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커서 웬 히어로물이래. 어벤져스가 우뢰매, 후레시맨, 파워레인저랑 뭐가 달라서 난리들이야?”
“아니, 아이언맨 수트 하나 입었다고 곧장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게 가능해? 우주비행사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훈련이 필요한데. 게다가 이제는 비서(기네스 펠트로)까지 날아다니네?!”
“왜 저렇게 타노스랑 힘들게 싸워? 그냥 히어로들한테 아이어맨 수트 하나씩 입혀주면 되는거 아냐? 블랙위도우랑 호크아이는 허구한 날 맨몸으로 싸우는데.”
마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날래게 보고 와서 감격에 젖는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에게 찬물을 끼얹던 나였다. 내게 마블 영화는 그가 잘 해줄 때마다 선심 쓰듯 극장에 함께 가서 봐 주는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아이언맨은 말이지, 남자들이 가진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준 달까. 돈, 능력, 여자, 때깔 나는 아이언맨 수트까지 갖춘…”이라고 침 튀기며 설파하는 직장 동료들을 보며 몸만 커버린 ‘애어른’들의 딱한 판타지로만 여겼다.
그런데 연애시절부터 남편을 따라다니며 보다보니 원하든 원치 않든 내 안에도 마블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어느새 캐릭터의 이름은 물론이고, 그들의 탄생배경부터 능력치까지 습득했으며, <어벤져스 엔드게임>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까지 질질 흘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십년 간 봐 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왠지 아는 사람 같았고, 실제로 인류를 구하다가 장렬히 전사한 것처럼 느껴졌다.
극장을 나서며 전시되어 있는 아이언맨 대형 모형 앞에서 나는 얼큰해진 얼굴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짹짹거리는 초딩들 사이에서 굴하지 않고 포즈까지 취하며. 그리고 남편에게는 들키지 않으려고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안녕, 아이언맨, 안녕 캡틴. 삼천 만큼 사랑해요!’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의 영화는 단순히 자극적인 오락물이나 액션물이 아니었다. 인류애와 공동체주의 등 철학적 테마와 사회적 시사점이 담긴 십 년 간의 대서사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벤져스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후, 나는 마블 영화 시리즈를 꼼꼼히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서막을 올린 아이언맨1 부터, 캡틴아메리카의 탄생이 담긴 퍼스트어벤져, 천둥의 신 토르, 병맛의 탈을 쓴 명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그리고 앤트맨, 스파이더맨 같은 깜찍한 곤충 히어로들까지. 여태껏 나온 마블 영화를 모조리 섭렵했고,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져>의 엘리베이터 액션신 같이 각별히 마음에 드는 장면은 몇 번이고 되돌려 보았다.
이제는 마블의 세계관과 평행 우주에 대해서 남편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얄궂은 미소로 놀리곤 한다.
“싫다고 하더니 나 따라하네?”
그래, 사소한 취향 하나도 이리 쉽게 변하는데 이 세상에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역시 ‘절대’란 말은 절대 하는 게 아니다.
실은 진즉에 이 진리를 일깨워 준 게 있었으니 그 발음마저 향긋한 ‘커퓌(Coffee)’이다. 직장에서 카페인이 다량으로 필요하던 시절에도 커피를 즐기지 않던 나였다. 흡사 한약과 같이 쓰다 못해 흙 맛이 나는 아메리카노를 무슨 맛으로 먹는 건가 싶었다. 굳이 커피를 마셔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바닐라라떼나 모카라떼 등의 대타를 불러내어 달달한 시럽의 맛으로 겨우 삼켰다.
그런데 아기를 갖고 나니 별나게도 커피가 당겼다. 입덧으로 메스꺼운 속이 쌉싸름한 맛에 제법 다독여지는 느낌이었다. 그 때부터 원래 커피를 좋아하던 남편과 새로이 커피에 입문한 나는 서울과 근교에 위치한 유명하다는 커피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하필이면 카페인을 입에 대기 어려운 시기라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남편이 마실 때 옆에서 몇 모금 얻어 먹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커피를 향한 애정은 2020년 특수한 시기에 최대로 증폭됐다. 바깥은 나날이 위험해지고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상황에서 커피만이 조바심 난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물론 이 외에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일이 딱히 없기도 했다. 집안일을 앞두고 에너지를 모으려고 한 잔, 아이 낮잠 재우고 한 숨 돌리며 한 잔, 음악 틀어놓고 책 한 권 펼치며 한 잔. 커피는 어디에 갖다놔도 찰떡같이 어울렸다. 이제는 한 모금만 마셔도 ‘여기 커피는 어떻고 저기 커피는 어떻네.’라며 디테일한 평을 내놓는 나를 보며 남편은 또 깐족대며 말한다.
“커피 안마신다고 했던 게 누구더라?”
오늘도 나는 커피 캡슐이 가득찬 투명 케이스 안을 뒤적인다. 손가락 사이로 비엔나, 로마, 베네치아, 제노바가 차례로 스친다. 이국적인 도시 이름과 알록달록 곱게 뽑아낸 색감을 통해 그 맛을 짐작해 본다. 이 날의 날씨, 나의 기분, 함께 먹을 음식을 고려하며 어렵사리 캡슐 한 개를 고른다. 커피머신에 넣는다. 버튼을 누른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쪼로록 떨어져 잔 안에 모이는 진한 갈색의 방울 방울들. 집 안 가득 퍼지는 향내에 못 참고 얼른 입술부터 갖다댄다. 귀와 눈과 코와 입이 차근차근히 즐거운, 방구석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사치. 이것이야 말로 국어시간에 배웠던 ‘공감각’이란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 아닐까. 아, 오늘도 어김 없는 커피예찬!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뭐 어떠랴. 이해하지 못하던 걸 이해하게 되고, 관심 없던 걸 관심 갖게 될수록 봉오리 져있던 세상 하나가 톡 터지며 제 몸을 드러낸다. 그 날이 그 날 같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흑백들이 컬러로 보이고 그때부터 나의 시간은 쫀쫀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취향은 변하고 있다. 치약맛이 난다며 쳐다도 보지 않던 민트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내 돈 주고 사먹고, 따분하다고 느꼈던 클래식음악 추천 리스트를 기웃거린다. 디자인 위주로 구매했던 옷은 그 소재와 기능성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운동과 담 쌓고 살던 몸치가 일주일에 두 번씩 기어코 홈트를 한다.
취향이 변하지 않으면 사는 게 재미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를 한번 더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