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을 통해 알게 된 무기력과 게으름의 차이점

내가 무기력한 건지, 게으른 건지 궁금하다면

by 여유

나는 인생을 열심히 살고 싶었고, 실제로도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그 정도면 부지런한 거라고 했지만 나 스스로는 나 자신이 언제나 게으르다고 느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놓고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곤 했다. 그것이 좋지 못한 방법이라는 건 알았지만, 게으른 나의 모습은 잘못된 모습이니까, 내가 나에게 쏘는 이 화살은 당연히 맞아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10번의 뒹굴거림이 있었다면, 분명 5번은 실제로 게으름이 맞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5번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될 휴식임에도 불구하고 '휴식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냥 시간을 죽이고 있었거나, 아니면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처음엔 10번 중 1번이었던 무기력은 내가 점점 번아웃에 빠지게 되면서 2번, 4번, 6번... 빈도가 늘어나게 됐다. 아직 내가 번아웃과 무기력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때, 나는 그런 나 자신을 더 채찍질했고, 그것은 나를 너무나 당연하게도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몰고 갔다.








나에게 번아웃이 왔다는 것을 깨달은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남들이라면 직장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평일 낮. 프리랜서인 나는 오늘 일거리가 없어서 해가 중천에 뜨도록 침대에 누워 멍하니 새장 속 뾰롱뾰롱 거리는 새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설거짓거리는 약 3일 치가 쌓여있었고, 입었던 옷가지는 의자에 쌓여있었으며, 바닥은 언제 마지막으로 쓸고 닦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쓰니 너무 많이 더러워 보이는데, 생각보다 보기에 더럽지 않았다. 정말이다. 그래서 더 치워야 할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가장 시급한 집안일은 역시 설거지였다. 비록 혼자 먹고사는 탓에 쌓여있는 그릇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 이상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위험신호가 머릿속을 울렸다. 하지만 그 신호는 나를 움직이지 못했다.

'설거지.. 해야지.. 해야 되는데.. 근데..'

'못하겠어.'








설거지를 '하기 싫다'라는 마음이 아니었다. '못하겠다'라는 마음이었다. 마치 지금 당장 번지점프를 뛰어내려보라고 했을 때 드는 마음과 같았다. 해야 되는 건 아는데, 못하겠는 마음.

물론 할 수야 있겠지. 강제로 시키면 할 수는 있을 거야. 근데, 진짜 못하겠어. 내가 저걸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저 설거지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에 걸려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마음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냥 그거 하기 싫은 마음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나는 무기력에서 벗어나 게으름의 상태로 넘어갔고, 게으름을 무사히 이겨내고 설거지를 해냈기 때문이다.







몇 시간 후, 원래 놀러 오기로 했던 동생이 왔다. 예전에 시켜 먹었던 야채곱창과 막창구이가 맛있었어서, 같이 먹자고 내가 불렀다. 함께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눴다. 잔잔하게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밤이 됐고, 동생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그때,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 채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부엌 싱크대를 보았다. 아무리 배달음식을 먹었다지만, 설거짓거리는 점심때보다 더 많이 늘어나있었다. 그 쌓여있는 설거짓거리를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하기 싫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랐다. 내가, 지금 설거지를 '하기 싫다'라고 했네? 대박, 하기 싫다고 했어! 못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것이 바로 게으름이구나.









무언가를 해낼 만한 충분한 힘과 에너지가 있음에도 그것을 굳이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 그 힘과 에너지를 다른 것을 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이 게으름.


반면 아무런 힘과 에너지가 없어서 지금 내가 해내야 할 어떤 일을 못하는 건 당연지사고 그것 외에 다른 것을 하라고 해도 못하겠는 상태, 그것이 무기력.


오늘 낮에 나는 무기력했고, 지금 나는 게으른 거구나. 무기력은 몰라도 게으름은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게으름을 무기력으로 포장하여 합리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 무기력했을 때 나 자신을 돌봐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설거지를 했다. 묵은 설거지를 모두 해치우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무엇보다, 무기력한 나와 게으른 나를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이제 더 이상 아픈(무기력한) 나를 게으른 나로 착각하고 괴롭히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뻤다.








이후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내가 이것을 지금 '못하겠는' 것인지, '하기 싫은' 것인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있다.


그때 나의 대답이 '못하겠다'라면 나는 당장 그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내가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것을 먼저 하려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던, 좋아하는 사람과 통화를 하던, 긍정적인 내용의 영상을 보던 하는 식으로 내 안에 힘이 생길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돕는다.


반면에 그때 나의 대답이 '하기 싫다'라면 나는 최대한 바로 일어나 그 일을 처리하고자 한다. 지금 그 일을 미루고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것보다, 그것을 다 해냈을 때 나 자신이 더 만족스럽게 느껴질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너무너무 귀찮은 날에는, 시간을 정한다. 이때까지만 게으름을 피우고, 몇 시 몇 분부터는 바로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게으름의 타이머를 정해둔다. 그리고 편안하게 그때까지 게으름을 피우다, 그다음에는 그 할 일을 처리한다.



물론 위의 방법들은 내가 깨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방법들이라 아직도 연습 중에 있다. 하지만 무기력과 게으름을 구분하게 된 다음부터는 나 자신을 내가 좀 더 아껴줄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 나는 무기력에서 다소 벗어났다. 정말 놀랍게도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나니 그렇게 힘들던 설거지가 별게 아니라고 느껴져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엊그제는 방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그것이 전혀 힘들다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전의 나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지금 잠시 채워진 나의 에너지는 언제 또다시 고갈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픈(무기력한) 상태의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성장을 했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는 지금의 상태가 좋다. 먹고, 씻고, 청소하고, 자는 일을 해낼 힘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의 현재 배터리는 7-8% 전후를 왔다 갔다 하는, 자칫 잘못해서 5% 밑으로 떨어지면 초절전모드에 들어가는 아슬아슬한 상태. 비록 초절전모드는 아니지만, 여전히 15%를 넘지 못해 절전모드를 벗어나진 못한 상태이다. (갤럭시 스마트폰 기준이다.)


그래도 이렇게 1%씩 충전하다 보면 언젠가 절전모드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내년 나의 생일이 되었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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