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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yun Kim Aug 03. 2019

깍두기를 위하여

그 많던 깍두기들은 어디로 갔나? 

     조폭이 대중문화의 중요한 아이콘이 되면서 깍두기는 본래 음식을 가리키는 말 보다 폭력배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될 때가 많아졌다(영화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헤어스타일이나 옷 입는 것, 생김의 묘사, 몸짓등, 깍두기 같다는 말은 대체로 불량스럽다, 조폭같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한국인의 밥상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깍두기가 어쩌다 이런 의미로까지 사용되게 되었을까? 깍두기의 각진 모양이 조폭들의 각진 헤어스타일, 각잡는 자세 이런 것들과 연상되면서 그렇게 되었을까?


     깍두기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어릴 때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놀게 되면 자연스럽게 친구들 중 누군가는 자기의 어린 동생과 함께 나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은 모두 초등학교 4학년인데, 그중 누군가는 아직 입학도 하지 않은 동생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집에는 어린 동생을 돌봐줄 사람이 없고, 동생은 형이나 언니를 따라 함께 나온다. 하지만 술래잡기를 하던, 다방구를 하던, 무슨 놀이를 하더라도 누군가의 그 어린 동생은 놀이를 함께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 동생에게 놀이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도 쉽지 않고, 또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하는 체력적인 소모도 초등학교 입학전의 어린아이가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깍두기를 만들었다. 편을 가를 때 인원이 남거나 혹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놀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들은 그 친구를 깍두기로 정하고 놀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혹함에서 예외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술래잡기에서 제일 먼저 발견되어도 절대 다음번 술래가 되지 않고, 달리다가 붙잡혀도 여전히 게임을 계속 이어갈 수 있고, 심지어 자기 마음대로 게임에 참여했다가 또 자기마음대로 그만둬도 되는 특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깍두기가 규칙을 무시하고, 놀이중에 한눈을 팔고,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놀이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아이들은 “이 애는 깍두기니까.” 하며 깍두기로 인해 생겨난 그 모든 불편함을 이해했다. 자신들의 놀이에 적절하게 적응하기 힘든 약자에 대한 배려와 그 기특한 마음은 비록 아이들의 놀이에서 생겨난 말이지만 정말 이해심 깊은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깍두기는 놀이에 참여할 수 있을만한 객관적 여건이 적절하지 않아도 놀이에서 친구들로부터, 형제자매로부터 소외되지 않기를 원하는 약자와 소수에 대한 제도적이면서 (? 아이들의 놀이에도 엄격한 규칙은 존재한다) 동시에 자발적인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깍두기를 통해, 적합한 외적 조건을 갖춘 친구들과만 놀이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놀이를 함께 하기에 부족한 동생 혹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외되는걸 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과 소외시키길 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깍두기라는 말에 담겨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깍두기들은 누군가의 동생이었다. 오늘은 친구의 동생이 깍두기가 되었지만, 내일은 내 동생이 깍두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선지적인 생각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하고  있지 않았을까?  또 축구를 하다 다리를 다친 친구도 깍두기가 된다. 감기에 걸려서 몸이 안 좋은 친구도 깍두기가 된다.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도 깍두기가 되어 제대로 규칙을 이해할 때까지 깍두기로 놀이에 참여한다. 다들 잠재적으로 언젠가 나도 깍두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나도 언젠가는 깍두기가 되어 놀이에 참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관대함과 배려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서로 다른 나이의 아이들이 함께 모여 놀면 예외 없이 등장했던 깍두기라는 말은 이제 조폭영화의 무식한 깍두기를 지칭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약자를 배려하고 소외를 차단하려는 깊은 이해의 징표였던 그 많은 깍두기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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