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tter S Mar 07. 2021

우아한 출산은 없다.

몇 달 전 출산한 친한 동생 H의 집에 방문했다. 만삭일 때 보았던 그녀의 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 납작했고, 거기에서 나온 게 맞는지 긴가민가 싶을 만큼 우뚝 자라있는 아기가 바닥에 앉아 연신 공갈젖꼭지를 빨아대고 있었다.
“아휴, 언니 괜찮아. 얼른 마스크 벗어~”
이 빈틈없이 청정한 아기 앞에서 마스크를 벗기가 멋쩍어 한참을 망설이자 H가 말했다. 시간은 이미 정오를 향해 가는데도 이유식 만드느라 세수조차 못했다는 그녀를 돕기 위해 나는 얼른 손을 씻고서 아기를 안아 올렸다.


내가 아기를 돌보고 있는 사이, 완성된 이유식을 소분해 담은 후 세수까지 싹 마치고 나온 H는 탈 많았던 출산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제왕절개를 하느라 진통은 겪지 않고 넘어갔지만 지옥문은 기어코 열려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수술 부위의 통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유별나게 심한 젖몸살과 도통 내려갈 줄을 모르는 열 때문에 병원을 계속 들락날락해야 됐단다.
누군가 그랬다. 제왕절개나 자연분만이나 산모가 겪어내야 하는 고통의 총량은 결국 같다고. 단, 할부냐 일시불이냐의 차이일 뿐. H의 이야기를 듣고나자 기억은 나를 오래 전 내 출산현장으로 끌고 갔다.




아스팔트가 눅진하게 녹아내릴 정도로 여름의 기세가 한창이던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만삭 임산부에게 많이 먹고 편히 쉬라는 옛말과는 달리 적당히 먹고 많이 움직이라는 요즘 세태에 따라 나는 그 날도 운동 삼아 알차게 걸어다녔다. 의도와는 다르게 삼겹살을 양껏 먹은 탓인지 숨이 차오르긴 했지만 움직임이 거뜬한 걸 보니 출산은 아직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초산은 예정일보다 늦다는 속설도 있듯이.


밤 12시를 겨우 넘겼을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던 차에 흡사 퓨즈가 나가듯 뱃속에서 '퍽'하는 소리가 났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었지만 직관적으로 '양수가 터졌다'는 걸 알았다.
“자기야, 애기 나올 것 같아!”
다급한 내 목소리에 자고있던 남편이 헐레벌떡 일어났다. 한 번 곯아떨어지면 업어가도 모르는 그도 즈그 새끼 나온다는 말에는 번개처럼 잽쌌다.
“침착하자, 침착해.”
하나도 침착하지 못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계속 주문을 걸었다. 떨리는 손으로 대강 매무새를 정리한 후 미리 싸 둔 출산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링거를 꽂고 태동을 체크하는 등 곧장 출산태세에 들어갔다. 예정일까지 18일 정도가 남아있었기에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인지, 정신없이 휩쓸려 가는 상황이 갑작스럽고 두려웠다. 물론 아기가 날을 다 채워서 나왔다 한들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산은 준비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양수가 터졌음에도 한동안은 진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심한 생리통 정도의 통증이 시작됐다. 날카롭고 강렬한 통증 후 잠깐의 휴지기가 반복되던 그것은 새벽을 꼴딱 새도록 더디게 진행됐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참아볼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끄트머리에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양수가 터진 이상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촉진제가 투여됐고,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듣도 보도 못한 극한의 고통을 맛보았다.


처녀 적, 산통에 대해 물으면 다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라고 하더니 하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 몸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인이 머리와 다리 양 끝을 잡고 빨랫감 마냥 비틀어대는 기분이었다. 세포 하나하나에서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때까지 쥐어짜내는 듯한 고통에 이쯤에서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싶었다. TV에 나오는 배우들은 쌍욕은 커녕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고상하게 아이를 낳던데, 나의 출산은 내게는 공포영화요, 남이 보면 코미디였다.
 “악~~~ 여보, 나 좀 죽여줘. 나 그냥 죽을래!”라는 비명과, “둘째 낳자고 하면 죽여버릴 거야. 너 수술해!”라는 협박을 반복하며 아비규환의 몇 시간을 보냈다. 억겁으로 느껴졌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고작 두어 시간이었단다.


고통에 몸부림 치다보니 몸이 어느 정도 열렸다. 이 말인즉슨, 드디어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새우등으로 잔뜩 웅크린 채 주사를 위한 자세를 잡았다. 움직이면 안된다는 말에 가까스로 진통을 참아내며 고통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팔다리를 고정시켰다. 주삿바늘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몸 바른 곳에 안착하길 바라며.
드디어 '무통 천국'에 입장. 통증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 전에 비하면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이제서야 숨을 고르게 쉴 수 있었다. 골반 사이로 커다란 수박 한 통이 끼어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 때쯤 담당의사와 간호사들이 몰려와 배를 누르며 힘을 주란 신호를 보냈다. 무통주사 기운에 힘을 제대로 주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열심히 다닌 산전요가 덕분인지 서너 번의 시도만에 아기가 나왔다. 물론 나는 여전히 별 느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탯줄이 잘리고 아기가 울고 후처치가 진행되는 부산스런 상황 속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 나왔다. 안도의 눈물인지 감격의 눈물인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고개를 돌려 구석을 바라보니 남편도 안경 밑으로 무언가를 자꾸 훔쳐낸다. 생전 처음 보는 저 남자의 눈물.
목욕을 마친, 남편의 도플갱어이기라도 한 듯한(나는 남편을 낳은 줄 알았다) 아기가 내 품으로 돌아와 아직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었다. 나중에 사진을 꺼내보니 무는 아이도 물리는 나도 참 서먹하게 한 덩이로 뭉쳐져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매일같이 새롭게 자라났고, 37주만에 태어나 더욱이 '아가아가'하던 얼굴은 이제는 여물다 못해 새침한 숙녀로 변했다. 그리고 나도 그리 어색하던 '엄마'라는 포지션에 꽤나 익숙해졌다.




H는 간만에 집에 놀러 온 손님으로 활기차 보였다. 마스크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어린 아기를 데리고 있다보니 외출이 힘들어 거의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감옥처럼 꽉 막힌 생활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며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넘기는 그녀를 보니 코끝이 자꾸만 시큰거렸다.


드라마처럼 우아한 출산은 없다. 인스타처럼 간지나는 육아도 없다. 요즘 같은 팬데믹시대에는 더구나. 대신 그녀들은 마스크를 끼고서 숨이 턱턱 막힌 채 진통에 몸부림 치면서도 아이를 무사히 세상에 내보내고, 수많은 제약이 있고 언제 끝날지 보장된 것도 없지만 그 안에서 허락된 것들로 아기의 시간을 윤나게 채워준다.


나는 H를 꼭 끌어안았다.



이전 10화 살려고 요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