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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vitia J Jul 15. 2024

'나스타샤' 다시 쓰기_If not

멜리사가 조지를 떠나지 않았다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멜리사는 물었다.

“조지, 결혼은 한국 여자하고 할 거야?”


나는 웃으려고 노력하며 간신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너와 결혼할 거야 멜리사"


멜리사와 사랑은 우정에 가까웠고 세월과도 같았다. 타오르지 않았지만 자연의 여신으로 그 품 안에서 따뜻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오랜 타국 생활은 더 이상 외부인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멜리사는 몬트리올에 맥길대학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맥길 대학 교수로 지원을 한다. 현재 토론토 대학 학장은 아쉬워했다. 상당히 큰 변화가 있었다. 웰드릭 상공회의소장의 딸이었던 멜리사. 멜리스의 아버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친구를 잃고 아들을 얻었다”라고 내 눈을 피해버렸다. 인종이 다른 사위를 얻게 되다니 내 결정에 적지 않게 못마땅했다. 상관없었다. 멜리사는 내편이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듯이 흘겨보면서 볼에 뽀뽀를 한다. 프랑스와 미국 그 어디에서도 친구 하나 만들지 않았던 나는 이제야 편안함을 느꼈다. 지독한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거리를 헤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예술사에 대한 성취는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한다. 물론 한국의 어머니는 멜리사 아버지보다 더했다. 쓰러져 누우셨다. 어쩌겠는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대장님 부인이신 어머니의 꾀병에 꿈쩍도 안 했다. 


맥길 대학은 사실 유일하게 프랑스어로 가르치는 교수를 찾는 곳이다.  이 점이 마음에 안 들긴 했다. 프랑스어를 많이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모국어인 한국어를 잊어가는 만큼. 다시 프랑스어 사전을 들고 다녔다. 종종 프랑스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했고 주변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나는 멜리사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한 의지를 변명하기 위해 잘못된 결정을 탓한다. 선택은 잘못한 적이 없다. 그것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나약한 자신만 있을 뿐이다. 곧 나는 프랑스어 실력을 회복했고 멜리사와 몬트리올에 간다. 웰드릭에서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 후에 노인의 백스탑에 몰려가서 잔뜩 먹고 마셨고 웰드릭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데려간다고 장난기 섞인 타박도 받는다. 멜리사는 나를 바라보고 만족해했다. 웰컴 웨곤을 들고 와준 그 만남을 시작으로 계속된 세월이 결실을 맺었다. 


몬트리올로 간 우리는 세 명의 아이를 얻었다. 멜리사의 아버지는 손자들에게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을 잘 자랐다. 멜리사는 정신과 의사가 된다. 멜리사 부모님이 손자들을 다 키워줬다. 여전히 나는 그렉과 캐나다의 이름 없는 호수를 걷는다. 멜리사는 결혼이라는 법적 계약과 아이로 행복한가 보다. 그렉과의 시간에 참견하지 않는다. 함께 있을 때는 함께여서 웃었고 각자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렉이 몸이 안 좋아져서 같이 지낸다. 가끔 꿈을 꾼다. 동부 코네티컷에서 서양예술사를 고대에서 현대까지 철학으로 해설하겠다는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젊은 조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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