당시 공략 대상으로서의 남매 캐릭터는 피가 이어지지 않은 의남매거나 알고 보니 사촌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결혼 가능한 관계로 설정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실제 남매 관계로 가이드라인을 아슬아슬하게 지키는 작품도 허용되었다.

예를 들면 03년 6월 큐크스Q-X에서 발매된 『코코로나비こころナビ』가 있다. 이 게임은 넷상에서 오감을 전부 투영하는 가상현실이 실현된 근미래를 무대로 한 학원 연애 AVG인데, 여동생 캐릭터 루트에선 마음이 이어진 주인공과 친여동생이 전뇌 가상 세계에서만 아바타를 매개로 한 가상 섹스로 관계를 이어나가며 현실에선 마지노선만큼은 사수하는 절절한 착지점이 설정되어 있다.



타나토스의 사랑~음남매상간~タナトスの恋∼淫姉弟相姦∼



또 하나, 03년 9월에 레드 레이블レッドレーベル이 발매한 『타나토스의 사랑~음남매상간~タナトスの恋∼淫姉弟相姦∼』 역시 근친상간 규제에 정면으로 들이대는 부분이 있다. 남동생을 사랑하는 누나가 사고를 당하고, 뇌만 떼어져 다른 소녀의 육체에 이식되어, 그 소녀의 이름으로 남동생과 관계를 갖는다는 설정이다. 누나로서의 근간은 본인의 의식과 기억뿐으로, 신체도, 사회적 정보도 전부 원래 소녀의 것이며, 자신(누나)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그린 사변성이 짙은 드라마로 구성된 게임이다. 이 게임은 그 자체로 ‘무엇을 두고 근친상간이라 할 것인가’ 하는 기준 자체를 파고들고 있다. 그러한 설정을 보다 깊이 파고들고자, ‘누나의 시점’과 ‘누나가 연인이 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동생의 시점’이 번갈아 나타나는 진행 방식을 도입한 것 역시 본작의 특색이라 하겠다.

코코로나비와 타나토스의 사랑은 표현 면에서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탁월하게 돌파구를 고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물론 애당초 불필요한 규제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말이다. 타나토스의 사랑의 경우 이전 글 《서브컬처와 철학 (8) ~ 『비밀』과 『타나토스의 사랑』 그리고 인격 ~ ( https://brunch.co.kr/@erasmut/55 )》에서 다룬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추천한다.



누나와 하자姉、ちゃんとしよっ!!



(3) 00년대 전반의 에로 게임 – 3



① 시나리오 라이터 타카히로タカヒロ


주식회사 인터하트는 치한 에로 게임 시리즈나 매장 감시 카메라로 주부의 절도 행각을 포착해 협박하는 『경비원警備員』 시리즈 등 능욕 취향의 게임들을 꾸준히 내 온 메이커다. 인터하트 산하에서 캔디소프트キャンディソフト라는 브랜드가 9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개시하는데, 03년도에 스태프가 대거 교체되고 이름을 캔디소프트きゃんでぃそふと로 바꾼다. 이 당시 시나리오 라이터 타카히로タカヒロ가 기획 및 각본을 맡은 작품들이 연달아 히트하며 캔디소프트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03년 6월에 나온 『누나와 하자姉、ちゃんとしよっ!!』(이하 아네시요)는, 미묘한 계층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여섯 명의 의붓누나에게 마구 사랑받는 남동생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제작진 블로그에서 타카히로는 “누나 캐릭터를 좋아하는 저로서 여동생 모에만 쌍수 들고 지지받는 세태에 한탄하였고 그에 따라 제 취향을 들이부은 기획입니다”라 직접 밝혔다.



크레센도~영원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Crescendo∼永遠だと想っていたあのころ∼



묘하게도 아네시오 발매 직후 03년도 7월 Marron의 『누나 세제곱』이나 아틀리에카구야의 『두근두근 누나ドキドキお姉さん』나 D.O의 『크레센도~영원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Crescendo∼永遠だと想っていたあのころ∼』 등 별개의 메이커에서 누나 캐릭터를 중시한 게임이 일제히 발매되었다. 마치 여동생 모에의 캄브리아기가 저무는 것 같은 양상을 보이며 이후 ‘누님’ 장르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는 시기였다. 아네시요는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과 같은 작품으로 이듬해인 04년 신 히로인을 추가한 속편 『누나와 하자2姉、ちゃんとしよっ!!2』가 발매되었다.



츠요키스つよきす



더 나아가 츤데레 역시 좋아하는 타카히로는 공략 히로인 전원이 기 센強気 소녀로 이루어진 『츠요키스つよきす』(2005)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집필한다. 여기서의 츤데레는 앞서 다룬 (타인에게 마음을 열기 전의)외곬수 내지 고집쟁이보다는, 처음에는 틱틱대다 나중에 푹 빠져버리는 뉘앙스다. 히로인에 따라 틱틱대는 과정이 쿨한 누님이기도 하고 고압적인 아가씨이기도 하는 등 몇몇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있다. 연재 만화부터 PS2 이식에 TVA까지 미디어믹스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참고로 이후 캔디소프트에서 나온 『좀 더 누나와 하자もっと 姉、ちゃんとしようよっ!』와 『츠요키스 2학기つよきす2学期』는 타카히로가 인터하트를 퇴사한 뒤 다른 스태프들에 의해 제작된 타이틀이다.

또, 아네시요부터 타카히로와 함께하며 작품군의 원화를 담당한 일러스트레이터 시로네코 산보白猫参謀, 다른 명의로 모가미 센도最神扇道, 쿠로히메도黒姫堂 역시 기억해 두도록 하자.



