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버스를 하나 보내고, 굳이 걸어가고, 굳이 집을 돌아가는 것.
얼마 전 친구들과 공원에 놀러 갔을 때, 햇볕이 내리쬐는 벤치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는 아저씨를 보았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그늘로 걸어가던 우리는 그늘진 벤치도 많은데 굳이 햇빛이 직방으로 내리쬐는 벤치에 누워있던 그 아저씨를 보며 '낭만 개쩐다!'라는, 낭만이라곤 1도 없는(...) 말을 하며 지나갔었다.
그리고 며칠 후. 자기 전에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보는데, 이런 내용의 쇼츠를 보았다.
굳이 버스 하나 보내고,
굳이 걸어가고, 굳이 집 돌아가고,
굳이 우산이 있어도
내팽개치고 같이 비를 맞는 것.
그것이 낭만.
김켄지 유튜브 쇼츠 - 낭만에 대한 비밀 中
이 영상을 본 이후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낭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해진 현대인. 2024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분초사회'라고 지칭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그렇게 모으고 모은 시간을 어디에 쓸까? 힘들게 모은 시간이니까 정말로 가치 있는 곳에다 사용할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은 시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릴없이 누워 목적 없이 숏폼을 보거나, 커뮤니티의 가십거리를 읽는 데에 사용했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그러한 현상을 '도파밍'이라고 정의했다.
정신 없이 분초사회를 살며 모은 시간을, 의미 없는 도파밍으로 낭비하는 삶.
바쁘게 살기 위해 바쁘게 사는 삶 속에서, 우리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지나쳐 버렸을까.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이러한 말도 덧붙였다. 현대인들은 같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늘어났을지 몰라도, 누리는 삶의 질은 떨어졌다고 말이다.
뭐든지 2배속으로 보고, 3줄 요약만 찾아 읽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뇌는 점점 깊은 맛을 잊어간다. 바깥 음식의 자극적인 조미료에 길들여져 슴슴한 집밥의 멋을 잊어버린 혀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중 한 명인 나도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좀 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목적 없는 도파밍을 하는 시간을 줄이려 노력해야겠다고만 생각했었다.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았다. 정답은 바로 '낭만'에 있었다.
사 먹는 게 쉽고 간편해도 굳이 직접 요리해먹는 것,
나와 집 방향과 달라도 굳이 누군가를 데려다주는 것,
잘 씻기기만 하면 되지만 굳이 좋아하는 향의 비누를 사용하는 것,
아무거나 입고 자도 상관없지만 굳이 잠옷으로 갈아입는 것.
비효율에는 낭만이 있고,
낭만에는 풍요가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풍요롭기 때문에 비효율적일 수 있는 거라고. 낭만은 사치일 뿐이라고.
이해한다. 공감도 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낭만의 기준은 자신이 세우기 나름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낭만이야말로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사치일지도 모른다. 출근길에 하늘 한번 올려다보기, 자기 전에 자신을 위한 칭찬 한마디 해주기만큼 가성비 좋은 사치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앞으로는 아무리 바빠도 낭만이 있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낭만이 있는 한 나는 언제 어디서나 풍요로울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