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tter S Aug 01. 2021

남편이 백신을 맞았다.

“열 나기 시작하나봐. 나 열 좀 재어 줘.”

“머리가 아프다. 으슬으슬 춥고.”

“여보, 나 기력이 없어. 너무 힘드네.”

“아이고, 죽겠다. 좀 누워 있을게.”



남편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주사를 맞은 후 일박 이일 간 그는 얼추 한 시간 간격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아픈 몸과는 달리 입 만은 날랬다. 혈전이나 그 외의 혹시 모를 희귀 케이스에 대비하여 나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이어지는 앓는 소리에 이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나 아플 때도 그렇게 신경 좀 써 보지.’하는 괘씸한 마음에 몇 번은 못 들은 척 넘기기도 했다.



그가 갑작스레 백신을 맞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좀 있었다. 몇 주 전, 남편 회사에서 그것도 바로 옆 팀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업무는 일제히 멈추고 직원들에게 퇴근 조치가 내려졌다. 가까운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지침과 함께.

검사를 받은 남편은 곧장 집으로 귀가해 자가격리에 돌입했다. 나는 현관 앞에 위치한, 평소에는 잘 드나들지 않아 커튼 조차 달지 않은 작은 방을 깨끗이 치우고는 교자상 하나를 옮겨다 두었다. 전쟁을 목전에 둔 장군 마냥 비장하게.

남편은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 방에 갇혀 창으로 여과 없이 들어오는 초여름 땡볕을 맞으며, 내가 들여 보내는 밥을 홀로 먹고, 약간의(남편 피셜) 컴퓨터 게임을 위안 삼아 하루를 버텼다. 혹여 네 돌을 앞 둔 아이가 들어올까 봐 방문을 굳게 잠갔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빠’라면 꿈뻑 죽는 딸아이도 희한하게 ‘코로나’라는 한 마디에 그 쪽으로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으니.



“악!!!”

날이 밝았다. ‘음성’이란 문자를 받아들고 방 밖으로 유유히 나올 줄로만 알았던 남편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침착한 성격의 그에게서는 당최 듣기 힘든 데시벨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나는 놀라 달려가며 물었다.

“검사결과가 미결정이래.”

남편의 얼굴은 마스크로 반 이상 가려져 있었지만 나는 그 안에 든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놀람, 걱정, 실망, 황당, 수 년 간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일어난 사람만 알 수 있는 그런 어떤 것.

“그게 무슨 뜻이야?”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몰라. 일단 얼른 다시 와서 재검사 받으래.”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남편의 자가격리는 오늘로 끝이 아니라는 것.

서둘러 보건소로 출발한 남편을 뒤로 하고 나는 ‘미결정’이란 이 혼란스러운 단어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검체 채취가 잘못되었거나, 결과가 양성과 음성의 경계값일 경우 미결정이 뜨니 이럴 경우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결국 남편의 자가격리는 회사 직원들 중 유일하게 하루 더 연장되었고, 나는 재검 결과에 따라 나올 수 있는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보며 대비해야 할 일을 가늠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음성’이라는 전화 한통과 함께 한숨을 돌렸다.



  이후로 자가격리에 질려버린 남편은 예비군/민방위 대원에 대한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반색하며 접종 사이트가 열리기 무섭게 예약을 마쳤다. 물론 백신을 맞아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접종  이틀 동안 미열과 몸살 기운으로 힘들어 했고, 그만  없이 넘어가나 싶을 즈음에는 깨질 듯한 두통으로 혈전검사까지 받았다. 다행히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여간 신경이 쓰이는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남편이 백신을 맞고 난 다음 주에는 친정 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차례로 접종을 맞았다. 양가 어른들은 약간의 피로감 외에 큰 증상은 보이지 않았고, 아이 선생님은 지독한 고열과 근육통으로 며칠씩 집에만 누워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 어딘가에서는 젊을수록 면역력이 좋아서 더 아프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안아프면 나이 든 거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떠돌았다.



국내 백신 보급이 지연되면서 불안하긴 했지만 적어도 손 놓고 당하기만 하던 때의 막막함과 무력감은 옅어져 갔다. 백신 접종률이 상승하면 곧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품어 보았다. 그러던 찰나, 코로나 확진자 수는 비웃기라도 하듯 매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델타변이를 선두로 한 재확산이 예상된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게다가 이 변종에게는 힘겹게 맞은 백신도 무력하다는 이야기까지. 올해 말에는, 못해도 내년 초에는 마스크를 벗고 활보할 수 있겠지 싶던 기대를 여실히 뭉그러뜨리는 나날들이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가정보육이 예정된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다음주에 있을 물놀이 행사(아마도 취소되겠지만..) 이야기로 입이 분주하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엄마와 옥신각신 집에서 부대낄 우리 망아지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내일은 문방구에 들러 집콕 놀이템이라도 좀 사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순간, 마스크 없이 휑하게 드러난 윗 층 할머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에구머니, 마스크를 까먹었네!”라며 우리 아이에게 이런저런 인사말과 함께 이야기를 늘어놓는 주책맞은 모양새에 짜증이 밀려왔다. 잔뜩 날이 서고 움츠러든 나는 할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 눈길 한 번 내어주지 않고 도망치듯 우리 층에서 내려 버렸다.




 


이전 12화 취향이 변해야 사는 게 재미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