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운 건 자신을 의심하는 일-
나는 ‘나’로 태어났지만 거울 속에서만 나를 볼 수 있다. 요즘은 동영상 촬영을 통해서 내 모습을 찍어 볼 수도 있지만 그것 조차 다른 도구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것이다. 어느 영화처럼 죽어서 영혼이 된다면, 그때쯤에는 나라는 껍데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죽기 전까지는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온전히 나의 시선으로는 평생 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육신을 알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내 속내를 제대로 알기는 그래서 더 어렵나 보다. 나를 있는 그대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라서 매력적일 수 있는 겉모습과, 단점이면서 장점이기도 했던 내 속의 일부를 온전히 수용할 수 있었다면 삶은 더 풍성하고 온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2000년도 초반에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어렵게 접속했다. 사진을 별로 찍지 않은 내게 그나마 대학시절의 사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디를 찾고, 비밀번호를 찾고 10년이 훨씬 넘는 기억을 더듬고 더듬는 과정이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내용은 남아 있었다. 화질이 좋지 않아 흐릿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오롯이 멈춰 있었다. 사진을 정리하고 그때 써놓았던 낯 부끄러운 일기들을 보았다. 지금 보면 이불 킥 할, '척' 하고 싶었던 과거의 내가 있었다.
졸업을 맞이할 시기 매일이 얼마나 불안하고 괴로웠던지! 복잡하게 뒤엉킨 두려움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숨고 있었다. 매일 우울했고 모든 게 무기력했다. 도망가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나만큼 나를 미워했던 사람이 이 세상에 없었던 시기였다. 내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심각하게 땅을 파고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내 기억 속에 그때의 나는 음침하고 우울한 아이였다. 다른 사람에겐 쉬운 게 되지 않은 못난이 같았다. 그래도 못난이는 계속 살았고 나이를 먹었다. 기억 속의 나의 20대는 부끄러운 기억과 풀리지 않은 우울의 덩어리가 전부였다. 이런 내 생각을 바꾼 꿈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6년 12월 13일의 꿈
누군가랑 내 앨범을 보고 있다.
10년의 동안의 나라고 한다.
사진 속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나는 내가 이렇게 예뻤었다고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누군가와 앨범을 보고 있다. 앨범이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어져 버린 시대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부모님들은 꼭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 간직했다. 서랍장 한켠에 두고 내 손으로 직접 펼치며 보는 앨범은 요즘처럼 사진이 여러 매체로 저장되는 시대에는 낯선 감촉이다. 앨범의 주인공은 10년의 동안의 ‘나’다. 사진 속 나는 밝게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은 무척 보기 좋았다.
내 손으로 직접 넘기며 눈으로 내 모습을 담아 본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예뻤었다고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기억했던 부정적인 모습 안에는 분명 이렇게 예뻤던 모습도 있었고, 못난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앨범은 버티며 살아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10년 동안의 내가 10년 후의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억울함과 아쉬움이었나 보다. 그 시간들에 다른 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선물을 준비한 사람은 조금은 성장한 나다.
내게 시간은 정말 약이었고, 모두에게 공평히 처방받은 시간이라는 약이 효과를 발휘하는 동안 나도 조금 성장했다. 물론 남들보다 더뎠고, 수없이 멈췄으며, 주저앉았다. 그렇게 버티고 살아온 부분에는 작게나마 굳은살이 박였다.
예전에는 방으로 들어가 우울감에 젖어들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회복이 빨라졌다. 우울하다면 나가서 걸어 본다. 공원을 걷다 보면 계절마다 다른 것들을 느낄 수 있다. 가만히 있기보다는 몸을 움직인다. 청소를 하기도 한다. 오늘의 할당량을 초과한 카페인으로 더 이상 먹지 못하는 커피에 대한 아쉬움이 들 때면 내일 먹을 커피 한 잔을 생각해 본다. 스스로 찾는 죽음이 아닌 인간의 유한한 삶 속에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럴 때 삶은 더 생생해진다. 꿈속의 앨범에 정확히 나의 어떤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었던 건지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사진 속에는 이런 모습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시간은 지났고 나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던 20대의 비하면 어쩌면 지금은 더 열악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가진 게 없는 건 똑같은데 나이는 더 들었으니 말이다! 20대와 30대는 나아지기도 더 나빠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달랐고, 더 살아간다면 40대는 어떻게 다를지, 또 어떤 앨범을 보게 될지 궁금해졌다.
일상에서 자신을 가장 의심하고 못난이라고 비난했던 건 나였다. 남들에게는 바로 하는 응원이나 여유를 자신에게는 쓰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10년 전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로또 번호? 그 딴 회사는 때려 치라는 조언? 악착같이 돈을 벌라는 충고? 그 딴 놈 만나지 말라는 설교? 아마 그 어떤 것을 들어도 나는 똑같이 했을 것이다. 그 실수의 시간을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일 먹을 커피 한 잔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10년을 버텨운 나에게 꿈처럼 말해주자. 예쁘다고! 지나온 시간 나도 몰랐었지만 예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