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먹는 양이 늘었다.
슬슬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요즘 나는 조금 당황스럽다.
밥 먹고 얼마 안 됐는데 또 밥을 먹고 싶다. 특별히 뭘 먹고 싶은 건 없고 그냥 배가 고프다. 먹는 양도 늘었다. 거의 최근 먹던 양의 1.5배를 먹는 것 같다.
돌아서면 또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식재료가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 적응이 안 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 몸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기쁘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사를 못하는 식욕부진이 생겼다.
처음은 2021년, 직업적으로 큰 슬럼프가 왔을 때였다. 영혼의 단짝 같던 평생의 취미가 직업이 되어버렸고, 나는 더 이상 그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꽤나 절망적이어서 좀 크게 힘들었었다. 이때 나는 성인 되고 최저 몸무게를 찍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취미가 직업이 된 자의 숙명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은 후에는 다시 상태가 좋아졌었지만... 문제는 그 이후로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일이 있으면 식욕부진이 생기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겪은 스트레스성 식욕부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고프다기보단 어지럽고 힘이 없어서 시간을 보면 막 12시간, 20시간 지나있고 그런 경우가 대다수. 그래도 활동에 지장이 가면 안 되니까 억지로 뭐라도 먹는데 그것이 그렇게 힘들었다.
대부분의 음식을 살기 위해 억지로 먹다 보니 뭘 먹어도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눈 감고 뭘 먹었을 때 이건 어떤 음식이네 하고 알아맞힐 정도로만 맛이 느껴진다. 맛있다 X, 어떤 맛이네 O.
건강했을 때의 내가 밥을 한 공기를 먹었다면, 이 시기에는 반 공기를 겨우 먹었다. 심할 때에는 반의반 공기를 먹었다. 애초에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고 먹어야 해서 먹는 거다 보니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느껴졌었다.
스트레스성 식욕부진이 가장 심할 때 특징인데, 음식을 보거나 심하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실제로 토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먹어야 할 때가 되어 억지로라도 뭔갈 먹을 때 구역감을 참아가며 음식을 삼키는 것이 꽤 힘들었었다.
이것이 스트레스성 식욕부진과 신경성 식용부진(흔히 말하는 거식증)과의 가장 큰 차이점. 스트레스성 식욕부진은 음식을 먹고 싶고, 먹어야 하는 걸 아는데 먹지를 못하는 것. (못 먹으니 살이 너무 빠져서 볼품없어 보일까봐 걱정은 했다..) 스트레스성 식욕부진도 식이장애에 포함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좀 검색해본 결과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비교적 최근까지 여러 힘든 일로 인해 정도만 다를 뿐이지 계속 식욕부진이 있었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날이 대다수였고, 많이 먹어도 간식 약간 더 먹는 정도였었다.
그. 런. 데!
요 며칠 새 내가 계속 하루에 두 끼를 넘게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고픔.. 너무 오랜만이다. 뭔가를 먹고 싶다는 배고픔이 낯설다.
처음에는 식사 후에도 단 게 계속 당겨서 요새 탕후루 좀 먹었다고 당류에 중독이 된 건가 싶어 심각했는데 다행히도 식사량을 좀 늘리니까 괜찮아졌다. 그동안 맨날 반 공기 먹었어서 그렇게 먹었더니 이제는 몸이 부족하게 느꼈나 보다.
나 설마 이렇게 계속 먹다가 살이 확 쪄버리면 어쩌지? 라는 무서움도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먹는 양이.. 애초에.. 많지가 않더라.. 그동안 조금 먹는 것에 익숙해져서 내가 정상인은 원래 하루 두세 끼에 간식까지 먹는다는 것을 잊어버렸나 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모종의 사유로 10월-11월 중순까지 매우 긴축재정을 해야 하는 터라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그걸 다 먹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 생활에 필요한 필수 식사 외에 사실 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카페 음료나, 디저트, 배달음식 이런 것들은 당분간은 사 먹기 힘들 듯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그동안 적게 먹어서 살이 빠졌다고 해도(체중계가 없어서 몇키로인지 모름), 갑자기 그렇게 먹으면 건강하지 않게 살이 불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10월 한 달 동안은 든든하고 건강하게 필수 식사(점심, 저녁)를 잘 챙겨 먹는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요즘 야채가 너무 먹고 싶던데 저렴한 양배추나 쌈 채소 같은 거 사서 많이 먹어줘야지.
요즘 (난생처음으로) 요리에 관심이 많이 가는데.. 내 손으로 만들어서 뭔가를 먹는 것에 대한 소중함과 가치를 알게 됐달까? (리틀 포레스트 영화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 나중에 따로 영화 리뷰 포스팅에 적어보고 싶다.) 암튼 앞으로 여러 요리도 많이 해보려 한다.
식욕을 포함한 욕구가 있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른다. 뭐든지 과하면 안 좋지만, 부족한 것도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뭐든지 적당한 것이 최고다.
요즘 정말 성인되고 처음으로 푹 쉬어보는 중인것 같은데 확실히 지쳐있던 마음이 회복이 되고 있나 보다.
이렇게 회복되다가 또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지만.. 그런 날도 있겠지만.. 그러면 다시 또 회복될 날을 기다리며 살면 되겠지~!
당분간 나는 오늘만 집중해 보려 한다. 먼 미래는 나중에 좀 더 건강해지면 생각해 줄게~!
내일은 네이버 장보기로 시킨 여러 음식들이 오니까 그걸로 또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요즘 무화과가 너무 먹고 싶은데 생무화과는 너무 비싸고 양도 적어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잼을 사봤다. 맛있었으면 좋겠다. 아침에 모닝빵에 발라 먹어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