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몇 번 심리 상담도 받아봤었는데 효과는 좋았지만 가격 부담이 컸다. 정신과는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안 든다는 얘기에 정신과에 가보기로 했었다.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초진은 한 달 이상 대기가 필요했다. 진료라도 받아보고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한 달을 꾸역꾸역 버텨냈다.
그리고 드디어 진료 날이 됐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상담을 통해 약을 처방받았다. 내 병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하시는 말씀으로 유추한 바로는 우울증과 범불안장애였다.
그 당시 나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이제는 거의 다 사라진 증상들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 심각한 불면증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좀 그런 경향이 있었긴 했지만(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도 불면증이었다) 이때는 잠에 드는 데에만 1~2시간 이상이 소요됐고, 겨우 잠들어도 3시간 정도마다 깼었다. 이정도 불면증은 난생 처음이었다. 당연히 하루 종일 피곤한데, 그럼에도 잠에 들지 못했다.
- 식욕부진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무언가 먹을 생각을 하면 토할 것 같이 울렁거렸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면 몸에 힘이 없어서, 일을 하기 위해 살기 위해 억지로 최소한의 양만 겨우 먹었다. 원래도 저체중에 가까운 편인데, 이때는 거의 몸무게가 40kg에 가까워질 정도로 체중 감소가 심했다.
- 우울 증상
무의욕, 무기력이 심했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사라졌다. 전부 귀찮고 버거울 뿐이었다. 자책, 자기혐오, 부정적 사고가 끝도 없이 지속됐다. 일부러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생성된다. (ex. '밥 먹는 게 너무 힘들다>살아있으면 밥을 계속 먹어야 하는데>너무 버거워>밥 하나 제대로 못 먹는 나는 쓰레기야>왜 살지?' 이 모든 생각이 1초 만에 진행)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왔다. 의외로 사회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때 나는 새로운 직장에 취업해서 적응 중이었다. 잘 웃고, 일 처리도 잘했었다.
- 자살사고(생각)
하지만 문제는 혼자 있을 때 생긴다. 퇴근하는 길 운전을 하면서 가는데 또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이대로 내가 핸들을 꺾으면 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고, 사고 현장 뒤처리를 해주시는 분들한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가장 좋은 자살 방법은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서 목을 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질식사는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이 와중에 아픈 건 싫다고 느낀 나 자신이 또다시 싫어졌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실제로 정신과는 초진에서만 비용이 꽤 들고 이후부터는 많이 들지 않았다.
나는 총 두 곳의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는데 둘 다 초진 비용은 약 5-10만 원 사이가 나왔다. 초진에서는 각종 검사들이 진행되고, 상담도 40분 정도로 길게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금액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재진부터는 1회에 약 값 포함 1~2만 원 정도 나온다. 상담이 길어지면 금액도 조금 올라가고, 상담이 짧아지면 금액도 조금 낮아진다. 약 받는 텀이 짧으면 약 개수도 적기 때문에 금액이 좀 더 낮아지고, 약 받는 텀이 길면 약 개수도 늘어나니 금액이 조금 올라간다.
심리 상담이 1회에 10만 원 정도 드는 것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다만 정신과는 내과, 이비인후과 같은 '병원'이다. 정신적으로 생긴 증상에 약 처방을 해주는 곳이라는 이야기이다. 상담 센터처럼 나도 모르는 나의 무의식,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같은 것을 나눌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거의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초진 제외)
그래서 나는 정신적인 문제가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신체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정신과에 최대한 빨리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 전에는 상담센터를 추천.)
(물론 둘 다 가면 제일 좋지만 언제나 문제는 돈..) (나 같은 경우는 심각한 불면증과 식욕부진, 그로 인한 체중 감소 등이 대표적인 신체증상이었다. 실제로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던 증상들이었다.) 상담 센터는 좀 더 근본적인 내면의 문제를 치유해 주는 느낌이고, 정신과는 지금 당장 괴로운 신체증상을 치료해 주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원체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독감에 걸렸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비인후과에 가서 급한 열을 잡는 것이 우선이다. 열을 잡지 않으면 뇌 손상 등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독감이 어느 정도 나으면 그때부턴 몸에 좋은 음식을 먹거나, 운동 등을 통해 면역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아무리 면역력이 낮아서 독감에 걸렸다고 해도, 당장 열이 펄펄 끓고 있는데 몸에 좋은 음식을 먹거나 운동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정신적인 문제로 신체에 이상이 생기면 정신과 약을 통해 신체 증상부터 해결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엔 대표적으로 항불안제를 먹고 불면증이 사라졌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잠이 들지 못할 때, 항불안제를 먹으면 천천히 생각이 사라져서 잠에 들 수 있었다. 우선 어떻게든 잠을 자니까 좀 살 것 같았다. 잠을 잘 자니 심리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항불안제(벤조디아제핀 계열)은 오래 먹는 게 좋지 않다고 해서 걱정도 했는데, 약 한 달 정도는 매일 먹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증상이 많이 호전돼서 요즘엔 일주일에 한 번도 먹지 않는 날이 많다.
만약 내가 이 때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같은 우울의 터널을 더 오래, 더 고통스럽게 지나왔을 것이다. 약 덕분에 나는 그래도 덜 고통스럽게 그 터널을 지나올 수 있었다.
다음 게시글에서는 나에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거쳤던 약들에 대한 리뷰(?)를 적어보려 한다. 지금은 잘 맞는 약을 찾아서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앞으로 더 나아지면 이제 약도 줄이고, 병원도 그만 다닐 것이다.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을 덜 가졌으면 좋겠다. 위가 안 좋으면 내과에 가듯, 정신이 안 좋으면 정신과에 가는 것이다. 어차피 초진은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하니까 우선 예약하고 생각해봐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다 한 달 안에 괜찮아지면 예약 취소하면 되는 거고, 한 달 뒤에도 힘들면 진료받으면 된다.
원래 무슨 병이든지 증상이 한 달이상 지속된다면 진료를 받아보는 게 맞다. 특히 정신적인 문제는 더 그렇다. 일시적인 기분 변화가 아니라는 증거이니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정신과에서 초진 예약을 한 달 이상으로 잡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