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하고 싶은 일'은 없어지고 '해야 하는 일'만 존재하기 시작한 날들이 말이다.
처음엔 분명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할 줄 아는 유일한 것이었기에 아주 조금은,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금의 번아웃 문제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하고, 이 일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내가 운항하던 배가 언젠가부터 자기 마음대로 나를 이리 끌고 다니고, 저리 끌고 다니고 있지만, 이것은 내가 다시 키를 바로잡고 주도권을 가져오면 되는 문제이다.
진짜 문제는, 내가 항해를 하는 이유 자체가 사라진 것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나의 모든 선택의 무의식에는 '스스로 먹고살아야 한다'라는 어떤 종류의 의무감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인생에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달리기 시작했던 것은 12년 전부터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기억이 시작되는 어린 시절부터 나의 모든 행동은 이 의무감에서 기원했다. 그것이 내가 의식했던, 의식하지 못했던지 말이다.
내가 '스스로 먹고살아야 한다'라는 어찌 보면 절박하기까지 한 의무감을 가지게 된 계기는 사실 너무 흔한 이야기다. 이런 류의 의무감을 가진 여느 사람들처럼, 나 또한 가정환경이 그 원인이다. 부모님은 늘 싸우셨고, 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리고 나는 장녀이다. 뻔한 결론이다. 우리 집 형편을 보니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내가 알아서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겠구나, 내가 내 한입이라도 줄여줘야 이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그런 류의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요 이상의 과한 의무감이긴 한데,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세뇌에 가깝게 온갖 얘기를 들어오다 보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이를 점점 먹어갈수록, 집안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나의 의무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를 먹었으니 더더욱 내가 이 집에 머무르는 것이 부모님의 등골을 빨아먹는 것 같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전기를 쓸 때마다 이제는 죄책감이 커져갔다.
'얼른 독립을 해서 더 이상 나에게 들어가는 돈이 없도록 해야 돼'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지배했다.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했다. 아직 나는 혼자서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아둔 돈도, 꾸준한 수입을 올릴 능력도 없었다. 우선 돈을 모으고 능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교에 다닐 동안은 저 생각이 나에게서 잠시 사라졌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의 부담이 사라지니 약간의 숨 쉴 틈이 생겼다. 돈도 꽤 모았고, 능력도 어느 정도 갖췄다. 무엇보다 코로나 시절 재택근무를 하며 온 가족이 한 집에 있으면서 생기는 온갖 갈등들이 너무 괴로웠어서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도 생겼다. 독립이 지금까지는 의무감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다는 원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최근 몇 년간 나의 목표는 독립이었다. 독립을 위해 더 열심히 돈을 모았고, 능력을 키웠다. 힘든 일이 있어도 독립을 생각하며 참았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제 나의 번아웃의 이유를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제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평생 동안 의무감을 가졌던, 최근 몇 년간은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독립을 해냈다.
그렇게 나는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처음엔 그냥 내가 꿈을 이뤄서인 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대부분 해봤기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이 찾아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아직 못 해본 것들이 많은데, 그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아직 번아웃이 오기 전, 무기력에 빠졌을 때 무의욕와 동시에 식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사를 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됐다. 음식을 보면 구역감이 들었다. 그렇게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고 나서야 내 마음이 좀 심각한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당장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야 돼서 깊게 생각해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서 모든 일을 마친 후에야, 드디어 나는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여러 과정 끝에 내가 가진 여러 심리적 어려움 중에 하나가 번아웃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우선 칭찬을 하고 싶다. 병명을 알아야 치료 방법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내가 가진 문제가 뭔지 알아야 극복(회복)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의 상태를 들은 상담사는 이런 말을 했다. "좋아하는 게 있으세요? 무엇을 하면 즐거우세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이렇게 답했다. "모르겠어요. 어떤 걸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자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걸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걸 해보세요."
그날 집에 가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두 가지를 찾아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재밌는 곳에 가도, 갖고 싶던 것을 사도 크게 감흥이 없는 현재의 내가 여전히 조금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
첫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삼았던 삶의 이유가 사라져 버린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삶의 이유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우선 더 좋은 삶의 이유를 찾기 전까지는 이것이 나의 삶의 이유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돈만 벌고, 회복에 전념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두 번째는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사실 그림 그리는 것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에게 고통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글은 아직 그렇지 않다. 글 쓰는 것은 여전히 재밌다. (이것만큼은 평생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나의 번아웃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있지만, 내가 번아웃을 치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오늘 나는 나의 번아웃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좋아하는 것을 해보라는 상담사의 조언을 실천하기 위함인 것과 동시에, 훗날 번아웃에서 회복된 내가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회복)했는지 잊지 않기 위함이다.
혹시 모를 곤란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글은 내 현재 상황보다 한 템포 늦게 작성된다. 만약 글이 A를 얘기하고 있다면, 나는 현재 B로 나아간 상태라는 말이다.
그러니 혹여나 글이 너무 심각하거나 어두워서 걱정이 된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미 그 단계를 지난 후에 적는 글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