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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Dec 27. 2024

퇴사 후 편도만 끊고 치앙마이 가는 허리재활러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정녕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 뿐인 걸까?”



2022년 12월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의 나는 여느 때처럼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당시에 다녔던 회사로 출근을  했다. 고된 3개월의 야근 기간을 1개월 앞둔 때라, 회사 최고의 복지였던 '성수동'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점심시간, 퇴근 이후 최대한으로 누리고 있었고, 오늘도 성수동의 어떤 매력적인 곳에서 점심시간을 보낼까 설레며 오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흘러가는 1분, 1초. 시곗바늘에 맞춰 흘러 들어오는 햇살. 너무나도 똑같은 장면 속에서 오늘의 업무를 끝내고, 오전 11시가 되었다. 이제 점심시간까지 1시간 남았군. 나는 잠시 일어나려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순간. 허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고통스러운 통증이 허리와 허벅지를 거쳐 온 다리를 관통했다. 허리를 펼 수도, 걸음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나는 회사 근처의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허리디스크와의 동행. 나는 이후 도수치료와 시술, 여러 번의 주사, 한의원 등을 거쳤지만 앉아서 업무를 하기는커녕 출근조차, 아니 혼자 씻거나 누워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수술을 예약하고 당시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수술 이후엔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활을 했고, 이후 실업급여가 끝나는 시점이었던 올해 3월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며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9시부터 6시까지 회사에서 일을 했고, 퇴근 후 저녁엔 재활을 했다. 그렇게 일과 재활만을 병행하며 지냈으나 역시 일상생활은 사치였던 걸까. 내 허리는 오랜 시간을 버텨주지 못했다.

이번에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래 앉아있지 않으려고 1시간에 한 번씩은 꼭 일어나면서 일을 하고 있었고 여느 때와 똑같이 잠시 일어난 순간, 처음 허리 디스크 발병 때처럼 갑자기 허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곧바로 회사 근처의 병원으로 향했는데 생각보다 상태는 심각했다. 횡단보도를 신호 안에 건너지 못할 정도. 스스로도 꽤 많이 놀라고 또다시 악화되는 굴레가 너무나도 절망스러웠다.


그렇게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 여느 병원에서 똑같이 들은 것처럼 철을 박을 때까진(유합술) 이 고통은 어쩔 수 없으며 운동으로 잘 버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한동안 잘 붙이지 않던 마약성 진통패치를 처방받아 붙이며 지냈는데, 이 패치로 부작용이 나타났고, 그렇게 패치마저 붙이지 못하게 되었다. 앉아서 하는 일은 더욱 힘에 부쳤고, 이때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들도 몇 개 겹치면서 꽤 오랜만에 우울증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었다. 오랜 재활을 통해 예전보다 컨디션을 꽤 빠르게 올리긴 했지만, 이런 이유들로 나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 즈음의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열심히 살아갈 전의가 소진되어, 되살릴 희망이 조금도 없도록 재 마저 날아간 듯한 느낌. 그래서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자신감이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일을 안 하고 무작정 본가로 내려가 쉬기에는 현재 나이도 나이지만.. 어릴 때부터 서울이라는 도시를 무척 좋아했는데, 이 마음이 어느 정도냐면 외국에서 잠시 살 당시 향수병이 올라올 때마다 고향보다 서울, 특히 한강을 그리워할 정도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아간다면 이대로 또다시 쉴 틈 없이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불안하고 고민되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모든 걸 내팽개쳐둔 채 휴가 겸 생각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좋아하는 말 중에,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머무를 곳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를 잃어서 완전히 떠나서 생각을 해보기로 했고, 현재의 모든 상황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무작정 떠나게 된 휴식의 여행지로의 편도행.

허리 상태도 보고, 생각이 정리되면 돌아오기로 했다.


비행시간조차 도전의 시작이고,

낯선 곳에 혼자 이 허리로 가는 1분 1초가 모두 도전일 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좀 더 성장하고 단단해질 수 있겠지?


욕심과 불안, 걱정은 모두 비우고

많은 경험들과 자신감, 확신은 채울 수 있길 바라며 나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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