HARD社の社長が社員全員に面白いと認めさせたクイズ第1弾、君も成田へ行って勝手にジャンケンをしよう



② 귀여운 낭자아이男の娘를 히로인으로 만든 CAGE


게임 제목은 패키지 비주얼과 더불어 수용자가 처음으로 작품에 흥미를 갖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예를 들면 『시즈쿠雫』, 『Kanon』처럼 최대한 정보를 함축한 한 글자 내지 한 어절로 이미지를 집약하는 방식이 있고, 반대로 장황한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방식이 있다. 후자의 경우 80년대에는 『HARD사의 사장이 사원 전원에게 재밌다고 인정하게 한 퀴즈 제1탄, 당신도 나리타에 가서 마음대로 가위바위보를 하자HARD社の社長が社員全員に面白いと認めさせたクイズ第1弾、君も成田へ行って勝手にジャンケンをしよう』, 90년대에는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YU-NOこの世の果てで恋を唄う少女YU-NO』 등이 있다.



사랑하는 여동생은 애달파서 오빠를 생각하면 곧바로 H해버려恋する妹はせつなくてお兄ちゃんを想うとすぐHしちゃうの



03년 7월에 CAGE에서 발매한 『사랑하는 여동생은 애달파서 오빠를 생각하면 곧바로 H해버려恋する妹はせつなくてお兄ちゃんを想うとすぐHしちゃうの』 역시 길고 기발한 동시에 어딘가 의미심장한 시정詩情이 느껴지는 제목으로 흥미를 끌었다. 내용은 일단 로리 계열로 분류되며 말랑말랑하고 둥글고 작은 체구의 여리여리한 캐릭터 디자인의 의붓여동생과 지내는 욕정 일색의 나날을 비교적 밝은 터치로 그린 작품이었다. 단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면 메인 히로인인 의붓여동생보다 귀여운 여장 남동생 캐릭터가 공략 가능 히로인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여성스런 외양을 한 남자아이를 훗날 서브컬처계에선 낭자아이男の娘로 통칭하게 되는데, 그런 수요가 잠재되어 있던 유저들은 크게 기뻐했으며, 이를 계기로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뜬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야하게 떼를 써 버리는 조숙한 나의 말랑말랑大好きな先生にHなおねだりしちゃうおませなボクの/私のぷにぷに



이어서 CAGE는 가정교사물 『정말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야하게 떼를 써 버리는 조숙한 나의 말랑말랑大好きな先生にHなおねだりしちゃうおませなボクの/私のぷにぷに』(2004)라는 보다 긴 제목의 작품에서 또다시 낭자아이 히로인을 등장시킨다. 본작에선 루트 제한 스위치라는 옵션을 키면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여자아이만이 공략되어서 ‘실수로 남자 캐릭터와 이어지는 불상사를 피하고픈’ 수요층을 배려하고 있다. 물론 난 그런 옵션 따위 처음부터 꺼 버렸다.

또한 CAGE는 공략 가능한 낭자아이를 내놓은 『순애걸純愛Girl』, 『사랑하는 여동생은~』, 『정말 좋아하는~』 등 기존 세 작품에서 해당 루트들만을 집약한 특선 소프트 『CAGE BOY’S ヒロイン selection』을 발매하였다. 이로써 CAGE는 로리쇼타ロリショタ 에로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당시 에로 게임 업계에서는 틈새시장 취급이었으나 ‘그런 접근 방식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의의는 크고, 몇 년 후 유행하다 못해 범람하는 낭자아이 밈을 생각하면 나름 선구자의 역할을 한 셈이다.

원래 일본은 남색男色의 일환으로 미소년을 성애의 대상으로 보던 시대가 있었고, 서양 고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유명한 제우스의 시동 가니메데가 있다. 경극을 소재로 한 영화 패왕별희에서 각각 극의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을 분하는 소년들의 애틋한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로리 계열 에로 게임의 여파로서 성적으로 소녀와 미분적인 공통분모를 갖는 소년에의 성애를 추구하는 작품이 나온 것은 마냥 뜻밖의 일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③ 아키하바라秋葉原, 아키바アキバ라는 무대 제목


하나의 도시를 극의 무대로 상정하는 관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도쿄 아키하바라다. 지리적으로 따지면 도쿄도 치요다구의 아키하바라역 주변, 더 구체적으로는 도쿄도 치요다구 외 칸다・칸다사쿠마쵸神田・神田佐久間町 및 다이토구台東区 아키하바라 주변을 가리킨다. 이곳은 시대에 따라 상영극이나 연기자나 연출이 격렬하게 바뀌어 간 무대이다. 전후戰後에는 라디오 부품이나 가전제품, 아마추어 무선 통신 등 전기・전자 상가의 중심지로 거듭났고, 이후 음악, 철도모형 등 취미 계열의 서브컬처스런 연출을 거쳐 PC 시대에 들어서는 결정적으로 오타쿠라는 연기자들이 극을 올리고 이끌어가게 된다. 그리고 바야흐로 00년대에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등으로 연출되는 ‘오타쿠의 거리 아키바’라는 극이 올랐으며, 최근 십여 년간은 다수의 에로 게임 기업이 참가하여 판매 및 판촉을 행하는 ‘아키하바라 전기외축제秋葉原電気外祭り’처럼 제작자 측이 적극적으로 도시의 이름을 걸고 무대를 이끄는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 행해지는 극의 제목이며, 장래에는 다른 극이나 연기자가 간판을 고쳐올릴 가능성이 있다. ‘우리들의 아키바’라는 식으로 소유격으로 가둘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아키하바라 전뇌조アキハバラ電脳組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아키하바라에 다니는 마니아층의 모습을 상정한 ‘아키바계アキバ系’라는 개념이 90년대 말부터 00년대 초입 무렵에 세간에 형태를 구축했고, 인터넷 사용자 특히 넷 게시판 니챤넬2ちゃんねる 유저의 이미지도 덧붙여져 아키바라는 이름의 무대 제목은 『전차남電車男』과 같은 콘텐츠를 낳게 된다.

