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
그래서 나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
가을이 왔다. 하늘은 높아졌고, 매미는 더 이상 울지 않으며, 해가 진 후의 공기는 제법 쌀쌀하다.
가을처럼 완벽한 계절이 있을까. 사람들이 가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겨울이 질투하는 바람에 이 계절은 언제나 그렇게 스치듯 지나가버리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가을을 꽤나 미워했다.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것을 잘 견디는 나로서는 다음 계절이 여름인 봄이 좋았고, 해가 길고 옷차림이 가벼운 여름이 좋았고, 조금만 견디면 봄이 올 겨울이 좋았다. 하지만 가을은 다가올 겨울을 예고하며 올해도 이제 다 갔다고 속삭이는, 약간은 잔인한 그런 계절처럼 느껴졌다.
나는 가을에 태어났다. 9월 22일. 너무나 완벽하고,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바로 그 계절에 말이다.
알바 면접에 다녀왔다. 100% 프리랜서의 삶을 지속할 힘이 없어서 그 힘을 회복할 때까지 먹고살기 위한 일자리를 구하고자 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걱정하던 임금 협상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건물을 나오자 초가을의 햇빛이 따갑지 않게 온 세상에 펼쳐져 있었다.
며칠 동안 비가 왔는데, 오늘은 이토록 화창한 것이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집까지 버스로 12분 밖에 안 걸리지만 모처럼 날씨도 좋고 여유로운 마음에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학원에서 집까지의 도보 거리는 1시간. 이것저것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싶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나는 마음이 힘들 때면 하염없이 걷곤 한다. 아마 작년 이맘때쯤에도 하염없이 걸은 날이 있었다. 도착해도 좋고 도착하지 못해도 그만인 목적지를 하나 정해두고, 계속 걸으면서 하늘 한번 보고, 꽃 한번 보고, 풀 한번 보고, 그러면서 걷는 것이다.
그러면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이 많이 진정되곤 했다. 해결된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렇게 산책의 묘미를 깨달은 후,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면 동네 한 바퀴를 돌곤 했다.
오늘은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냥 걷고 싶었다. 그래서 걸었다.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내 안에 감정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장 크게 느껴졌던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 것,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것,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는 것, 오늘 일자리를 구한 것, 임금협상을 무사히 마친 것, 산책로가 잘 갖춰진 한국에 살고 있는 것...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게 다가와 마음을 울렁였다.
지금까지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의 상태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일상의 사소한 것에 감사해 보는 건 어떠냐고 조심스레 조언하곤 했다. 나를 생각해주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러나 동시에 말 못 할 답답함을 느꼈다. 나는 사실 감사하지 않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미 모든 것에 너무 감사하고 만족해서 삶에 미련이 없는 쪽에 가까웠다. 여한이 없다고나 할까.
조언해 준 사람들의 의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었다. 나는 뭐가 문제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문제를 알았다. 나의 문제는 감사를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감사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감사를 하면 파생되는 수많은 감정이 있다. 벅참이라든지, 감동이라든지, 의욕이라든지,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그것들을 느끼지 못했다. 일상의 기쁨이나 행복,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별로 신나지 않았고, 맛없는 것을 먹어도 별로 화나지 않았다.
사실은 '맛'조차도 잘 느끼지 못했다. 같이 먹는 사람들은 너무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뭐가 맛있는지 잘 모르겠는 경우나, 예전엔 정말 맛있어했던 음식인데 다시 먹으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꽤 자주 있었다.
느껴지는 감정들이 색으로 보이는 세상이라면, 내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다.
사실 지난 글에서도 적었듯이 나에게 있는 심리적 문제는 번아웃 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 그중에 하나는 우울증이다. (나머지 하나는 트라우마이다. 사실 나에게 발생한 어떤 증상이 정확히 어떤 문제에서 파생된 증상인지 완벽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는 무기력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정도, 번아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우울증이 원인이기도 하다.
내 인생 최초의 우울증은 17살 때였다. 이때 걸린 우울증은 대학교 입학 즈음에 완치(?) 되었다가, 독립을 결심하게 된 몇 년 전 재발했다.
사실 우울증이라는 게 그렇다고 한다. 한번 걸리면, 낫는다고 하더라도 평생 한 번도 안 걸려본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우울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라나. 면역력이 좋을 땐 숨어 있다가 좀 무리하면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처럼, 우울증이라는 건 그렇게 평생 다스리며 살아야 할 질병이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우울증이 재발한 후 내 세상에서는 색이 사라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존재하는 색이 회색 밖에 없는, 그런 삭막한 세상에서 살게 됐다.
그런데 오늘, 정말 오랜만에, 내 세상에서 색이 보였다.
평상시에 하던 것과 별다를 것 없는 감사인데, 느껴지는 감정 하나하나가 벅찼다. 벅차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조금 더 살아서 이 감정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졌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참았다. 한낮 2시에, 대로변에서, 셔츠에 슬랙스 차림으로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참 다행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은 못 참겠어서 집 근처 공원에 앉아서 조금 울었다. 평일 낮이다 보니 공원에는 노인분들 밖에 없었다.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아서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만히 앉아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그러니 아무도 못 봤을 것이다. (ㅋㅋ)
사실 뭐 봤다고 해도, 젊은 처자가 뭐 실연이라도 당했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젊은 사람이 무슨 힘든 일이 있길래 대낮부터 혼자 울고 있나, 딱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아무렴 상관없다. 나는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이, 살아있다는 감각이 감격스러워 울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 엄마는 우울증이었다. 내가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좋은 딸이 되지 않으면 나는 엄마가 죽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이것이 이번 기회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나의 마지막 심리적 문제, 트라우마이다.)
그 두려움은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아서, 나를 가족들에게 필요 이상의 의무감과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으로 자라게 만들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엄마에게 듣고 싶은 한 가지 말이 있다. 그 말은 바로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 않을게.' 라는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는 엄마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말. 그 말 한마디만 있으면 나는 조금은 걱정과 부담을 내려놓고 자유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직은 이것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그것을 물어봤을 때 돌아올 대답이 두렵다.
이제 나는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 한다. 잠시 쉬어가는 이 시기 동안 나는 충분히 쉬고, 나를 알아가고,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서 엄마에게 어떠한 대답을 들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튼튼한 마음이 되어 엄마에게 이 질문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어떤 대답을 하던, 건강한 방법으로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목표이다.
내가 우울증에 걸린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이 있다.
그래서 나도 우울증에 걸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제일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말은 바로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 않을게."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