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 복용 11개월, 마지막 감량을 하다.

스트레스성 식욕부진으로 밥을 못 먹던 내가

by 여유
요새는 너무 잘 먹어 5kg이 쪘다.


현재 내가 먹는 약은 설트랄린정 25mg 한 개뿐이다.


처음에 75mg를 먹다가, 50mg를 먹다가, 가장 최근에는 25mg으로 줄었다.


불안 시에만 먹는 리보트릴정은 거의 먹지 않고 있다. 일상적인 불안이 크게 감소했다.


내가 먹었던 정신과 약들의 효과와 부작용, 복용 후기


불안과 우울이 감소하자 식욕이 증가했다. 예전에는 일주일 7일 중에 5일 이상이 식욕이 없었다면, 현재는 5일 이상이 식욕이 좋다.


앞으로 내 정신 상태가 좋은지 안 좋은지 알려면 식욕을 보면 되겠구나 싶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식욕부터 뚝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이다. 정도가 심할 때에는 음식만 봐도 구역감이 드는 정도. 이거 뭐 입덧도 아니고^^;;









요새는 정신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덕분에 식욕도 좋고 잘 먹어서 체중이 늘었다. 한참 힘들었을 때에는 몸무게가 42kg가 나갔었는데, 현재는 47kg가 나간다. 무려 5kg나 찐 건데, 내 몸무게를 생각하면 약 10%가 찐 것이다.


원체 잘 먹지 않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살도 잘 안 쪘던 편이라 그동안 다이어트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데, 요새는 밥 먹으면 1-2kg가 쉽게 느는 걸 보고 조금 자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몸무게가 늘면.. 바지를 새로 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새 몸무게가 딱 좋다고 느낀다. 기운이 나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운동을 하는 데에도 예전보다 좀 더 힘이 잘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가족에게 출근하고 셀카를 찍어 보냈는데, 내가 보기에도 얼굴에 살이 조금 오른 것이 보여서 신기했다. '내 자신, 잘 먹고 다니고 있군.' 하는 마음에 기특했다. 말랐을 때보다 훨씬 보기에 좋아서 기쁘다. 말랐을 땐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말랐냐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해 보이는 게 좋다. 허약해 보이면 결국 내 손해이다. 마르고 예쁜 몸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약간 통실하고 뭐랄까 행복해 보이는 그런 몸매가 더 좋다. 할머니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자고 싸는(ㅎㅎ) 일 중에서, 가장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역이 먹는 일일테니 말이다.


'오늘 퇴근하면 이걸 먹어야지', '내일은 저걸 먹어야지', '다음 주엔 꼭 저걸 먹어야지'하는 마음으로 사니까 하루하루가 재밌고, 기대가 된다. 예전에는 맛집 탐방을 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 못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먹고 싶은 것은 삶을 살아가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준다.








예전에는 어릴 적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돈 쓰는 걸 잘 못해서 무식하게(?) 돈을 모으기만 했는데, 그래서 결국 돈은 많이 모았지만 피폐해진 정신 상태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정기적인 수입원이 생기고, 돈을 쓸 줄도 알게 되면서 먹는 즐거움에 예전보다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다.


확실히 저축하는 금액은 줄었지만 삶의 행복도는 올라갔다. 원래 이렇게 살아야 했던 게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비싼 음식을 먹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요아정을 시켜 먹고, 가끔가다 마라탕 먹고, 포케 먹고 그 정도이다. 되게 별 것 아니지만, 예전의 나는 그런 것들도 안하고 못했었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삶, 만족스럽다면 너무 MZ스러운가요


처음에는 나를 위해 돈 쓰는 것이 어색해서 '나를 위한 선물' 통장을 따로 만들었다. 거기에 한 달 월급의 10% 정도를 넣어 넣고, 그 돈은 오로지 나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기로 다짐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폰 케이스를 사고, 카페 음료를 사 먹고 이런 모든 것에 죄책감을 느끼던 나는 '나를 위한 선물' 통장 덕분에 점차 나를 위한 소비에 익숙해졌다.


현재는 일상적인 것들은 굳이 그 통장의 돈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큰돈이 들어가는 (ex. 갤럭시 핏 구입) 경우에만 그 통장에서 돈을 꺼내 쓴다. 그러면 돈을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지 않아서 좋다. 한 달 월급의 10% 정도는 충분히 나를 위해 써도 되는 거야! 라는 마음에 말이다.








오늘 엄마가 "요즘 너랑 같이 보러갔던 공연이 생각난다"며,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하셨다. 엄마께 그런 추억을 안겨드릴 수 있었다니 행복했다. 앞으로도 우리 같이 자주 문화생활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잊고 있던 나의 정신과 약 감량 소식을 전해드렸다. 정신과 의사선생님이 이제 앞으로도 상태가 괜찮으면 단약해보자고 했다고 하니 엄마가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나도 기뻤다. 이제 약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평범한 정신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약을 끊고 난 후에도 나는 가끔 불안하고, 우울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을 먹지는 않아도 된다. 그 정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고는 하는 평범한 감정이니까.


만약 그 불안과 우울이 너무 심해 예전처럼 또다시 신체화 증상이 나타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제 약 없이도 충분히 그 상황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나아가고 있다.


20대 후반 어느 여름. 정신과에 갔다.


나의 병이 낫는 데에는 약의 도움도 컸지만 실질적인 계기는 환경의 변화였다. 나의 병의 원인은 가족이었는데, 가족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모든 사람이 환경이 바뀔 수 없는 것은 잘 안다. 그럴 때에는 몸의 아픔이라도 치료할 수 있게, 환경의 변화가 오기까지 견딜 수 있게 약을 먹는 것도 고려해보았으면 한다. 나 또한 약이 없었으면 변화가 오기까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기에.


정신과 약을 먹은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1년이 되는 그날, 과연 나는 단약을 했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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