2차원 미디어에서도 아키하바라를 무대로 하여 그곳을 꾸준히 왕래하는 인종을 다루는 작품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그를 당사자인 오타쿠들이 소비한다는 메타적인 구도가 시작되었다. 제목에서부터 눈에 띄는 TVA 『아키하바라 전뇌조アキハバラ電脳組』(1999)를 보자. 해당 작품은 자율적인 육성 펫 로봇이 유행한 2011년 근미래(90년대 당시 시점에서)의 아키하바라에서 수수께끼의 조직과 싸우는 여자 중학생들을 그리고 있다. 00년대 전반에는 OVA 『너스위치 코무기쨩 마지카르테ナースウィッチ小麦ちゃんマジカルて』(2002~2004)가 아키하바라와 니챤넬 관련 네타를 장착하여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낸 꽤 앞선 선례이다. 참고로 1화의 부제가 「격돌! 코무기 VS 히키코모리・아키하바라 최대의 싸움激突! 小麦VSひっき・アキハバラ最大の戦い」이었다든지, 당시 잘 알려진 아스키 코드 캐릭터인 모나モナー가 등장했다든지 하는 네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립 아키하바라 학원私立アキハバラ学園



에로 게임에서는 프론트윙Frontwing이 03년 8월 발매한 『사립 아키하바라 학원私立アキハバラ学園』이 오타쿠에 의한, 오타쿠를 위한 학원을 둘러싼 소동을 그리고 있다. 강렬하고 짙은 인상의 서브 캐릭터들의 언동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는 내용이다. 같은 시기 전기전자 상가의 메이드 카페를 그린 앤젤스마일Angel Smile의 『아키바에서 차 한잔 하자!アキバでお茶しよっ!』(2003)나 오타쿠 청년이 현실에서 사랑에 빠진 상대를 자신처럼 아키바계 문화로 물들여 친해지려고 궁리하는 G.j의 『아키바계 여자친구アキバ系彼女』(2003)도 있다. 아키하바라/아키바라는 무대 제목을 픽션으로 끌어오려는 흐름의 한 단락이라 하겠다.



아키바계 여자친구アキバ系彼女



이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아키바계로 설정된 히로인의 등장을 지목할 수 있다. 전에도 적었지만 툭 터놓고 말해 에로 게임이나 걸 게임에서 히로인의 속성에 기반을 둔 기호는 메이드든 간호사든 여동생이든 누나든 ‘이 아이라면 날 감싸주지 않을까’ 혹은 ‘이 아이라면 사양 않고 지켜보며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점에서 오타쿠 설정 히로인은 공통된 언어를 가진 존재 달리 말하면 소통의 창구가 열려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존재는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는 중대한 환상향의 일환이라 하겠다.



안젤리크アンジェリーク



④ 여성향 에로 게임 『별의 왕녀星の王女』


에로 게임은 당초 남성향으로 시작되어 시장의 대부분을 남성향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여성향 에로 게임에 대해서는 이야기의 비중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번 단락에서는 잠시 여성향 에로 게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코나미의 도키메모의 등장으로 연애 시뮬레이션 분야가 떠오르기 시작한 직후 여성 주인공이 남성 캐릭터들과 교류하는 여성향 연애 게임의 발상이 곧바로 생겨난다. 94년 9월 코에이가 발매한 판타지 육성 SLG 『안젤리크アンジェリーク』가 그것이다. 첫 출시는 슈퍼 패미콤용 소프트로 도키메모와 거의 평행선처럼 새턴판이나 플스판이 나와 시리즈화되었다.



도키메키 메모리얼 걸즈 사이드ときめきメモリアルGirl’s Side



이후에는 『졸업』의 여성향 버전인 『졸업M卒業M』(1995)이 출시되는 등 남녀가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구성의 연애 게임이 몇 개인가 만들어진 시기를 거쳐 00년대에 들어서는 코에이가 일본풍 판타지 『遥かなる時空の中で머나먼 시공 속에서』(초판 2000년도)를 인기 시리즈로 자리매김하고 코나미는 여성향 도키메모를 표방하는 『도키메키 메모리얼 걸즈 사이드ときめきメモリアルGirl’s Side』(2002)를 발매한 게 눈에 띈다. 이 분야는 ‘소녀들이 하는 게임’이라 하여 오토메 게임乙女ゲ─이라 불리며 2010년대엔 예능전문학교를 무대로 한 『노래하는 왕자님うたの☆プリンスさまっ』(약칭 우타프리) 등이 활발한 미디어 전개를 보였다.



별의 왕녀星の王女



전연령 게임과는 별개로 18금 여성향 게임도 속속들이 등장했다. 03년 8월 미라이美雷에서 발매한 『별의 왕녀星の王女』는 개척자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세의 여대생이 갑자기 양친을 잃은데다 하나뿐인 오빠도 쓰러지고 끝내 집이 야쿠자의 땅투기에 걸려드는 복잡한 처지에 휘말리나, 디자이너 견습생 젊은이, 청년 변호사 등 주변인들의 상냥함에 둘러싸여 굳센 마음으로 살아나간다는 내용이다. 공식 사이트의 제품 소개는 ‘지금까지 있을 법한데도 없었던 본격파 여성향 18금 연애 어드벤처’라는 문장이 곁들여져 있다.



보이×보이~사립코료학원 마고코로 기숙사~BOY×BOY~私立光陵学園誠心療~



또한 이성 연애를 그리는 게임과 별개로 남성 캐릭터간의 연애・성애를 그린 이른바 ‘보이즈 러브BL’물이란 여성향 게임 장르도 존재한다. 초창기 작품으로는 99년 킹레코드에서 윈도용으로 발매된 『보이×보이~사립코료학원 마고코로 기숙사~BOY×BOY~私立光陵学園誠心療~』를 들 수 있다. 전원 기숙사제 남학교에서 일 년 간 지내는 육성 시뮬레이션으로, 외설 묘사가 최대 키스신 정도라 연령고지는 전연령이다. 그러나 BL 게임 자체가 드물던 시기라 존재감이 있었다.



