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로 했다.

물론 결혼 후에, 내 배우자도 아이를 원한다면 말이다.

by 여유
또한 나와 배우자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상태여야겠지.


중학생 때부터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 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야 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고, 세상은 더욱 악해져만 가는데, 그런 삶을 살도록 하는 건 아이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차마 부모님한테 묻지 못했던

"왜 나를 낳았어요?"

라는 질문을 내가 낳은 아이에게 듣게 된다면 나는 해줄 수 있을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게, 미안해."

이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아이는 온전히 부모의 결정만으로 세상에 '낳음'당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키우고 싶었다. 나 자신보다 소중한 무언가가 생기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입양을 생각했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탄생시켰다는 죄책감은 갖지 않을 수 있으니까. 대신 이미 세상에 태어나버린, 그러나 가정을 갖지 못한 아이에게 가정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을 가진 나랑 결혼하고 싶어 할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 걱정을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는 나중에 그 때가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지금부터 걱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도 나랑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 어떡해!'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누가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걱정은 다른 걱정들에게 우선순위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20대 후반이 되었고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생각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바로 가정의 회복이었다.








내가 가족들과 잠시 모든 연락을 끊었던 작년 여름, 엄마와 아빠는 부부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혼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이 부부는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의 부모지만 참으로 대단하다. 상대방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혼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단다. 그 계기는 내가 기억하지 못할 적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아무튼 그때부터 우리 엄마 아빠는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상대방의 상처를 알아보려 하지 않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일부러 계속해왔다고 한다.


물론 그러는 본인 마음이 편했을 리 없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도 해치는 일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이미 그렇게 살지 않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로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이 정도 연령이 부부 상담을 하러 오면, 이미 오랜 세월 굳어진 생각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특히나 자식들도 이제 다 커서 성인이 된 이후라면 황혼이혼이나 졸혼을 권유한다고 한다. 그 정도로 우리 부모님은 소위 말하는 '노답' 부부 케이스였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히도, 참으로 감사하게도 우리 부모님은 변화하는 것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부모님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 가족 일부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치료를 받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혹시 나의 가족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누가 받고 있는지는 적지 않으려 한다. 우선 나는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약 4달 동안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내가 복용하는 약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신경안정제)이다. 항우울제는 매일, 항불안제는 불안 시에만 먹고 있다.


최근에는 안 먹은지 꽤 됐지만, 치료 초기에는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안정제를 먹었다. 항우울제와 달리 안정제는 내성이 생긴다고 하여 매일 먹지 말아야지 했지만,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 애초에 정신과 진료를 결심하게 된 계기도 심각한 불면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결국 내성이 생긴 건지 기존에 먹던 안정제가 들지 않아서, 중간에 약을 한번 바꿨다.


그러다 가족들과 다시 연락을 시작하고, 부부 상담을 통해 변화 된(변화 중인) 부모님을 만났다. 아주 조금씩,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나에게 불안한 시간이 아니게 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부모님이 같이 있으면 싸울까 봐 불안해서 항상 눈치를 봤었다. 엄마와 아빠가 양쪽에서 하나씩 잡고 있는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다. 둘 중 하나라도 이 줄을 놓으면 나는 끝장이라는 생각에, 아무도 이 줄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필사적으로 행동했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괴로웠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그 와중에도 바르게 잘 자랐다. 이렇게 잘 사는 걸 보면 정말 용하다. 그 불안한 환경 속에서 27살이 될 때까지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 불안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독립을 하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아 연락까지 끊었더니, 이제는 날 붙잡는 것들이 없어서 삶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랬었다.








부부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부모님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나의 부모님은 이제 내가 사이에서 광대짓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계실 거라는 믿음이 생기자 놀랍게도 나의 불안이 점차 사라져갔다.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하는 것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아졌다. 엄마나 아빠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졌다.


물론 약의 효과도 있을 것이다. 약을 하루라도 거르면 바로 감정이나 욕구 등의 부정적인 변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항우울제의 반감기는 약 하루이다.)


나의 불안에서 이어지는 우울 증세는 가정 문제를 제외한 일상에서도 심각한 수준이었기에, 일상의 불안과 우울을 잠재우는 데에 약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처음 몇 주는 내게 맞는 약과 용량을 찾느라 여러 자잘한 부작용들도 겪었지만, 맞는 약과 용량을 찾은 지금은 더 이상 이전만큼 사소한 것에 과하게 침체되지 않고, 좀 더 가볍고 긍정적으로, 기분 좋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이 건강하게 느껴지는 정신 상태가 마음에 들어서 당분간은 계속 약을 먹을 예정이다.


(여기서 기분이 좋다는 것은 술을 먹거나 승리를 했을 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 아니다. -100이었는데 0이 된, 다쳤던 부위가 다 나아서 더 이상 아프지 않아 좋은 느낌 같이 보통 사람들은 느끼고 있지만 나는 느끼지 못했던, 지극히 평범한 감정이다.)




그래서 이 얘기를 왜 적었냐면, 이것이 내가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을 바꾸게 해준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정이 회복되고, 사고 흐름이 좀 더 단순해지자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이 이렇게 바뀌었다.


'어차피 태어날 영혼이었겠지~!'








자신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예수님 말고는 없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에 던져졌다.'


어찌 보면 (기독교적 명령을 제외한다면) 탄생의 이유를 찾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탄생에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 그냥 태어날 운명이었다.


내가 21세기에, 한국에서, 우리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라는 영혼은 이 지구 어딘가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근거는 없다. 그냥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아마 그곳은 지금보다 좋지 못한 환경이었을 확률이 높다. 현재 지구상에는 이 정도의 생활수준을 누리지 못하는 인구의 비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살아갈 이유'는 다르다. 그것은 자신이 살면서 찾아가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살아가는 이유는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태어날 영혼이었다는 이유로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나의 논리대로라면 부모는 아이의 탄생에는 책임이 없지만(어차피 어딘가에서 태어날 영혼이었으니), 아이의 심신을 건강하게 키워야 하는 데에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인생이 괴로울 때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더 이상 안 하기로 했다. 나는 어차피 태어날 영혼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가 가기로 했다.


조금 덜 강박적으로, 조금 덜 욕심부리며, 누가 정한 건지 모를 이상한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그냥 내가 만족하면 되는 그런 삶을 살려고 한다.


이해받고 이해해주며, 응원받고 응원해주며, 위로받고 위로해주며, 용서받고 용서해주며,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려고 한다.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자라서 나에게

"왜 나를 낳았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얘기해 줄 것이다.

"사랑하려고 낳았지!"


만약 그 아이가 더 자라 사춘기가 되어

"왜 나를 태어나게 했어요?"라고 묻는다면


그때는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


"너는 원래 그날 이 세상 어딘가에서든 태어날 영혼이었어~"

"어차피 살게된 세상,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엄마아빠랑 같이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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