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이론과 함께 읽는 모토나가 마사키
<아이의 공상은 가치가 떨어진 부모를 쫓아내고 원칙으로서의 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부모라 상정한다. 이에는 현실의 경험을 동반한 우연의 관계가 동원된다.> - 《신경증자의 가족소설》(S.Freud 著, 中山元 譯) 中
“이제 선배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 선배의 생각 속에는 분명히 내가 있어요. 나도 모르는 내가 있고, 대상 자신도 모르는 모습이 얼마든지 있어요. 적어도 그것들은 선배 안에서만 있는 특별한 것들이에요.”
“동의하냐, 반대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인식의 문제야. 우리들은 더 이상 상대방을 보지 않아. 그저 우리 안의 ‘속성’에 불과한 것을 보고 있을 뿐이지. 자신 안의 속성을 환기하며 눈앞의 인간에게 끼워 맞출 뿐이야. 우리들은 스스로의 안에 있는 속성을 바라보며 그것을 상대로 대화하고 있어. 외적 세계를 내적 세계에 대입한다고 할까, 거꾸로 내적 세계를 외적 세계에 부연한다고 할까, 뭐라 말하면 좋을까… 세계의 바꿔 읽기? 인식의 외계를 향한 피드백? 그런 느낌이야. 우리들은 지금 최전선에 있어.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고 있어. 우리가 서 있는 장소를 경계로 해서 역사가 바뀌어. 우리는 진화하려 하고 있어. ‘사회성’을 극복하고 말이지.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해 온 최악의 감옥을 빠져나와서는 자신만의 감옥에 들어가는 거야. 존재를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비존재에 대한 사랑을 존재에 쏟아 붓는 거야. 우리가 되려는 건 그런 종족이야. 낡은 인류는 멸망하고 우리가 살아남은 거지. 그러니까 웃어도 돼, 이 앞에는 낙원이 있을 뿐이니까.”
<모든 생명체는 보존적인 충동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 이러한 충동은 태곳적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힘이라고 보아야 한다. (…) 만일 생명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것은 보존 충동에 위배될 것이다. (…) 본질적인 이유로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한다. 다시 한 번 생명이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는 원칙이 예외 없는 진실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목표는 죽음이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 『쾌락원리를 넘어서』S.Freud 著
<이 생식세포들은 생물체의 죽음에 대항하여 잠재적인 영속성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죽음에 이르는 길을 연장했다.> - 『쾌락원리를 넘어서』S.Freud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