학원 헤븐学園ヘヴン



00년대에는 Spray의 『학원 헤븐学園ヘヴン』 등 능동적으로 미디어를 전개하는 타이틀이 등장하는 한편 남성향 에로 게임 메이커가 산하에 BL 에로 게임 전문 브랜드를 두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앨리스소프트의 Alice Blue나 니트로플러스의 Nitro+ CHiRAL 등이 있다. BL 장르는 만화와 소설이 강세로 에로 게임 규모는 여전히 적은 채이지만 여전히 뿌리 깊게 이어져 오고 있다. 10년대에 화제가 된 작품으로는 집사 캐릭터를 사디스틱하게 괴롭히는 마다공방マーダー工房의 『알몸 집사裸執事』(2010)나, 선이 가는 남자아이를 벗겨놓으니 근육 빵빵 마쵸맨이라는 설정의 BL재팬의 『쇼타 마쵸ショタマチョ』(2011) 등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토메 게임, 여성향 에로 게임, BL 게임은 각각 왕도부터 이단아까지 나열해야 할 타이틀이나 논점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남녀를 막론하고 인터넷 등지에서 암약하는 그쪽 마니아들에게 맡겨두는 게 맞을 것이다.



CROSS†CHANNEL



⑤ 업계의 극찬을 받은 『CROSS†CHANNEL』


03년 9월 Flyingshine은 『CROSS†CHANNEL』을 발매한다. 모종의 정신질환을 앓는 젊은이들이 속출하는 일본을 배경으로 사회부적응자로 간주된 소년소녀들을 모아 격리한 학원에서 방송부에 소속된 여덟 명의 학생이, 그들만이 남은 채 인류가 소실된 평행세계로 옮겨진 채 똑같은 일주일을 몇 번이고 반복loop하는 이상 현상을 맞는다. 균열이 생긴 인간관계 속에서 그들은 몇 번이고 충돌과 폭력과 죽음으로 얼룩진 비극을 반복하지만, 주인공 쿠로스 타이치의 몸을 던진 노력 끝에 화해하고, 이윽고 타이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나의 결의를 다진다… 그러한 처절한 청춘 SF 어드벤처물이다.

타입문의 나스 키노코는 개인 블로그에서 본작을 두고 ‘가보로 삼겠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군림하는 작품을 만나 버린 불운과 행운에 이를 악물며.’ 라 격찬했다. 이렇듯 유저뿐 아니라 업계 측에서도 본작은 호평을 받았다.

크로스채널의 시나리오 라이터는 타나카 로미오로 원래 수많은 유저가 우편이나 전자 메일을 통해 게임 운영자와 소통하며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플레이바이메일Play By Mail을 상용으로 운영하는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기획・각본 수법, 유저 심리에 호소하는 방법론의 소양은 그 당시 익힌 부분이 크다. PBM이나 TRPG 경영자로서 시나리오나 캐릭터 메이킹 방법론을 타 분야에 끌어들여 활약하는 작가의 수는 꽤 많으므로 흥미 있는 독자는 조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타나카는 데뷔 전 시점에서 라이어소프트 작품군에 대한 저명 라이터 대담에 참여할 정도로 업계 내에서 입김을 발휘한지라 도대체 정체가 뭔지 억측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PBM 업체 시절 동료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따르면 가족계획 등 사회파 3부작을 D.O에서 집필한 야마다 하지메가 프리랜서가 되고 필명을 바꾸게 되자 PBM 당시의 예명인 타나카 로미오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실제로 각종 미디어에서 타나카의 작품 이력에 야마다 하지메 작품군이 나열되면서도 공식적인 부정이 없다는 점에서 야마다 하지메=타나카 로미오라는 사실은 확정적이라 할 수 있다.



꿈꾸는 약ユメミルクスリ



이어서 타나카는 05년도에 자우스Xuse에서 『최후의 지금最果てのイマ』을, 동년도에 ruf에서 『꿈꾸는 약ユメミルクスリ』을 발표하여, 인간을 고뇌에 빠지게 하는 마음의 문제를 파헤치는 작풍으로 평가가 높아지고, 라노베 분야에도 진출하여 블랙 유머로 가득한 원미래 SF 소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人類は衰退しました』나 중2병 소재의 쥬브나일 소설 『AURA~마류인 코우가 최후의 싸움魔竜院光牙最後の闘い~』로 실적을 쌓아간다.

크로스채널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본 블로그의 《서브컬처와 철학 (1) ~ CROSS†CHANNEL과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 ~》( https://brunch.co.kr/@erasmut/2 )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⑥ 루프물과 관련 모티프


크로스채널의 등장인물들은 설정상 삼중 감옥에 갇혀 있다. 첫째로, 가슴에 안고 있는 어둠을 억누르는 자기 자신의 정신적 감옥. 둘째로, 그런 그들을 하나의 시설에 격리하는 사회적 감옥. 마지막으로 똑같은 일주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체험당하는 시공간의 감옥이다. 이번 문단에서는 세 번째 장치인 이른바 루프loop 양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복수의 횟수만큼 강제적으로 시공간이 되돌려져 지극히 유사한 상황을 강요받는(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거나 포기해버리는) 루프 구조의 이야기는 SF 장르에서는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전형이다. 프레데릭 폴Frederik Pohl이 1955년 집필한 『지하 세계의 터널The Tunnel under the World』, J.G. 발라드James Graham Ballard가 1956년 집필한 『탈출Escapement』, J.T. 매킨토시J. T. McIntosh가 1957년 집필한 『열 번째 라운드Tenth Time Round』 등 1950년대 후반에 루프물 단편 소설이 집중적으로 나왔고, 그 외에 루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아시모프의 55년작 『영원의 끝End of Eternity』, 루프물을 다룰 때 곧잘 참조되는 켄 그림우드Ken Grimwood의 『리플레이Replay』 등이 있다. 일본에서도 츠츠이 야스타카筒井康隆를 시작으로 수많은 작가들이 다룬 소재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凉宮ハルヒの憂鬱



