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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Dec 19. 2023

그립톡 모르는 중년

요즘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축제가 연일 열린다.

촌에 사니까 이런 재미가 있다. 우리 지역,  옆 지역, 그 옆 옆 지역에서 겨울 테마 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도 오고 불꽃놀이도 하고 난리가 났다.

지난 토요일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지역 축제를 휩쓸고 다녔다. 어린이를 위한 마술 공연이나 뮤지컬, 태권도 시범 공연에 아이들도 나도 흠뻑 빠져 즐겼다. 특히 이번 축제엔 부스마다 공짜 체험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어 부스 한 바퀴 돌고 나니 양손에 지역 특산품이 가득했다. 어린이들에게만 나눠주는 들꽃 화분도 있고, 물레 돌려서 밥그릇 만들기 체험, 선비 옷을 입고 화선지에 먹으로 자기 이름 쓰기 체험 등 애들이 혹할 만한 것이 많았다. 애들 손에 이끌려 부스들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행사장 관계자가 다가와 배우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지금 포토부스에서 사진 찍으시면 지역 캐릭터가 그려진 그립톡을 드려요. 그립톡이 뭐냐면요, 핸드폰 뒤에 붙여서 손에 걸 수도 있고 영상 같은 거 보실 때도 편하게 쓸 수 있는 장식품이에요. 동그랗게 생겼는데..."

여기까지 관계자가 설명했는데 거기서 그만 내가 웃음이 빵 터져 버렸다.

"여보, 크크크크그키기키기긱, 당신 지금 그립톡 모르는 사람 취급받고 있어, 푸화하하하하하하학!"

내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너무 심하게 웃으니까 관계자도 머쓱하게 웃으며 설명을 멈췄고 원래 만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배우자는 '또 이상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졌군, 저 사람'하는 표정으로 애들을 다음 부스로 끌고 갔다.


내가 웃음이 터진 연유를 생각해보자니 이렇다. 내 배우자는 최신 전자 기기, 노트북이나 핸드폰, 워치, 탭 같은데 관심이 워낙 많고 관련 지식이 해박하다. 지금도 Z플립 신상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바로 폰 바꾸고 워치도 티타늄인지 뭔지로 만들었다는 워치 어쩌구 프로로 바꿨다. 그전 쓰던 폰이 자꾸 먹통이 되어 바꿀 때가 되서 바꾸긴 했지만 아무튼 배우자는 온갖 핸드폰 관련 액세서리에 사은품에 자급제에 요금할인을 눈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알아봤기에 폰 관련 분야에서 척척박사 학위를 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립톡도 당연히 뭔지 안다. 그런데 행사 관계자는 우리가 애들을 데리고 있는 중년 부부니까 응당 그립톡 같은 신문물을 모를 줄 알고 긴 설명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폭탄같이 터졌던 웃음이 멈추고 나서, 이게 과연 웃고 치울 일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립톡 모르는 사람 취급당한 게 왜 이렇게 웃겼을까? 근데, 왜 다 웃고 나니 은근히 기분이 나쁠까?


행사장 관계자는 선한 의도로, 그립톡을 우리가 모를까 봐 설명해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표정과 말투, 당연히 당신들은 그립톡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것이다 하는 태도가 나에게 웃음 뒤 찜찜함이라는 작은 얼룩을 남겼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과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느낀, 20대 초반인 듯한 그 스텝의 태도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전제는 이러했다.

<나이 든 사람은 그립 톡 같은 신문물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없을 것이다.>

물론 넓은 범위에서 그의 전제는 사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립톡 모르는 게 흉도 아니고, 애초에 반드시 알아야 되는 지식 범위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전제가 '어린이는 매사에 서툴다'나 '나이 든 사람은 어둔하고 느리다' 같은 세상의 무심한 편견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확대 해석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사회적 약자-어린이, 노인, 장애인-로 여겨지는 사람이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비장애인이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설명은 '행사 참여하시면 지역 특산품이 그려진 선물을 드려요'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거기서 '선물이 뭔데요?'하고 상대가 물으면 '그립톡이에요, 핸드폰 뒤에 붙이는'같은 설명으로 이어질 것이 예상돼 번거로워서 그랬을까.


또.

 나는 내가 '그립톡 모르는 중년'으로 여겨진 게 왜 찜찜했을까.

나도 사실은 그가 속해있는 그룹, 그러니까 20대 초반의 젊은이 그룹에 속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 아까 싶어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젊은이 같아 보였으면 그가 나에게 그립톡의 기능을 설명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결국 나는 나의 나이 듦과 그에 따른 외모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터뜨렸던 그 폭발적인 웃음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반쯤은 누구보다 그립톡을 잘 알고 있을 배우자에게 그걸 설명한 관계자의 모습이 웃겨서이기도 했지만 반쯤은 자조적인 웃음이기도 했다.

아. 이제 우리는 누가 봐도 현대 문물을 잘 모를 것 같은 중년 부부구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 되자 배우자에게 물었다. 당신 아까 그립톡 설명 들을 때 기분 어땠냐고.

단순하고 쿨한 배우자는 '그냥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네'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그의 설명 때문에 느낀 복잡한 모욕감을 설명하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한다. 황희 정승이야 뭐야.


맞다. 행사장 관계자는 자신의 본분을 아주 열심히 다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아주 조그만 편견의 조각이 나를 찔렀고, 그 찔린 구멍을 통해 내 마음에 있는 허영과 욕심 비죽이 터져 나온 것이다. 젊어 보이고 싶은 허영. 뭘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싶은 욕심.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구태여 과도한 친절을 베푼 젊은이의 시혜적인 태도가 삼박자를 맞추면서 내 마음에서 널을 뛰었다. 그 널뛰기가 잠잠해지기까지는 하룻밤이 꼬박 걸렸다.


글로 써 보면 내 마음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도 있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게 되니까 이 모든 생각의 실타래를 일단 공책에 썼다. 그러고 나여러 가지가 조금쯤 인정이 되었다.

내가 인정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중년의 나이이며 외모 또한 그에 준한다.

하지만 젊어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부끄럽지만 당연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편견의 일부를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은 과도한 친절을 베풀지 않도록, 특히 뭔가를 베풀 때 시혜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과도한 친절 속에서 말을 길게 하다 보면 결국 그 말 안엔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완고함의 조각이 들어갈 수 있으니.


타인의 생각은 바꿀 수 없다. 그나마 다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마음뿐이다. 나의 겉치레도, 과욕도 나만이 갈기를 살살 쓰다듬어 매끈하게 눕힐 수 있다. 이럴 때 숫타니파타의 문장을 다시금 되뇌어보는 것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누가 뭐라고 하든 작은 말들에 턱턱 걸려 넘어지거나 마음 다치치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도 작은 말로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고 싶다. 내 안의 가시가 아직은 너무 많아 세상의 작은 돌부리에도 자주 걸려 넘어지고 머리가 뜨거워지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겨우 마음을 조저앉힐 수 있다.


 종지 같은 사람 말고 태평양 같은 사람이 되어서 세상이 내게 줬고 주고 줄 여러 일들에 좀 단단하지만 유연하게 서 있고 싶다는 생각을 인삼 캐릭터가 그려진 그립톡을 달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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