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들면 힘든 거야~!

자기 검열 말고 자기 객관화 하기

by 여유
내가 견딜 수 있으면 괜찮은 거고,
내가 못 견디겠으면 힘든 것이지.


매달 말일이 다가오면 통장을 정리한다. 한 달 동안 얼마를 벌었는지 더해서 십일조를 계산하고, 갚아야 할 돈을 송금한다.

그래서 매달 말일이 되면 조금 우울해진다. 이 돈은 내가 빌린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이름으로 되어있으니까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매달 빠져나가는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이걸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 좀 막막하게 느껴진다.

왜 내가 이걸 갚아나가야 하느냐고, 나한테 한 달에 조금씩이라도 돈을 보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나의 힘듦을 알고 있기는 하냐고 묻고 싶다가도, 당장 당신들 먹고살기에도 바쁜 모습들을 보면 턱 끝까지 차올랐던 이 말들을 차마 내뱉을 수 없어 다시 삼키게 된다.

결국 '그래, 나를 키워주신 값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평생 받은 용돈을 갚는 거라고 생각하자'라고 합리화를 해보지만, 부모의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여 생각하게 되는 나 자신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이 상황이 끔찍이도 싫어진다.​

왜 이 나이에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걸까, 생각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보다 풍족하게 사는 또래도 많지만 나보다 더 어렵게 사는 또래도 많으니까. 그들에 비하면 나는 복에 겨운 것이 맞다.








정신과 의사들이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는

"이 정도 힘든 걸로 병원에 와도 되나요?"
"다 이 정도로는 힘들면서 사는 게 아닌가요?"

라고 한다.


그러자 그 영상에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본인이 힘들면 오는 거예요."
"사람마다 잘 견디는 상황과 못 견디는 상황은 다르잖아요."​​








그렇지. 내가 힘들면 힘든 거지. 왜 나는 그동안 계속 주변과 비교하여 나의 힘듦을 정의하려 했을까?

같은 30도여도 더위를 잘 타는 사람은 힘들 수 있고,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은 딱 좋다고 느낄 수 있는데.

30도 더위에 힘들어하는 더위 잘 타는 사람에게 '너는 왜 별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힘들어하니?'라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는 꽤 잘 견딜 수도 있고, 누군가는 많이 힘들어할 수도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똑같은 사람이 예전에는 견딜 수 있던 상황을 지금은 못 견딜 수도 있다.

몸이 건강할 땐 1km 달리기 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열이 나고 몸살이 났을 때에는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일 것처럼 말이다.

정신도, 마음도 마찬가지다. 주변과 비교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힘든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의 과거와 비교해서 내가 예전엔 견딜 수 있던 것들을 지금은 견디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타인을 제외하고 오로지 나 자신만 두고 봤을 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았을 때, 나는 지금 확실히 많이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회복을 해야겠지. 이렇게 힘든 상태로 사는 건 나 자신에게도 소중한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그럼 어떻게 회복을 할까. 우선 나는 세상의 오지랖에서 비롯된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 나이 됐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요즘 이런 거 안 하면 뒤처지는 거야'
'한 달에 얼마는 벌어야지'
'여자는 이래야 돼'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이래야 돼(교회 기준)'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아 내가 살아있어야 저 요구들을 들어주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것이다.

염려에 덧붙이는 말.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이래야 돼를 벗어나겠다는 말은 '자매 이제 주일학교 교사해야지~', '자매는 교회에서 치마 입어야 가장 예쁘지~'류의 오지랖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일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


내가 말하는 '하고 싶은 대로 산다'라는 것은 이기적으로 남에게 민폐를 끼치며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자기 검열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기 검열과 자기 객관화는 다르다.

나는 자기 검열이 심한 편이었다. 영상에서 얘기하듯, 나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캐내려고 나 자신을 늘 돌아봤다. 그리고 당연히, 언제나 모든 순간 나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 결과는 뻔하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야단만 치고, 해결은 안 되고, 결국은 나 자신을 사랑해 주지 못해 자존감도 자신감도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건 여담인데, 이런 검열 습관은 우리 집안에서 동생이 가장 심했다. 동생은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들의 행동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교회에 다녀오면, 집에 와서 "언니, 그때 ~한 행동은 다음부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처음엔 "아 그래? 다음부터 안 그럴게"라고 했지만, 그게 너무 사소한 것까지 지적받으니까 나중엔 정말 미쳐버리겠는 것이다! 내 모든 순간,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감시받는 것 같았고 오히려 그렇게 되니 더더욱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었다. 그러면 지적이 더 심해지고, 악순환이었다.

참다못한 내가 더 이상 너무 사소한 것까지 지적하지 말라고, 내가 민폐 끼쳐봐야 얼마나 끼치겠냐고, 만에 하나 그래서 한 소리 듣게 되면 내가 듣는 거니까 좀 놔두라고 얘기했을 때, 동생은 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안 들었으면 좋겠기에 그런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서운해했다. (이렇게 적다 보니 가스라이팅이 따로 없다^^;;) ​

하지만 나는 내 동생이 악의를 가지고 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사랑하는 내 동생은 나보다 훨씬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타인의 불편과 필요를 굉장히 빨리 캐치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나서서 타인을 배려하는 편이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을 배려를 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을 굉장히 싫어하기도 한다.