90년대생인 필자와 비슷한 연배의 서브컬처 유저 중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凉宮ハルヒの憂鬱』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그 중 엔들레스 에이트 파트가 바로 루프물로, 애니메이션에서 총 8회의 루프를 횟수당 한 화씩 소화한 건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당시 엄청난 반향을 냈다. 근미래의 전장에서 신참 병사가 수없이 루프를 겪으며 숙련된 용사로 거듭나는 내용의 『All You Need Is Kill』 역시 걸작 루프물로, 톰 크루즈 주연으로 헐리우드에서 실사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또 이쪽에서 유명한 영화로는 빌 머리가 출연한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1993)이 있다. 꼴불견인 남자가 똑같은 24시간을 반복하며 개과천선하여 로맨스를 달성하는 내용이다. 같은 해에 개봉한 영화 『12:01』 역시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설정상으로는 훌륭한 루프 SF물이다. 그 외에도 동서고금 TV 방영극의 에피소드로 곧잘 차용된다.



시끌별 녀석들 2 뷰티풀 드리머うる聖やつら2 ビューティフル・ドリーマー



‘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사실 모형 정원처럼 동떨어진 인공 환경이며, 누군가에 의해 수없이 리셋되었다’는 진상을 내포하는 경우도 넓은 의미에선 루프물의 일종이다. 앞서 말한 『지하 세계의 터널』이 그런 종류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찾자면 극장판 『시끌별 녀석들 2 뷰티풀 드리머うる聖やつら2 ビューティフル・ドリーマー』가 있고, 초능력 배틀물 OVA 『아이 시티アイ・シティ』 역시 장대한 환경 루프물이다. 컴퓨터에 의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개념이 유행함에 따라 그러한 설정을 이용한 작품이 늘어났다. 그러한 맥락에 있는 선라이즈의 로봇 애니메이션 『제가페인ゼーガペイン』(2006) 역시 명작이다.



Repeat 반복되는 시간 그리고…繰り返されるときそして…



에로 게임에서 손꼽을만한 루프물로는 우선 시리우스Sirius의 『Repeat 반복되는 시간 그리고… Repeat 繰り返されるときそして…』(2000)이 있다. 유령이 된 주인공이 어느 공원 부지에서 똑같은 일주일을 반복하며 자신도 모르던 현세의 미련을 탐색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개인이 아닌 세계 구조의 단계에서 원환 운동을 하는 의미에선 칸노 히로유키의 『DESIRE』, 『YU-NO』나 라이어소프트의 『쿠사리 히메』를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복수 회차 루프는 아니지만 엘프의 『드래곤나이트4ドラゴンナイト4』(1994)도 언급해 두기로 한다.



3days - 채워져 가는 순간의 저편에서満ちてゆく刻の彼方で -



21세기 이후의 작품들은 시스템상으론 YU-NO에 가깝고 루프 개념을 보다 첨예하게 이용한 Lass의 『3days - 満ちてゆく刻の彼方で -3days – 채워져 가는 순간의 저편에서 -』(2004)나 서커스 간판 타이틀 다카포 시리즈 등이 있다. 추후 다룰 『Fate』 시리즈의 속편격 외전 『Fate/hollow ataraxia』(2005)의 경우 앞서 언급한 뷰티풀 드리머와 마찬가지로 누가 루프의 주체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Key의 『리틀 버스터즈リトルバスターズ』(2007) 역시 후반에 루프 구조임이 밝혀진다. 모형 정원 형식으로는 스밋코소프트すみっこソフト의 『봄까지 쿠루루はるまで、くるる』(2011)가 수작으로 꼽힌다.



봄까지 쿠루루はるまで、くるる



지금까지 나열한 건 기본적으로 ‘리셋을 당하는’ 타입이지만 그와 별개로 등장인물이 일종의 능력이나 기술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리셋을 반복하여 원하는 결말에 도달하는 작품도 있다. 타임리프물, 리셋물, 역행물 등 호칭은 다양하나 간단하게 말해 ‘탈출’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능동적으로 시공간을 반복하는 이야기 형식을 일컫는다. 극장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2006)가 좋은 사례이다.



스마가スマガ



에로 게임에서 이러한 능동 형식을 극한까지 구사한 작품이 니트로플러스의 『스마가スマガ』(2008)다. 자칭 장르명은 인생 리벤지 어드벤처人生リベンジADV로, 어째선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죽어버린 주인공이 신에게 인생을 리플레이하는 능력을 부여받아 해피 엔딩을 노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단순한 리셋이 아니라, 되풀이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관에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탁월한 설정을 구사한다.

일반 게임 중에는 평행세계와 시간 여행 개념을 조합해 사건 해결의 돌파구를 찾는 과학 어드벤처 게임 『슈타인즈:게이트Steins:Gate』(2009)가 ‘세계선’이란 용어와 함께 공전절후의 히트를 기록했다.



슈타인즈:게이트Steins:Gate



한편 앞서 소개한 니트로플러스의 라이터 우로부치 겐이 시리즈 구성을 책임진 애니메이션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魔法少女まどか☆マギカ』(2011)에서, 친구 카나메 마도카를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 여행을 되풀이하는 소녀 아케미 호무라의 비장한 싸움도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서브컬처와 하이컬처를 막론하고 미디어에 나오는 모든 루프 요소를 두고 특정 작품군의 영향이라고 단정할 순 없을 것이다. ‘리셋’이라든지 ‘리플레이’ 같은 개념은 굳이 따지면 게임 소프트나 하드의 차원에서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익숙해져 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발상을 따왔다고 해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부자연스런 현상도 한 발짝 물러서 보면 게임 제작자나 유저의 입장에서는 ‘게임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부분에선 ‘현실성’ 담론도 있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파고들어가 보자. 가령 몇 번이고 환생하며 사람, 동물, 벌레 등으로 고통에 얼룩진 생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윤회전생이라든지, 요정의 장난질로 같은 길을 빙글빙글 계속 돈다든지, 어느 일족에서 태어난 자가 필연적으로 같은 병을 앓는 저주라든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비슷한 원인으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인식이라든지, 이들 역시 강요받는 반복에 의한 드라마다. 특히 전생물 중 『백만 번을 산 고양이一○○万回生きた猫』처럼 환생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무상함에 착안하여 루프물로 간주하는 뉘앙스도 있다.

