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게, 유영하듯 살아가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것

by 여유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

-빨간 머리 앤 중에서


직장인의 삶을 살면서 알게된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 두 번째는 바로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적성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도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나는 내가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다.


아이들 대상으로 일을 하면 대부분 아이들이 싫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였다. 아이들이 갈수록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학부모 상대는 어렵다.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도 간혹 있지만, 나는 그런 아이를 봐도 그 아이의 내면이 보인다. 화가 나도 대부분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날 뿐, 그 아이 자체가 밉거나 하지 않는다.



사회적기업 분야에서 일하면서 청소년을 많이 상대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청소년은 어려웠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던 20대 초반에는 더욱 그랬다. 현재 내가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존재 자체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달리, 청소년은 그들이 하는 행동에 따라서 그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계속 변화했다. 그들이 거친 말을 하면 밉고, 힘든 모습을 보면 짠하고...


'아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이래도 되나?'싶어 가끔은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후방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청소년 아이들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완벽히 깨달았다. 내가 받은 은사는, 청소년을 향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를 향한 것이었음을 말이다.


사회적기업 활동을 같이 했던 대표 언니는 청소년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모든 청소년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언니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내가 중간에 직장을 옮기게 만든 이슈 가운데에서도 그곳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나왔었다.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당장 그만뒀을 것..)



이 일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이 바뀌기까지 했다면 이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는 원래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엄마가 되어 내 아이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를 낳기로 생각을 바꾸기까지 필자의 치열한 내적 고뇌의 흔적이 궁금하시다면 클릭)








또한, 아이들과 이것저것 하는 미술활동들이 너무 즐겁다.


아동미술 특성상 정말 다양한 미술활동을 하는데, 나 또한 어렸을 때나 해봤던 것을 다시 하다 보니 그동안 거친 세상에 피폐해져 있던 내 뇌가 다시 파릇파릇 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동미술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 나이 먹고 누가 지점토로 쿠키를 만들어 반짝이풀을 바르고, 크레파스로 사포지에 눈사람을 그려보겠는가.


입시미술을 시작으로 이런 창의력 넘치는 미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는데, 아이들이 할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같이 하다 보니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창의력도 조금씩 살아나는 기분이다.


'나도 분명 이런 걸 즐거워하던 때가 있었지'하는 마음에 어릴 적이 생각나기도 하면서, '이 아이들은 그 시절을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어딘가 애틋한 기분이 든다.


언젠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때에 지금 이 경험들이 내게 큰 자산이 될 거라 확신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직장인의 삶을 살면서 알게된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 마지막 세 번째는, '조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도 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정해진 길로 걸어온 경우보다 정해지지 않은 길로 걸어온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왜 나는 앞으로의 인생은 특정한 길을 정해두고 그 길에서 벗어나면 매우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했을까.


정해지지 않은 길을 걸어왔던 시간들이 힘들었어서 그랬을까? 분명 그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길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행복할 줄도 몰랐겠지. 어쩌면 다시 이전의 직업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10년간 쉬지 않고 달려오던 길에서 벗어나고 나니, 내가 진정으로 되고 싶었던 건 OO작가가 아니라 그냥 '작가' 자체였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더 좋은 길을 찾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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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의 말처럼,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삶이란 불확실하고, 그렇기에 찬란하다는 것을, 내가 좀 더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생을 너무 딱딱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유연하게, 나의 오늘날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앞으로의 인생도 유영하듯 살아가야지.







이렇게 행복한 날들을 살게 될 줄 몰랐지?

앞으로도 수많은 행복한 날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1년 전의 나야, 버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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