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삶

만족스럽다면 너무 MZ스러운가요

by 여유
시간당 15만 원 받고 일해보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인생 처음으로 '취업'이란 걸 했다. 미술학원 유초등부 선생님으로.


대학도 미대를 나왔고, 그동안 해온 것도 미술뿐이라 다른 곳에 취업하기엔 마땅한 스펙이 없었다. 그렇지만 취준을 할 생각도 없었다. 언젠간 나는 다시 이전 직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조건 속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일자리가 미술학원이었다.


같은 미술이어도 아동미술에서는 내가 그동안 해왔던 분야의 그림은 가르치지 않는다. 때문에 일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애초에 내가 해왔던 그림 분야의 일자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지금까지 프리랜서로만 일해왔던 내가 과연 정해진 출퇴근이 있는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됐었다.


역시나 예상치도 못한 여러 사건 사고들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삶에 완벽히 적응하여 8개월째 무사히 잘 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으로 직장인이 되어 일을 하면서 나는 나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생각보다 나는 직장인의 삶이 잘 맞는다'라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근무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1시까지 출근하여 6시까지 일한다. 학원 특성상 아이들이 하교 전에는 수업을 할 수 없고, 특히 내가 맡은 연령의 아이들(유초등부)은 저녁이 되기 전에는 다 집에 돌아가기에, 이 연령층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학원 선생님들은 나와 비슷한 시간에만 근무를 한다.


사실 이 근무시간은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한 번도 직장인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나에게 소위 '9to6'로 일하는 일반 기업 근무는 좀 힘들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앞서 말했듯 나는 언젠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것이라 다짐했었기에


출근 전 오전 시간이나 퇴근 후 저녁시간을 활용하여 나의 본업 일도 병행할 수 있는 이 직업은 나에게 꼭 맞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뭐든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이 직업은 일하는 시간이 짧은 대신에, 그만큼 받는 월급도 적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감안하고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을 정도로 지금의 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기 때문이다.



불규칙한 식사는 기본에 언제 바뀐지 기억도 안 나는 밤낮,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허리와 목의 통증과 하루에 단 한마디도 안 하다 보니 떨어져 버린 사회성, 허약해진 신체 건강에 비례하여 나빠지는 정신건강...


이 모든 것이 이 일을 하고 나서 사라졌다.



물론 모든 프리랜서가 다 과거의 나와 같은 상태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내가 아는 분은 같은 프리랜서임에도 출퇴근 시간을 정해 그 시간만 딱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이나 취미활동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동료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 분이 존경스럽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건,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프리랜서 생활 초반, 나는 목표한 생활 패턴을 지키지 못하는 나를 심하게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디선가,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기에 학교와 기업에 정해진 등교/출근 시간이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후에야


"아!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어 자책은 덜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책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불규칙한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어찌 됐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기에, 프리랜서 생활을 하던 중의 나는 말 그대로 '저질체력'이었다.



하지만 정해진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의 삶을 사는 지금, 여느 직장인들처럼 낮에는 '출근하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고 근무 중에는 '퇴근하고 싶다'라는 말을 되뇌긴 하지만, 어찌 됐건 반강제적으로라도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실제로 나의 몸도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진 것이 눈에 보인다.








게다가 신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함께 좋아졌다.


언제나 일이 끊길까 봐 불안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전부 책임져야만 했던, 남들에게 끊임없이 나를 노출시켜야 했던 프리랜서 시절과는 달리


어찌 됐건 출근할 곳이 있고, 한 달을 버티면 월급이 나오고, 내가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내가 딱히 드러나지 않는 지금의 생활은 내 마음에 인생 최고의 안정감을 주고 있다.


더군다나 본업을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돈이 부족하면 본업을 통해 얼마든지 더 벌 수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종류의 안정감을 더해준다.


정리하자면, 나는 '근무 시간이 길지 않아 본업과 병행이 가능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장을 다니니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건강해진 것'을 통해 내가 프리랜서보다 직장인의 삶이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로 알게된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은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적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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