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살고 싶은 세상이 되어 줘야지
사람마다 계절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고 하던데, 나는 매미가 우는 것을 기준으로 여름이 왔음을 체감하는 편이다.
어느덧 한여름. 한 해의 절반이 완벽하게 지나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고자 그동안 썼던 블로그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글은 당연히 정신과 진료와 관련된 글이었다. 나의 마음 회복에 도움이 됐던 이 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는지, 지금까지도 굳건하게 내 블로그 조회수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만에 위 글을 읽으니 '나 정말 많이 치료됐구나, 조금만 더 있으면 이제 완벽히 나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힘들었을 때 내가 쓴 글들이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이 느껴졌다. 이건 내가 17살 때 첫 우울증을 겪고, 다 나은 뒤에도 느꼈던 느낌이다. (그때도 이전에 쓴 일기들을 보면 내가 쓴 일기가 아닌 것 같았다.)
작년의 나는 내가 이런 오늘을 보내고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내가 걷던 터널은 너무 길고 어두워서, 앞으로 나는 영영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너무 힘들어서 자주 잊곤 했지만, 분명 이 터널의 끝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이상하리만큼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아마 그것은 짧은 인생이지만 나름의 터널을 여러 번 지나왔던 내가 나도 모르게 체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터널을 지난 후엔 그전과 비교할 수 없는 멋진 곳에 도착했었기에,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든 와중에도 터널 끝에 분명히 존재할 그곳을 의지해 한발 한발 걸어갔던 것 같다.
터널을 지나, 그동안과 마찬가지로 전과 비교할 수없이 멋진 곳에 도달해 있는 지금의 나는 너무나 행복하면서 동시에 이 행복이 끝날까 봐 걱정하기도 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언제나 터널은 갑작스레 시작되기에, 언제 또다시 터널이 시작될지, 그리고 그 터널은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지 몰라 순간적으로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그동안은 아무것도 모르고 터널을 지나왔다면, 이번엔 터널의 끝이 있음을 알고 그곳을 기대하며 지나왔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터널의 끝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그런 의미에서, 터널을 지니고 있는 과거의 (또는 미래의) '나'에게, 마치 '나'가 나의 소중한 친구라 생각하고, 지금 터널 밖에 있는 내가 해주고 싶은 말과 행동들을 한번 적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내가 터널을 지날 때 겪는 대표적인 증상들은 위 게시글에서 적은 것처럼 불면증, 식욕부진, 우울증상, 자살사고이다. 내가 가진 나의 연약한 부분이다.
왜 나는 이런 연약함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불평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될 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나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런 연약함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자랑스러운 점도 많이 가진 '나'는, 하나님이 주신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이니 말이다.
- 불면증을 겪는 너에게는
꼭 안아주고, 옆에서 함께 잠을 자주고 싶어. 곁에 계속 있어줄 거야. 자기 전에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도란 도란 얘기하기도 하고, 갑자기 떠오른 시답잖은 얘기들을 하기도 하면서. 뒤척거려도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너를 알기에, 그렇게 그냥 네 곁에 있어줄게.
- 식욕부진을 겪는 너에게는
밥을 같이 먹어줄 거야. 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먹기 싫어하다가도 누군가랑 함께라면 뭐라도 맛있게 먹으니까, 매일 저녁 퇴근하면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서 같이 먹어줄 거야. 아주 간단한 음식이라도 좋아. 반찬이 하나라도 괜찮아. 맛있게 먹는 네 모습이 보고 싶어.
- 우울증상을 겪는 너에게는
네 곁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싶어. 사소한 것 하나하나 칭찬해주고, 응원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고 싶어. 너의 작고 사소한 부분도 신경써주고 싶어. 네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니까. 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너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 무엇도 너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고 얘기해주고 싶어. 혹여나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괜찮다고,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내가 도와줄 거라고 얘기해 줄 거야. 평생이 걸린다고 해도 상관없어. 세상 모든 사람이 너에게 등을 돌려도 나는 절대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영원히 너의 편이야.
- 자살사고를 하는 너에게는
살아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얘기해 줄 거야. 그리고 함께 해나갈래. 오늘 저녁에 같이 아무 영화나 한편 보러 가자.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공원에 가서 예쁜 호수를 보자. 봄이 오면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같이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네가 좋아하는 새들을 구경하자. 여름이 오면 강릉에 가서 맑은 바다를 보며 책을 읽자. 가을에는 같이 단풍이 예쁜 산에 등산을 가서 정상에 올라보자. 겨울에는 함께 동백꽃을 보러 가서 인생 사진을 찍자. 그러니 죽지 마. 살아. 살아서 나랑 이 모든 거 다 같이 해. 나는 아직 너랑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단 말이야. 제발 나를 버리지 마.
녹기 위해 태어나는 얼음은 없다. 마찬가지로 죽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얼음은 차갑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 만약 무언가를 차갑게 하지도 않았는데 얼음이 녹았다면, 그것은 누군가 얼음을 녹인 것이다. 얼음을 죽인 것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은 저마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사랑 해본 적 없이 사람이 죽었다면, 그것은 누군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이제 누군가 나를 죽이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 나에게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의 내가, 작년의 나에게 그리고 훗날 터널을 지나는 나에게 살고 싶은 미래가 되어준 것처럼 말이다.
살아야지,
나는 살아 너에게
네가 살고 싶은
세상이 되어줘야지
험난한 세상 속
너는 언제까지나
나의 영원한
<교토> 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