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여기 왜 이래요? 모기에 물린 거예요?”
출산 후 백일을 가까스로 버텨낸 후 만난 조리원 동기는 우리 아이의 코를 가리키며 천진하게 물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지나가듯 묻는 말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구구절절 설명하게 되는 내 목소리는 소심하게 기어 들어간다.
꽃 같은 내 딸은 태어날 때 콧등에 좁쌀 만한 하얀 점을 달고 나왔다. 처음에는 태지가 덜 벗겨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아이 얼굴이 윤이 나도록 반질반질해져도 그것 하나만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소아과 회진 후에야 그 좁쌀이 피지선모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방비 상태로 생소한 진단명을 마주하게 된 나는 덜컥 겁부터 났다. 얼굴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그것 때문에 아이가 놀림을 받고서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걱정은 똬리를 틀며 굼틀거렸다. 한 몸에서 둘로 나뉠 때 좋은 것만 쥐어서 내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속이 상했다. 어떤 태교를 잘못 했는지, 무슨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과학적 근거도 없는 원인들을 짚어가며 스스로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았다.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아이는 커가면서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보고는 “엄마, 이거 뭐야?”라고 묻는 횟수가 빈번해졌다. 유독 새하얀 피부에 묻혀서 점은 서서히 티가 덜 나게 되었지만, 별거 아닌 듯 하다가도 다시 보면 별거인 것 같아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전염병으로 세상이 멈췄다. 그 날이 그 날 같던 어느날 나는 결심을 했다. 평소 하던 것을 할 수 없으니 하지 못했던 것을 하자고.
“여보, 어차피 어디 나가지도 못하는데 이 김에 아이 모반 수술 해주는 게 어떨까? 수술 자국도 마스크로 자연스레 가릴 수 있고 말이야.”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남편에게 물었다.
“괜찮을 것 같네. 어릴 때 제거하는 게 좋다고 했으니 병원에 한 번 다시 가보자. 세연이도 이제 제법 말귀가 통하니까 뭐.”
역시 미우나 고우나 언제든 내 의견에 확신을 주는 남편, 아니 내 편이다.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 잔뜩 초조해진 내 마음은 애먼 오른쪽 다리만 달달 흔들어댔다. 혹시 어려운 수술이라고 하면 어쩌나, 흉터가 많이 남는다고 하면 어쩌나, 머릿속에는 이미 별의별 잡동사니가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차례를 기다리는 중 내 아이 또래의 수많은 환자들이 진료실을 들어가고 나왔다. 수술을 막 마친 아이, 드레싱을 받으러 온 아이 등을 보며 딸이 앞으로 겪을 일들을 짐작해 보았다. 우리 애도 저들처럼 수술을 잘 마쳤으면 하는 바람과 이렇게 수술을 많이들 하는데 잘못될 리 없겠지 하는 위안이 뒤숭숭하게 섞였다.
마침내 진료실에 들어섰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의사의 입에서 ‘크기가 큰 편은 아니다. 간단한 수술이다.’라는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나의 오른다리는 떨림을 멈췄다.
“세연아, 세연이 코에 있는 하얀 점 있지? 내일은 그거 빼러 갈 거야. 점을 그냥 놔두면 나중에 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 얼른 없애야 한대. 주사 하나만 콕 맞으면 의사 선생님이 안 아프게 잘해주실 거야.”
놀라지 않도록 수술 전날 몇 번이고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어쩌면 술렁이는 내 마음에 거는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 도착하자 우리는 수술실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콧등에 마취주사부터 맞아야 한단다. 오늘따라 유난히 뾰족하고 길어 보이는 주삿바늘이 딸의 조막만한 얼굴로 들어간다니, 보는 나도 죽겠는데 직접 겪는 건 오죽할까. 그러나 아이는 잔뜩 긴장한 표정임에도 찍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그 잔인한 걸 다부지게 맞아냈다. 끝나고 보니 채 흐르지도 못한 물방울이 눈 안에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오히려 그것은 주책맞게도 내 눈에서 대신 떨어졌다.
졸려 할 무렵 수면제를 투여하니 아이는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아이를 조심스레 수술실로 옮겼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수술대에 눕히자마자 아이가 눈을 뜬 것이다. 심봉사 눈 뜨듯 그야말로 ‘번쩍’ 떴다. 워낙 예민한 기질이 있긴 하지만 하필 그게 여기에서 발현될 줄이야.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는 다시 잠들지 않았고 긴장하여 정신이 더 또렷해진 모양인지 눈을 굴려가며 수술실 이곳저곳을 훔쳐보았다.
“이런 경우가 흔한 가요?”
나는 간호사 선생님께 물었다.
“아니요, 거의 없어요…”
절망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의논 끝에 아이가 깨어있는 상태로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언제나 의연한 남편이 아이와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다.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어서 종종 날 서운하게 하는 저 성격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
나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며 복도 끝에서 끝을 몇 번이나 오고 가는 것으로 애타는 마음을 달랬다. 그 시각, 모반이 자리 잡은 얼굴 반 쪽을 천으로 가린 채 선생님은 수술을 시작했고, 아이는 드러난 나머지 얼굴로 뽀로로가 틀어진 아빠의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은 화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딱히 집중해서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단다.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입을 꾹 다문 채 제 아빠의 손만 움켜쥐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표정 없이 수술실에서 나오는 아이의 얼굴에는 주먹만한 거즈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나는 오만가지 감정이 뒤엉켜 왈칵 눈물을 쏟았다. 누군가는 쉬운 수술이라고 하겠지만 아이 엄마에게 쉬운 수술이란 없었다.
한 달여를 지나 얼굴에 붙어있는 반창고의 크기가 꽤나 작아졌을 무렵,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하였다. 공식적인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보다 훨씬 금세 친해졌다. 상 앞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간식을 먹던 한 아이가 우리 딸의 코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뭐야?”
“투뚤했어, 투뚤!” (수술했어, 수술!)
고작 네 살짜리 인생에서 수술이란 단어를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알아듣지 못한 옆 친구가 재차 물었다.
“이거 뭐야?”
“투뚤했어, 투뚤!”
더욱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해주는 우리 꼬맹이.
뭘 모르는 나이인 덕도 있겠지만, 고슴도치 엄마의 눈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게 될 궂은 일에 아빠 닮아 의연하길 바라며, 그러다 아빠처럼 엄마를 서운하게 하더라도 너만은 용서해 주겠다며, 나는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