이들 모두의 근간에 있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원시 인류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어디의 누군가가 “태양은 몇 번이고 뜬다” “파도는 몇 번이고 밀어닥치고는 물러난다” “계절은 순환한다” 등 자연 현상을 반복 개념으로 파악한 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우주가 장대한 시간 끝에 일회전하여 초기화하는 유형의 세계관을 가진 신화 등도 아마 그런 감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연 현상은 반복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관념에다가, ‘매일 밤 같은 꿈을 꾸며 가위에 눌리는’ 악몽이라는 장치가 더해지며, SF나 판타지의 포맷으로 조형된 게 루프물이나 리플레이물이라 하겠다.

역설적이게도 반복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반복을 멈추고 한 번에 그치길 소망하는’ 의지가 빛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특히 능동적인 리플레이물이 그러하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리셋한들 리셋하기 전과 후의 상대는 과연 동일한 존재일까? 애당초 자기 사정으로 세계를 되돌리는 짓을 해도 되는 걸까? 결국 단 한번만 일어나며 돌이킬 수 없기에 인생은 소중한 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섬세한 부분을 어떻게 요리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것 역시 루프나 리플레이를 그린 작품을 즐기는 주안점이라 할 수 있다.



Fate/stay night



⑦ 『Fate/stay night』와 『CLANNAD』


04년 1월 30일, 타입문의 상업 데뷔작인 비주얼 노벨 『Fate/stay night』가 발매된다. 어떤 소원이든 이뤄 주는 ‘성배’를 둘러싸고 마술사와 사역마(서번트) 듀오 일곱 팀이 일본의 어느 마을을 전장으로 펼치는 초자연적 배틀 로얄을 그린 전기 활극이다. 서번트는 역사상의 영웅이 정령이 되어 생전의 진명을 숨기고 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아, 이 캐릭터는 영국 전설에 나오는 그 사람이구나’ ‘이 녀석은 그리스 신화의 그 놈인가, 강할 만하네’ 이런 식으로 독자를 두근거리게 하는 극의 운용이 매력적이다. 당시 업계 정보지 『PC NEWS』의 세일즈 랭킹에서 적어도 이 년 간 20위권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든지, AIR의 초동 판매량을 넘었다든지 하며 넷상에서 갖가지 위용을 떨친 타이틀이다. 곧바로 2차 창작도 활성화되었으며 익년 68회 코믹 마켓에서는 걸 게임이라는 장르 안에 타입문이라는 독자 장르를 개설할 정도로 흥행했다. 이 때 미소녀 게임의 메이커명으로 장르 코드가 붙은 건 리프, 키, 그리고 타입문 뿐이다. 월희의 성공이라는 밑바탕이 있었다고 해도 상업 게임 실적이 없는 메이커의 처녀작으로선 매우 이례적인 히트작이었다.



CLANNADクラナド



비18금 게임으로는 페이트 발매 삼 개월 후인 04년 4월 28일 Key의 신작 『CLANNADクラナド』가 발매되었다. AIR보다 가족애 드라마 측면을 더욱 강화시켰고, 내용 역시 학원물에 머무르지 않고 주인공의 고교 졸업 후 히로인과 가정을 꾸리는 모습까지 그리고 있다. 장르의 차이, 비18금의 진입장벽 등의 요인 덕분인지 타입문 열풍 속에서도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같은 해의 투톱인 이 작품들은 이후 TVA, 극장판, 콘솔 이식 등 비슷하게 활발한 미디어 전개를 이어나가며 수명을 오래 유지하게 된다.



메리 포핀스Mary Poppins



⑦ 미소녀 게임과 마녀・마법소녀・변신 전투 히로인


이번 문단에서는 미디어에서의 마녀, 마법소녀, 그리고 이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변신 전투 히로인이 에로 게임이나 걸 게임에 등장한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지대한 기반으로는 고전에서는 『아내는 요술쟁이Bewitched』, 『내 사랑 지니I Dream of Jeannie』, 『메리 포핀스Mary Poppins』 등 서양의 마녀 소재 드라마나 영화를 참조하여 일본에서 만든 아동용 만화가 있다. 또 1970년대 토에이 동화東映動画나 80년대 스튜디오 피에로スタジオぴえろ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은 이세계에서 일상으로 찾아들어온 ‘꼬마 마녀’ 그리고 인간 소녀가 마법을 얻어 비일상으로 뛰어드는 ‘마법소녀’가 전면에서 활약하는 장이 되었다.



마법소녀 실키 립魔法の少女シルキーリップ



92년도에 니혼텔레넷日本テレネット에서 메가CD용 소프트로 발매된 『마법소녀 실키 립魔法の少女シルキーリップ』은 이에 편승해 장르 패러디를 준수하게 해낸 케이스로, 꼬마마녀 설정이나 외양 뿐 아니라 TVA 정규 방송의 파트 구성까지 포함한 패러디였다.



마법 도박사 토토칼 쵸미魔法の賭博師トトカル☆チョミ



PC용 에로 게임으로는 『VIPER』 시리즈 중 하나인 『마법 도박사 토토칼 쵸미魔法の賭博師トトカル☆チョミ』(SONIA, 1996)가 장르 패러디의 단적인 예시이다. 어른으로 변신해 마법의 장난질로 타짜 짓을 하는 마법소녀의 이야기로, 서양에서 시작된 마법소녀의 변신은 어느새 어른의 직업용 의상을 두르고 사회를 체험하는 훈련으로 변주되었다.



