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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S Apr 25. 2021

살려고 요가합니다.


거실 바닥에 매트를 펼지 말지를 놓고 한참을 고민 중이다. 몸과 마음이 찌뿌드드 곤기가 드는 날은 운동만이 답이란 걸 경험치로 알고 있지만, 무거운 엉덩이 탈탈 털고 일어나는 그 하나가 어려워 한 시간째 이러고 있다. 수십 번의 갈등을 뒤로하고 마침내 짱짱한 레깅스에 두 다리를 욱여넣었다. 그래, 살기 위해서다. 다 살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체육수업의 강제성이 사라진 이후로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도 별 탈 없이 잘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운동을 다시 찾은 것은 9년 째 다니던 회사를 때려칠 무렵이었다. 우뚝 솟은 쌍둥이 빌딩 안으로 해 뜰 때 들어가서 해 진 뒤 나오는 일상을 오랫동안 반복했던 나는 구멍이 뚫린 듯 텅 비어버린 시간을 메우는 방법을 알지 못해 허둥거렸다. 그 유명한 퇴사짤처럼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내 행복을 찾아 떠나겠다’던 호기로운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가까스로 얻은 여유와 자유가 어색하기만 했다. 지쳐있는 몸과 마음을 돌아보고 토닥일 ‘건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내는 데에만 몇 주가 걸렸다.


마침 마주한 (몸이 하나씩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30대 초반의 나이는 운동을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이제 무슨 운동을 할 지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동네마다 차고 넘치는 헬스장은 유약한 이 몸뚱이에 버거울 것 같아서 일단 걸렀다. 20대 때 잠깐 시도해 보았던 필라테스는 몸매 관리에 탁월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레슨비가 비싸서 또 패스했다. 그러다 적당히 타협한 게 요가였다. 심호흡과 명상으로 대변되는 편안한 이미지가 몸치인 나도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좋게 내동댕이 쳐졌다. 요가는 명상과 스트레칭 위주의 정적인 운동이 결코 아니었다. 빈야사요가, 필라요가, 플라잉요가, 번지요가 등 ‘요가’ 앞에 몇 글자가 덧붙어 한층 세련되고 이국적으로 보이는 그것들은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이 결합된 빈틈 없는 동작으로 나의 사지를 쥐어짰다. 한 번 다녀올 때마다 쉰내가 돌도록 땀이 흘렀고, 다음 날에는 붙어있는지조차 몰랐던 근육의 존재를 통렬히 실감하며 신음과 함께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점점 운동에 재미가 붙었다. 다부지게 마음 먹고 한바탕 움직이고 오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하루를 보람있게  보낸 기분에 활기와 뿌듯함은 덤으로 따라왔다. 코어에 힘이 생기고 물렁대던 살들이 야무지게 변해가면서 머리를 바닥에 두고  발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대략 물구나무서기를 상상하면 된다) 거뜬히 해낼  있었다. 나는 어느새 통쾌한 성취감을 싹싹 긁어 모아 즐기고 있었다.




세 계절이 지날 무렵 뱃속에 아기천사가 들어섰다. 기쁨도 잠시, TV에 나오는 백종원 얼굴만 봐도, 지나가다 음식점 간판만 봐도 메슥거릴 정도로 무자비한 입덧때문에 한동안 침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입덧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넌 왜 그런다니.”라는 친정엄마의 걱정 어린 한탄이 약오르게 들릴 정도로 잔뜩 뾰족해진 시기였다.


온종일 누워만 있던 무기력하고 피폐한 임신초기를 보내고나니 입덧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어 뭐라도 좀 집어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잔뜩 쭈그러져 있던 몸과 마음을 펴 볼 쥐똥 만한 여유와 용기가 생기자 다시금 요가가 하고 싶어졌다. 조금이라도 수월한 출산을 위해 몸을 단련(?)하고 싶다는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심호흡이나 하반신 위주의 동작을 익혀두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리원에서 운영하는 산전요가 클래스를 신청했다. 풍뎅이 같이 부푼 몸을 이끌고서 일주일에 두 번씩 악착같이 그곳을 들락거렸다. 이 참에 비싼 조리원 제대로 한 번 뽕을 뽑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임신으로 나약해진 괄약근 탓에 수업 중에 여기저기에서 뽕뽕 소리가 터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열명 남짓한 풍뎅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아기를 위해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


조산의 기준이 되는 임신 37주차에 접어들자마자 나는 경황 없이 출산을 맞이했다. 마음은 아직이었지만 몸은 진즉에 준비가 되었는지, 의사가 신호를 주는 찰나 어렵지 않게 ‘이였차!’ 몇 번 힘을 주었을 뿐인데 아기가 나왔다. 이게 다 산전요가 덕분이렸다.




출산 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아기를 안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니 약해진 관절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손목도 허리도 무릎도 흔들렸다.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매 달 놓치지 않고 감기에 걸렸다. 좋다는 영양제를 다 챙겨먹어도 소용이 없자 나는 운동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생후 8개월 무렵부터 아이가 잠들면 뒷일은 남편에게 맡기고 밤요가를 다녔다. 하루의 마무리를 요가로 하면서 뭉쳤던 근육이 풀어지고 출산으로 느슨해졌던 몸이 짱짱해지는  했다. 수업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혼자 걷는 것도 좋았고, 남편이랑 나눠먹을 간식거리 하나씩 사서 달랑달랑 들고오는 것도 좋았다. 아기 외에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 생기니 육아로 지쳤던 마음도 서서히 다독여졌다.


그러던 어느  나의 요가생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온 것이다. 코로나 발생 초창기라 공포감과 두려움은 극대화되었고 단지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미리 끊어놓은 8개월치 요가티켓을 모두 날릴 수가 없어서 상황이 조금 진정되면 수업에 나가고 심해지면 멈추기를 반복했다. 거듭 흐름이 끊기니 운동효과는 커녕 스트레스만 쌓였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은 ‘홈트’였다. 튼튼해 보이는 요가매트를 주문하고, 유튜브를 뒤져 괜찮은 요가채널도 하나 찾아냈다. 멱살 잡고 끌고가 줄 강사도 다른 수강생들의 존재도 없이 집에서 혼자 내 몸을 책임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강제성이 약해서 자꾸 미루게 될 뿐더러 운동강도가 세진다 싶으면 다 건너뛰고 ‘사바아사나’(시체처럼 누워서 휴식하는 자세)로 성급히 마무리하기 일쑤이다. 게다가 시시때때로 매트에 난입하고 방해하는 아이까지 있으니.

반면 수업에 오고가며 새는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마스크 없이 편안히 호흡하며 자세를 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눈치보지 않고 신음과 비속어를 마음껏 내뱉을 수 있는 것도 편했다. 이제는 아이도 익숙해졌는지 내 자세를 익살맞게 흉내내며 웃음을 주는 선에서 그쳐준다. 아마 당분간은, 어쩌면 꽤 오래도록 혼자하는 운동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나는 살려고 요가를 했다. 퇴사 후 건강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출산을 대비하기 위해, 육아에 지친 나를 되찾기 위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기를 낳고나면 진절머리 나는  놈의 생리통   고쳐진다더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일주일 동안은 무슨 흑마법에라도 씌인 마냥 머리가 납처럼 무겁고 온몸이 쑤신다. 이럴 때는 몸을 살살 이완시키며 풀어주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여기에 대고 우리 엄마는  “생리통은 친정엄마를 닮는다는데   그런다니.”라며 걱정 어린 한탄을 늘어 놓겠지만 더이상   대응은 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도 나는 거실 바닥에 매트를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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