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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 여경 Oct 24. 2022

최근 한 달간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이유

글쓰기 공모전 수상 소식 전해요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다."


고 이어령 작가님이 하신 이 말씀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한 달 전, 응급실에 다녀왔다.

뇌 ct를 찍고 뇌수막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척수액을 뽑았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 웬만하면 다시 바늘을 몸에 여러 번 꽂는 일을 피하고 싶었는데.


오후 다섯시부터 밤 열 시가 넘어가고. 살면서 처음 와 본 응급실의 시간은 바깥의 시간보다 압축되어 밀도있게 흘러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기저기서 의사를 부르는 보호자들, 신음하는 환자들, 그리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의사와 간호사들. 그들 옆에 있으니 나까지

초조해졌다.


“응급실에 처음 와 보다니 운이 좋으시네요.”

인사처럼 건네받은 그 말이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응급실에 다닐 만큼 크게 아픈 사람은 없었으니 행운이다. 이제 막 이유식을 시작한 나의 딸도또래보다 적은 몸무게로 태어나 노심초사했지만,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


응급실의 바쁘게 돌아가는 그 풍경에 할말을 잃었다. 침대에 누운 채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지하여 이동할 땐 기분이 묘했다. 팔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며 별일 아니길 별일 아니길, 설마 젊은데 어디 크게 아플라고 싶다가도 ‘혹시… 만약에라도…이상이 있다고 하면….’ 이라는 불안으로 키워낸 의구심을 떨쳐내느라 마음은 분주했다.


다만 우스운 건 그 와중에도 내가 글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나중에 응급실에 대한 묘사를 하게 될 때 직접 경험이 있으니 좀더 생생하게 쓸 수 있겠다”라는 마음에 여기저기 더 깊게 관찰하려 하는 날 보며 스스로도 혀를 내둘렀다. 나는 척추와 머리 통증이 찌르듯 나를 얽어매는 와중에도, 이전에 썼던 글들 속 주인공 중 응급실을 배경으로 사건을 만들어 줄 사람이 없었는지 곱씹으며, 그 상황을 생생하게 녹여줄 단어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잠깐의 짬이 생기면 너무 감사해서 부랴부랴 글 쓰러 갑니다)


-

그렇게 응급실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 진지하게 내 인생의 방향에 대해 중간 점검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편이 왔다. 나의 글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으니 시상식에 참가하라는 공문이었다. 비록 대상은 아니었지만 나름 바쁜 시간을 쪼개서 꾸준히 해왔던 글쓰기를 계속 하라는 응원같아서 기뻤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통 속에서 내 삶의 방향을 재고민하고 있을 때 도착한 통지문이라 내겐 좀더 의미가 있었다.


한때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내 자신을 미친듯이 몰아쳤던 적이 있다. 글쓰기가 아닌 내 삶은 의미가 없을 거 같고 이게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같아서… 어떻게든 꼭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다.


물론 그때의 경험은 내게 너무 소중한 몰입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다만 당시엔 나만큼 글을 쓰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줄 몰랐고, 글은 기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달력과 더불어 내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풍성하게 쌓아가며 농익어가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마냥 좋은 글을 쓰고 싶어 내 자신을 옥죄고 안달복달하지만 그럴수록 좋은 글은 내게서 달아나곤 했다.


그도 그럴것이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세상에 말하고 싶었나 보다.

비록 공무원에 적응하지 못해 나왔지만 그것만이 좋은 길이 아니라고, 더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너 잘 되는 증명이 ‘무언가가 당장 되어있어야 한다고’ 착각했다. 일종의 치기였다. 그땐 내가 공무원의 인기가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겠나,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라고 한 영상에서 말했다가 엄청난 악플을 받은 때이기도 했기에 그 사람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건,

내게 의미없는 사람들의 말들에 너무

신경쓰고 휘둘렸다는 것. 그렇기에 바른 길을 걸으며 나에게 집중하여 정진하는 데 더 시간을 많이 쏟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쌓기 위해 십 년 이상의 고도의 몰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 사람들의 노력과 그 시간을 본받으며 열심히 걷기도 모자랄 시간에, 내 재능에 대한 크기만을 재고 따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쉽게 부러졌다. 조금만 내가 원하는 대로 글이 써지지 않고 이야기가 완결이 나지 않으면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나는 잘 될 수가 없구나. 역시 잘 되는 사람들은 타고난 거야.’ 라고 나를 한계지었다. 안 되면 한 번 더 시도해보고 노트북에 쓰레기같이 느껴지는 글이 쌓일수록 내 실력도 늘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공공노동자가 되어 일 년은 적응하느라,

그리고 다음 일 년은 임신을 해서 바뀐 몸에 적응하고 새로운 육아를 경험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아픈 일들도 많았기에

매일 비공개로 글을 써내려가기도 했다.


최근 한 달도

아픈 몸과 마음으로 힘들어하며

브런치의 알람을 외면한 채

계속 비공개로 내 마음을 쏟아내는 시간들을 가졌다.

시간이 흘러 몇 년 전에 내가 썼던 글들을

다시 보기도 했다. 주욱 내가 썼던 비공개글도 돌아보니, 내 생각의 자취들이 모두 담겨있었다.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반복되는 글들을 통해

캐치할 수도 있었고,

혼자만 계속 비공개로 글을 쓰다보니

어딘가에 내보고 싶었다.

우연히 발견한 공고를 통해, 공모전 마감일 두 시간 전에(나는 이렇게나 늘 게으르다) 부랴부랴 이전에 썼던 글을 다듬어 제출했다.


참 이상한 게, 딱 제출하고 나니 이전의 아등바등함이 사라졌다. 수상의 여부보다 그냥 ‘바빠고 힘든 와중에 적어도 하나의 글을 완성해서 규격에 맞춰 그것을 제출했다’라는 사실이 엄청난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래 맞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행복해서였는데.

 그걸로 뭔가 얻기 위함이 아니라

 글쓰는 행위 자체가 내겐 큰 기쁨이자

 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는데…

 내가 그 소중한 것을 내 욕심에 가려 잊고 있었구나.“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다가

몇 달 후, 응급실에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수상소식이 전해진 거다.


등단을 하거나 혹은 상 하나 받는다고

인생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멘토 작가님의 응원 아래

처음 내 공무원 퇴사 스토리를 책을 써서

출판사의 컨택을 받았을 때도,

그것은 책을 계속 써내려갈 수 있는 ‘시작’이자

물꼬였을 뿐 완성이 아니었다.


다만 그 때는

그게 시작인 지 몰랐고

이번에는 지난 경험을 통해,

알았다는 게 다를 거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요즘.. 많이 힘들지? 지치지? 그래도 네가 원하는 거 꾸준히 해. 네가 걷는 길을 응원해.“ 라는 마음 속 분명한 메시지였다.


심사위원 중엔 내가 동경하는 소설가들도

있었고 그들이 어쨌든 내 글을

‘읽어봐줄만 하다’라고 평가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권위 있는 자의 평가라서 중요한 게 아니라,

앞서 ‘글을 꾸준히 써내려간다고 세상에 인정받은’선배들이 건네준 큰 위로이기 때문이다.


고 이어령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을 다시

곱씹으며 마무리한다.

“꿈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다.”


그래.

나를 나답게,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있다는 거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딜 어떤 행위가 있다는 건

인생의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그거면 되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다시 애기 똥 치우러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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