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우리집에는 지독한 복숭아 귀신이 둘이나 있어서(나와 우리 딸) 여름 내내 복숭아를 쟁여놓고 지냈다. 찬바람 슬슬 불어오는 걸 보아하니 올해 마지막 복숭아가 되겠구나 싶어서 서둘러 구하러 나갔다. 시장 한 켠, 직접 농사 지은 복숭아를 그 날 바로 따와서 파는 집인데 한 계절 동안 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다행히 끝물을 맞이한 복숭아가 용케 나와 있었다.
구태여 따라온, 우리집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차세대 복숭아 귀신이 차에서 내리며 마스크를 단단히 쓴다. 조금의 틈이라도 벌어질까 와이어를 콧등에 바짝 밀착시킨다.
“아이구, 쟤 좀 봐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마스크 쓰는 것 좀 봐.”
나이 지긋하신 주인 할머니께서 감탄하신다.
“요즘 아이들은 당연한 듯 다 그러더라구.”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의 따님이 한 마디 거든다.
“아이구, 기특하네.”
할머니는 신기한 듯 바라보며 아이구, 아이구를 연발한다. 야물딱지게 제 몸 챙기는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나의 미간은 웃는 듯 우는 듯 괴상하게 움직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출할 때 미세먼지가 어떤지부터 물어보던 아이가, 요즘에는 코로나가 어떤지,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괜찮은지, 어린이집에는 가도 되는지부터 물어본다. 일반 마스크와 KF 마스크를 구분하여 상황에 맞춰 쓰기도 한다. 제일 먼저 배우는 말 중 하나가 미세먼지와 코로나이며, 나갈 때 옷을 입고 신발을 신 듯 마스크를 챙기는 요즘 아이들이 가엽다. 물론 태어나서부터 혹은 기억이 생길 무렵부터 그랬으니 그게 요상한 일인 줄을 모른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에 마음이 복잡해져서 이따금 나는 울고 싶어진다.
올해 마지막 복숭아를 덤까지 보태어 까만 봉지 가득 담아주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정겹다. 물론 하얀 천조각이 반 이상을 가린 그녀의 얼굴을 온전히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고우실 거라고, 복숭아를 키우는 사람이 곱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시장 어귀를 나섰다.
그러고보니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비단 복숭아집 할머니 뿐임이 아님을 깨닫는다. 우리 아이는 코로나19가 터지고 난 이후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때문에 나는 원장선생님을 비롯해 담임선생님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마스크 위로 빼꼼히 보이는 이마와 눈 모양, 헤어스타일 등으로 전체 얼굴을 짐작해 볼 뿐이다.
나는 우리 딸을 돌봐 주시는 선생님의 얼굴도 궁금하고, 등원시키며 매일같이 보는 ‘수민이엄마’의 얼굴도 궁금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2층 새댁의 얼굴도 궁금한데 그들도 그럴까? 문득 마스크 속 얼굴이 궁금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팬데믹 시대가 열린 지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간다. 모두가 불편함과 어려움을 토로하고, 그 이상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들에 고통을 받기도 한다. 물론 그 틈바구니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희한한 장점들도 있긴 하다.
타인과 거리를 두면서 꼬박꼬박 손을 씻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등 개인위생에 신경쓰니 돌림병이 잘 걸리지 않는다. 어린이집에서 감기에 옮고 옮기며 문턱이 닳도록 소아과에 드나들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사라진 것이다.
마스크를 쓰는 일은 또 어떠한가. 집에 두고오는 일이 허다해서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익숙치 않은 나의 시큼한 입냄새를 마주하고는 오만상을 짓기도 하고, 더울 때나 운동할 때 숨이 막혀서 내던지고 싶던 것이 어느새 적응이 되고 있다. 오히려 메이크업을 안 한 날에는 고마울 지경이다. 급할 때 눈곱만 적당히 떼어낸 후 마스크로 가리고 잠깐 외출할 수도 있으니.
게다가 여행, 외식, 모임 등 외부활동이 줄어드니 돈은 굳고, (밉든 곱든) 가족 간 정은 쌓인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남편은 아이와 어마어마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데, 똥손도 그런 똥손이 없는 그가 딸의 머리를 묶어 줄 수 있을 정도의 스킬을 획득했다면 말 다 한 게 아닌가. (우리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출산할 때 이리저리 나부끼던 나의 긴 머리를 대충도 묶어주지 못해서 욕 꽤나 먹었던 위인….)
다들 굳이 안 겪었으면 좋았을 장점들을 찾아내면서 불안과 절망을 달래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회사에 나갈 수 없으면 줌 켜고 재택근무를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할 수 없으면 유튜브 영상을 따라 홈트를 하고, 밖에서 먹고 마실 수 없으면 어설프게나마 홈카페라도 차리면서.
나 역시 뭐라도 하고 싶어 작년 가을 무렵 시작한 글쓰기가 한 바퀴를 꼬박 돌아 도로 가을이 되었다. 새로운 시대 앞에 변해버린 일상과 에피소드들을 기록하면서 방구석 육아를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고, 나와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고통과 끔찍함 속에서도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금씩 더디게라도 나아지기를, 이 긴 터널도 종국에는 끝이 나기를 바라며 이쯤에서 글을 맺는다.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내년 여름 제철을 맞아 다시 나오실 복숭아 할머니의 해사한 얼굴을 기대하면서.
올 한 해 싸고 맛있는 복숭아 잘 먹었어요. 내년에 다시 뵈어요. 그 때는 꼭 할머니 얼굴 마음껏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