꼬마마녀 파라다이스まじょっ子ぱらだいす



티아라ティアラ에서 발매한 『꼬마마녀 파라다이스まじょっ子ぱらだいす』(1996, 1999)는 다양한 패러디 히로인을 한곳에 모은 에로 게임으로, ‘꼬마 마녀’를 표방하면서 캐릭터 디자인의 근간을 『오 나의 여신님ああっ女神さまっ』, 『마법소녀 프리티 사미魔法少女プリティサミー』, 『아이돌 전설 요코소 요코アイドル伝説ようこそようこ』, 『애천사전설 웨딩 피치愛天使伝説ウェディングピーチ』, 『꾸러기 마녀 노노ヤダモン』 등 다양한 작품들과 캐릭터에서 따와 뒤섞었다. ‘꼬마마녀’와 ‘마법소녀’의 엄밀한 구별이 난해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지금도 별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마법소녀 메루루魔法少女メルル



이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마녀’의 디자인을 구사한 에로 게임으로는 네코시타 퐁ねこしたPONG의 에로 만화를 원작으로 한 『마법소녀 메루루魔法少女メルル』(1999)가 있다. 단 이 작품의 무대는 완전한 판타지 세계로 굳이 말하면 ‘여자 마법사’라 해야 타당할 것이다. 참고로 성인용 OVA로 만들어져 해외에 수출도 된 작품이다.



울트라 마법소녀 마나나ウルトラ魔法少女まなな



앨리스소프트는 꼬마마녀가 거대 괴수와 싸우는 『울트라 마법소녀 마나나ウルトラ魔法少女まなな』(2004)를 제작하는데, 이는 꼬마마녀 캐릭터의 ‘이세계에서 건너와 사명을 다하는’ 대목을 울트라맨이 괴수와 싸우는 그림에 접합시킨 취향이다.



마계천사 지브릴魔界天使ジブリール



그리고 ‘소녀의 싸움’이란 설정의 기반으로선 ‘변신 격투 히로인’ 역시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다. 테즈카 오사무의 『리본의 기사リボンの騎士』 이후 남장이나 기사 복장으로 싸우는 여성향 히로인을 시작으로, 나가이 고의 큐티 하니,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 특촬극 『토에이 불가사의 코미디東映不思議コメディー』 시리즈, 거기에 토에이 전대물 등 실사 특촬물을 거쳐, 1992~1999년에 방영된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이 그 위용을 떨친 장이다.

싸움이란 지는 순간 험한 꼴을 당하는 위험을 동반하는 일종의 내기이다. 싸우는 자태가 아름다운 히로인일수록 ‘지고 나서 능욕당하는 꼴이 적잖이 야하겠지’ 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기 에로 게임 시리즈인 『마계천사 지브릴魔界天使ジブリール』의 첫 작품의 캐치카피는 ‘싸우는 변신 히로인, 당해버렸습니다戦う変身ヒロインやられちゃいました’로, 이 계통의 니즈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소녀 작사 스치파이美少女雀士スーチーパイ



세일러문이 인기를 끌던 90년대 전반기에 ‘변신하여 전용 복장을 두르는 히로인’ + ‘패배에 따른 에로’라는 두 개의 축으로 재빠르게 대응한 건 다름 아닌 탈의마작 게임이었다. 『미소녀 작사 스치파이美少女雀士スーチーパイ』(1993 처녀작 발매, 속편부터는 ‘아이돌 작사~’)와 『미소녀 작사 프리티 세일러 18금美少女雀士プリティセーラー 18禁』(1994) 둘 다 세일러문에 착안한 네이밍이다. 게다가 세일러문의 특색은 ‘구조상으론 마법소녀물이지만 부여되는 임무는 변신 전투’라는 이중성이다. 그러한 마법소녀풍 변신 전투 히로인은 가령 에로 게임에선 colors의 『마법소녀 아이魔法少女アイ』(2001)나 트라이앵글トライアングル의『마법전사 스위트 나이츠魔法戦士スイートナイツ』(2002), 밀푀유ミルフィーユ의 『마법소녀 사에魔法少女沙枝』(2005)와 같이 촉수 에로와 연결 짓는 케이스가 많다.(위에서 소개한 실키 립의 에로 게임 판본 역시 촉수물이다)



리리카 SOSナースエンジェルりりかSOS



예전부터 인기를 구가한 촉수 에로 애니메이션 중에도, 히로인이 마력이나 영력을 갖고 사악한 무리와 싸우는 무녀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 작품들이 있다. 의도적인 연동일 것이다. 마법소녀나 변신 전투 히로인이 자신을 희생해 부정한 것을 빨아들이는 무녀로 산화하는 성질은 일반물 중에도 애니메이션 『리리카 SOSナースエンジェルりりかSOS』(1995) 등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촉수 에로는 그러한 상황을 전면에 드러내는 장치이다.



카드캡터 체리カードキャプターさくら



20세기 말에는 CLAMP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카드캡터 체리カードキャプターさくら』(1998~2000)가 새로운 마법소녀 이미지의 기반을 구축한다. 친구 토모요(국내명 지수)가 사쿠라(체리)를 위해 “마법소녀 하면 이거랍니다” 하며 의상을 준비해 주는 설정을 통해 코스프레로서의 마법소녀(국내 팬덤의 표현에 따르면 변장소녀)의 면모를 작품 차원에서 이미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즉 서양의 프로토타입 꼬마마녀들의 ‘어른 사회의 유사체험을 위한 변신’이 ‘마법소녀(의 패션이)가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 변신’으로 옮겨졌다는 시각도 가능하다.




