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나를 몰아넣다.
우선은 비행기표를 편도로 끊고 창원에서 제주로 향했다. 그 당시의 나는 돈이 많이 없었다. 퇴사를 하고 난 뒤에 여기저기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국내여행도 여기저기 다녔기에 돈을 왕창 써버렸다. 그동안에 많은 소비활동을 했기에 당연히 돈도 많이 들어갔다. 돈 많은 백수였던 나는 이제 돈 없는 백수가 되어버렸다.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는 단돈 54만 원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살아가려면 매일 유지비가 필요했다. 숙소를 잡아야 했고, 매일 밥을 먹어야 했다. 숙소비가 3만 원, 식사비가 3만 원(1끼에 1만 원 x3)이라고 가정하면 매일 최소 6만 원의 비용이 필요했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최대 8~9일 정도밖에 생활할 수 없었다. 최저로 잡은 게 저 정도였다. 일단은 돈을 벌어야 했다.
최대한 비용을 아껴야 했기에 비용이 저렴한 곳 위주로 방을 알아봤다. 그런 면에서는 게스트하우스가 최적의 장소였다.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게하 안에 카페 또는 라운지가 있는 곳 위주로 최대한 알아봤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조건이 모두 알맞은 장소를 한 곳 발견했다.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게하 라운지에서 카페와 식당을 같이 운영하고 있어서 하루 종일 묵어도 손색이 없는 곳으로 보였다.
제주도라는 낯선 공간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나는 하루 종일 게하 안에 머물면서 일을 했다. 돈을 벌어야만 하는 환경에 놓이니 자연스럽게 일에 몰입이 되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극한의 힘을 발휘한다고는 하는데. 나도 극한의 상황에 의도적으로 나를 몰아넣으니 <집에서의 게으르고 나태한 나>에서 벗어나서 초열일을 하는 <과거 리즈시절 일잘러인 나>가 되어갔다. 환경설정이란 참으로 놀랍다. 매일 늦잠을 자고 게으름을 피우던 사람을 한 순간에 바꿔버리니 말이다.
며칠 동안 라운지에서 매일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보니 사장님도 신기했나 보다. 3~4일째가 되는 날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서 왔는지 등에 대해서. 그러면서 사장님과도 조금씩 친해져 갔다.
내가 머문 게스트하우스는 사장님과 가족분들이 같이 운영하는 그런 곳이었다. 가족이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니. 되게 보기도 좋고 따뜻해 보였다. 매일 게하 안에서 밥을 먹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장님 가족과 식사도 함께하게 되었다.
게하에는 사장님 가족 외에도 일을 도와주는 스텝이 여러 명 있었다. 보통은 가족분들과 스텝들이 함께 식사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도 어김없이 혼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사장님의 어머님이 이리 와서 같이 밥을 먹으라고 얘기해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선뜻 선의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일 텐데. 그리고 돈이 없는 처지였기에 이러한 베풂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나도 더 베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성과는 자연스럽게 매출로 연결이 되었다.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했다. 오늘 당장 일을 해야 내일도 제주도에서 살 수 있는 제주 하루살이였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일했다. 이러한 날이 반복되다 보니 조금씩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같은 방에 머물게 된 한 게스트가 같이 게하 안에 있는 작은 바에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매일매일 일만 하는 생활이 조금은 지루했던 나였기에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운이었는데 나보다 2살 동생이었다. 운은 굉장히 쾌활하고 여행 경험이 많아 보였다. 게하 안의 작은 바는 말 그대로 바의 분위기였다. 게스트끼리 얘기를 나누며 노는 장소가 아닌 각자 여행 온 손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운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더니 다 함께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운의 거침없고 사교적인 행동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렇게 제각기 흩어져있던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