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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말고 '충분'이요!

enough for life

by keemondo


사람들은 ‘보통’처럼만 살자고 쉬이 말하지만 보통이라는 기준은 꽤나 상대적이다.

보통의 20대라면 가져야 할 스펙, 연령층 별 보통의 월급이나 재산 수준에서는 집단은 존재하지만 개인은 부재한다. 게다가 sns의 활성화는 이 보통의 기준을 높여만 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의 기준엔 쉬이 도달하지 못하지만

보통에 미달된다는 상대적 박탈감은 쉽게 얻는다.


자 그럼 여기서. 얼핏 '보통'이라는 단어와 비슷하지만 '충분'이라는 단어는 어떠한가.


두 단어를 국립국어원 표준 대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보통 :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충분 : '충분하다'의 어근으로,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뛰어남과 열등함의 정도를 보는 '보통'과 달리, '충분'의 기준이 모자람과 넉넉함이라는 건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충분'은 스스로 결정하는 기준이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마음은 욕심을 버릴 수 있도록 해주고, '충분히 잘했어.'라는 마음은 쉬어도 된다는 안심과 함께 삶의 여유를 가져다준다.




치앙마이의 반캉왓을 둘러보러 갔다가, 근처에서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아름다운 카페이자 소품샵, 숙소인 ‘enough for life’에 들렀다.


enough for life


이미 sns에서 유명한 곳이라 샵 내부는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북적였지만, 이상하리만큼 조용했고, 평화로웠던 enough for life. 모두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드는 분위기가 공간 곳곳에 녹여져 있었다.


‘enough for life’라는 가게의 이름을 직역해 보면 ‘목숨을 걸 만큼’ 혹은 ‘삶의 충분한 것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생각해 보니 이 가게는 치앙마이와 빠이의 분위기를 매우 닮아 있었다.


느리게 흐르는 치앙마이와 빠이의 하루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여유로운 마음 덕분인지 치앙마이와 빠이에서는 화를 내는 사람들을 좀체 보지 못했다. 스마일의 나라답게 미소가 디폴트 값인 거리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인 곳에서 흔히 들렸던 클랙슨 소리조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열흘. 시끄러웠던 건 내 마음속 욕심들과 불안함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베트남의 오토바이 클랙슨은 본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이고, 태국은 잘 누르지 않는 편이라 한다.)




보통의 삶에 부합하는 성적과 졸업, 그리고 취직과 결혼이라는 사회적 노선을 걸으며 나는 늘 알레르기가 난 듯 가렵고 불편해했다. 성격 심리테스트를 하면 항상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이해되지 않는 규정과 규율을 못 견뎌한다는 것인데, 나는 언제나 이 보통의 길을 삐딱하게 걸었고 작은 골목길로 샜다. 불멸의 꿈이었던 기상캐스터를 당시 방송사의 나쁜 pd로 인해 접은 후부터는 직업이란 내게 돈을 벌 수단에 지나지 않아 왔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문화적으로나 재미 요소가 많은 서울에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힘듦을 서울로 상쇄시키면서 서울에서의 나 자신을 사랑했다. 아니 집착했다. 그렇게 약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치앙마이를 여행하면서 내가 정말로 원했던 삶은 서울에서의 삶이 아니라 그저 자유로운 삶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짧은 거리의 이동조차도 제약이 많았던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내가 원할 때 아무 곳이나 갈 수 있고 문화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서울을 사랑했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족쇄에 내 삶을 채우고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왜 꼭 서울에 집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지구를 나의 집으로 만들면 될 텐데.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다는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부업으로만 하고 있던 블로그와 유튜브를 왜 본업으로 만들어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왜 스스로를 믿지 못했을까. 이미 충분한데!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먼저 고정 지출비를 줄일 수 있도록 당장 전세를 빼자 다짐했고, 좋아해서 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어보기로 다짐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지 십여 년이 흘렀다. 십 년 동안의 관성을 한순간에 깨어버릴 이 놀라운 생각을 단 열흘 동안의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는 점이 무척 놀랍다.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고마운 치앙마이.


어느 책에서 태어난 곳이 모든 이에게 고향이 아니라 놀랍도록 마음이 끌리고 동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고향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내겐 치앙마이가 고향이 아닐까. 분명히 나는 이곳에서 새로이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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