그렇게 동생의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는 마음은 본인을 끊임없이 검열하는 습관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나한테도 그것을 요구했던 것 같다. ​​








그렇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런 자기 검열은 정말, 정말 자신에게 하등 도움이 될 것 없는 독약 같은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건 어디까지나 동생의 기준이다. 동생도 동생 자신의 기준을 다 못 지킬 텐데, 내가 그걸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솔직히, 민폐 0의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나. 다 서로 어느 정도 민폐 끼치고, 또 그만큼 타인의 민폐를 이해해 주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건강하게 민폐 끼치며 살라는 강연도 있는데.

사실 내 동생 같은 사람만 이 세상에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서로 배려하는 세상, 얼마나 이상적인 세상인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이상의 일도 저지를 수 있는 유사 인간들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은 곧 누군가가 나에게 민폐를 끼쳤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이렇게 민폐 안 끼치려고 노력하는데, 너는 감히 나한테 민폐를 끼쳐!?'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너무너무 괴로운 삶이다.

(내 동생은 이 습관으로 인해 얼마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던 걸까. 그래도 내가 그렇게 얘기한 이후에는 더 이상 안 그러긴 했지만, 이 글을 쓰다 보니 이것에 대한 심각성이 그라데이션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다음에 동생을 만나면 이 얘기를 꼭 해줘야겠다.)








아무튼 간에,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지만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나는 이제 자기 검열 대신 자기 객관화를 할 것이다. 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그것에서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있었던 일이다. 강의를 앞두고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데 도착시간도 촉박하여 마음이 더 긴장되고 불안했다.

이때 자기 검열은 '어제 그러니까 한 번 더 강의교안을 봤으면 좋았잖아. 발표도 더 철저하게 연습했어야지. 아까 더 일찍 나왔어야지. 평상시에 네가 이 분야에 대하서 공부도 더 많이 했어야지.' 이런 것들이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동시에,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다. 즉, 자기 검열은 나의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 밖에 도움이 안 된다.

반대로 자기 객관화는 '나는 지금 강의를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구나.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데 강의한다고 무시당할까 봐 두렵구나. 늦을까 봐 불안하구나. 내가 오늘 빨리 나오지 못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이미 시간은 흘렀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이런 것들이다.







자기 객관화를 하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완벽하게 모른다는 생각은 내 기준이야.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전문가야. 그러니 나에게 강의를 맡긴 거 아니겠어? 혹시나 수강생 중에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내 수업 내용을 지적을 받는다면 지적해 줘서 고맙다고 하지 뭐. 덕분에 나는 내 수업 내용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된 거잖아?'

'비가 오는데 더 일찍 나오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맞아. 그렇다면 이 잘못에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이지. 늦게 될 시간을 말씀드리고, 늦어서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사과드리자. 5분밖에 안 늦어서 얼마나 다행이니. 무슨 죽을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너무 과한 죄책감은 갖지 말자. 그리고 다음에는 꼭 빨리 도착해서 이미지를 쇄신하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자기 자신을 지적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현재 자신의 문제를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자기 객관화는 다른 말로 하면 자기 긍정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이라는 게 좋게 여긴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이 들고, 이런 감정이 든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 나는 그동안 나에게 그것을 너무나 못해준 것 같다.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 검열에서 비롯된 자기혐오가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바뀔 순 없겠지만, 노력할 것이다. 어떤 감정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들어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볼 것이다.







나는 오늘 가족의 빚을 대신 갚는 것에 대해 원망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가족들을 사랑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이 상황이 너무 힘들고, 그 힘듦을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부모의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나에게 이 상황이 충분히 벅차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을 인정한다. 타인의 기준과 상관없이, 나에겐 이 상황이 참 힘들다!


그렇다면 나의 힘든 마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더 많은 일을 해서 돈을 더 버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지만, 현재 내 심신이 그걸 감당할 체력이 되지 않는다. 부모님께 얘기를 하는 것도 괜히 서로 감정만 건드려지고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최선은 지금처럼 조금씩, 그냥 계속 그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러는 건 도움이 안 된다. 그냥, 빨리 그 우울에서 빠져나오자. 휙 빠르게 돈 갚고, 재밌는 거 해서 잊어버리자.


지금은 답이 안 나오니 다음 달에 다시 생각하지 뭐. 그때는 답이 나올 수도 있잖아? 안 나오면 또 다음 달에 하지 뭐. 얼마나 다행이야. 가능한 만큼 자유롭게 갚을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도를 하자. '빚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하나님께 솔직한 내 마음을 기도하자. '돈이 갑자기 많이 생겨서, 이 정도 빚이야 아무렇지 않게 되어 다 갚아버리고, 더 이상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어린아이 같은 기도도 좋다. 안될 것이 뭐가 있는가? 하나님은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자기 검열이 아닌 자기객관화하기.

내 마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기.

내 마음을 솔직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인간은 원래 별로인 것처럼,
나 자신도 원래 별로인 게 당연한 거니까
이상적이지 않은 내 모습에 스트레스받지 말도록 하자.

별로일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래도 ____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나 자신을 칭찬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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