Septem Charm 매지컬 카난まじかるカナン / 일곱빛깔 드롭스ななついろ★ドロップス



디자인 면에서 카캡사를 베이스로 한 에로 게임은 요코타 마모루가 세운 테리오스テリオス의 데뷔작 『Septem Charm 매지컬 카난Septem Charm まじかるカナン』(1998)이나, 마법소녀 하면 으레 옆에 있는 마스코트 캐릭터로 모습이 바뀐 주인공이 정체를 숨기고 히로인을 돕는다든지 사랑에 빠진다든지 하는 UNISONSHIFT의 『일곱빛깔 드롭스ななついろ★ドロップス』(2006)가 있다. 둘 다 일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후자의 경우 애니메이션 제작진이 이후 자체 원작인 아동용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니 『쥬얼 펫 팅클ジュエルペットてぃんくる☆』(2010~2011)이라는 걸작이다. TVA의 마법소녀에서 이미지를 가져 온 마법소녀 에로 게임이 한층 더 이미지를 원류로 순환시킨 흥미로운 사례이다.



꼬마마법사 레미おジャ魔女どれみ
빛의 전사 프리큐어ふたりはプリキュア



카캡사와 비슷한 시기 토에이는 98년부터 03년에 걸쳐 『꼬마마법사 레미おジャ魔女どれみ』 시리즈로 마법소녀로의 회귀를 행하고, 04년의 『빛의 전사 프리큐어ふたりはプリキュア』로 시작되는 프리큐어 시리즈로 변신 전투 히로인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 있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게 된다. 이세계에서 마스코트 캐릭터가 나타나 임무와 변신 능력을 부여하는 마법소녀 설정에, 『에어 마스터エアマスター』, 『드래곤볼ZドラゴンボールZ』 등에 관여한 시리즈 감독의 남성 취향 육탄전 배틀 애니메이션의 영상 문법을 조합하고, 거기다가 소녀끼리의 농후한 인연의 드라마를 통해 이 모든 걸 이끌어가는 독특한 접근은 세일러문 이래 마법소녀의 이미지의 장에 커다란 가능성을 시사했다.



둘이서 마블해버립니다! 어제의 적은 오늘도 연인!?ふたりでマーブルしちゃいます!昨日の敵は今日も恋人!?



초대 프리큐어 시절 해당 작품 이미지를 토대로 한 에로 게임은 2005년의 『둘이서 마블해버립니다! 어제의 적은 오늘도 연인!?ふたりでマーブルしちゃいます!昨日の敵は今日も恋人!?』가 있다. 마블은 초대 프리큐어의 필살기 프리큐어 마블 스크류プリキュア・マーブルスクリュー에서 따 왔을 것이다.

또 10년대 초반에 소년이 여체화하여 프리큐어 같은 변신 히로인이 되는 에로 게임이 두 작품 나왔다. 낭자아이 클럽おとこの娘倶楽部의 『꼬마마녀 미노링~내가 마법소녀!?~まにょっこ☆みのりん∼僕(♂)が魔法少女!?∼』(2011)와 CROWD의 『두 사람은 마이 엔젤ふたりはマイエンジェル』(2012)이다.



쾌도천사 트윈엔젤快盗天使ツインエンジェル



에로 게임 외의 분야에서 프리큐어의 파급력의 사례로는 파치슬로パチスロ(파칭코 슬롯 머신) 소프트 『쾌도천사 트윈엔젤快盗天使ツインエンジェル』 시리즈(초판 2006년)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이너 코가 마코토古賀誠가 디자인을 담당하고 타무라 유카리・노토 마미코를 성우로 기용하는 등 애니메이션 팬덤을 노린 판촉도 한몫했다. (실제로 OVA도 제작되었다)



CARNIVAL



⑨ 시나리오 라이터 세토구치 렌야瀬戸口廉也


2004년 5월 시나리오 라이터 세토구치 렌야는 S.M.L에서 『CARNIVAL』로 데뷔한다. 왕따 피해자 소년이 자신을 괴롭히던 상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연행 도중 도주하고, 어쩌다보니 학교의 마돈나로 떠받들어지는 소녀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이런 시놉시스로 시작하는 강렬한 인상의 사이코 서스펜스 드라마가 유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세토구치는 대재해로 외부와 분리된 피해자들의 물리적・정신적 갈등을 첨예하게 그려낸 군상극 『SWAN SONG』(Le.chocolat/Flyingshine, 2005), 음악 밴드 milktub의 리더 bamboo(본명 타케우치 히로시竹内博)의 프로듀싱이 전면에 드러나는 걸즈 밴드물 『키라☆키라キラ☆キラ』(OVERDRIVE, 2007)에 시나리오로 참여한다.



MUSICUS!



이후 은퇴를 선언하고 몇 편의 소설을 집필했다가, 2019년 OVERDRIVE에서 『MUSICUS!』로 시나리오 라이터로 복귀한다. 실제 세토구치를 포함한 개발진이 게임 업계를 떠나 밴드를 기획했다가 현실의 쓴맛을 보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본작의 극한 상황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진다.

CARNIVAL에 대해서는 이전에 사르트르의 『닫힌 방』과 연계하여 쓴 글 《서브컬처와 철학 (2) ~사르트르의 『닫힌 방』과 CARNIVAL~ ( https://brunch.co.kr/@erasmut/2 ) 》을 참고하길 추천한다.



ALMA~계속 곁에서ずっとそばに…~



⑩ 소프륜 규제의 추이


소프륜과 미디어윤리협회メディア倫理協会(現 콘텐츠・소프트 협동조합コンテンツ・ソフト協同組合)와 성인용 게임의 심사를 두고 경쟁하던 게 원인이었을까, 적어도 04년 10~11월 무렵부터 소프륜의 일부 규제가 변경된 흔적이 있다. 이 시기 이후 성 묘사가 용인되는 혈연의 범위, 성적인 단어, 수간 묘사에 대한 완화가 뚜렷해진다.

알기 쉬운 예로 03년 5월 발매된 『ALMA~계속 곁에서ずっとそばに…~』는 04년 11월 저가판으로 리메이크되어 발매되었는데, 이전에는 성 묘사가 없던 여동생 캐릭터 토자키 유이十崎由衣의 정사씬이 등장하였다. 근친 규제가 이즈음 해금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시나리오의 표현의 폭 역시 넓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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