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것에 큰 의미를 안 두려고 노력한다. 진정한 친구라면 이래야지 저래야지 이런 생각 때문에 오히려 관계가 힘들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 친구에 대한 생각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야지, 이 정도다.
친구는 어렵다. 상황이 달라지면 관계도 변하기도 한다. 아무리 가까워지려 애써도 상대방 여건이 안되거나 때가 안 맞으면 그 노력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와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사실 로또 맞는 것보다 희박하다. 20대 때는 그걸 몰라서 무작정 애쓰다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혼자 실망하고 슬퍼하는 '친구 없어 외로움의 굴레'에 스스로 빠져들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친구 없어도 꿋꿋하게 살기' 버전으로 살아가다가도 훅, 치고 들어오는 일들이 있다.
야밤에 집 앞까지 와서 쥐어주고 가는 미나리 한 단 같은 거.
내 주변 사람들은 거의 유자녀 여성이라 하루가 눈 돌아가게 바쁘다. 여유 시간이 잘 없다. 애가 아프거나 하면 아무리 오래전부터 계획한 만남이라도 어그러지기 일쑤다.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미치도록 만나고 싶다! 하지만 마음과는 별개로 상황이 돌아갈 때가 많다.
그런데 애 키우랴 일하랴 며느리노릇/딸노릇/엄마 노릇하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한 벗이, 텃밭에서 직접 캔 미나리를ㅡ무려 씻기까지 해서ㅡ우리 집 앞에 들고 왔을 때. 별말 없이 씩 웃으며 미나리가 가득한 비닐 봉지를 손에 쥐어주고 세상 쿨하게 떠날 때.
이 대가 없는 사랑(감히 이렇게 말해본다)을 받은 나는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와, 내게 이런 친구가 있다니 인생 좀 잘 살았나, 싶으면서 자존감이 급격히 차오른다.
빈손으로 털레털레 나온 나에게 이렇게 애씀을 나누어주는 벗 덕분에 또 인간에게, 친구에게 기대하게 된다.
그래. 이건 미나리가 아니야. 사랑이야. 그러니까 설레는 것도 당연하지.
설렘은 젊은이의 영역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아줌마가 돼도 또 나름의 설렐 일이 이렇게 있더이다.
어른은 이렇게 속절없이 미나리에 들떠버린다. 친구라는 건 정말 아름답고 좋은 거였다. 꿋꿋하려고, 쿨하려고 애쓴 거 다 소용없다. 동네에 친구 있는 거 최고다.
아이고, 이 밤 설레서 어떻게 자나. 맥주라도 한 캔 따야겠다. 으른의 자기 축하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