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더니

좋아하고 잘하던 일이 사라져 버렸다.

by 여유
나는 여전히 그 일을 사랑하는데.


좋아하던 일이 잘하는 일이 되었고, 그것이 곧 직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프리랜서로 거진 10년간 살았었다. 처음엔 용돈벌이로 시작한 일이 점점 잘 되더니, 나중에는 그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되었다.


그림 한 장에 3000원으로 시작했던 내가 시간당 15만 원을 받으며 강의도 했다.


여기저기서 일거리가 들어왔다. 어디서 돈을 벌면 될지도 눈에 보였다. 이대로 계속 가면 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


신기했다. 돈을 벌지 못할 거란 생각에 처음부터 꿈꾸지도 못했던 이 일로 돈을 벌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행복했다.


정말로 행복했었다.








내 직업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직업. 아침에 눈을 뜨면 컴퓨터를 켜고 프로그램을 열어 하얀 캔버스를 모니터에 띄운 후 작업을 시작한다.


처음으로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4살 쯤. 액정타블렛 같은 도구가 있을 리 없으니, 마우스로 한 땀 한 땀 선을 이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오늘은 무엇을 그려볼까. 손그림으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기능들로 하얀 캔버스를 가득 채우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까.


'돈을 주지 않으면 동그라미 하나도 그리지 않겠어'라는 동료 업계인의 우스갯소리가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돈을 받았으니 책임감에 그림을 그릴 뿐, 사실은 아무것도 그리고 싶지 않은 날이 점점 많아졌다.


죽기 살기로 마감을 쳐낸 뒤에는, 단 한 줄의 선도 그을 수 없었다.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또 그려야 하는데, 그림의 ㄱ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하얀 캔버스가, 다음엔 프로그램이, 그다음엔 컴퓨터 앞에 앉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나중엔 그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내가 그림을 어떻게 그렸더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당장 수중에 돈이 급할 때에도, 차라리 몸을 쓰는 일을 할지언정 그림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았다.


좀 쉬면 나아지겠지-하는 마음으로 단기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그 일을 사랑하기에, 어느 정도 회복되면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나는 뜬구름 마냥 부유하는 생활은 이쯤 하고, 당분간 정착할 곳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인생 처음으로, '취업'이라는 것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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