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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an 08. 2024

걸으면서 얘기하시죠

요즘 허리가 아파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허리 통증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 사람을 만나려면 어디로든지 운전을 해서 약속장소로 가야하고, 카페에 앉아 대화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의 나는 운전하려 차 좌석에 앉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찌릿하게 올라오는 요통을 참으며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브레이크를 밟아야한다. 운전을 하고 차에서 내리면 엉덩이 부분이 묵직하니 아프다.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도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카페의 도무지 앉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딱딱하고 심미성만 고려한 의자는 형벌이나 마찬가지다. 의자에 앉은지 30분만 지나면 대화에 집중이 잘 안된다. 일어나고 싶다. 걷고 싶다. 결국 카페에서 나 혼자 일어났다 앉았다하며 대화한다. 서로 참 무색하다. 나를 잘 모르는 상대는 내 이야기가 재미가 그렇게 없나, 할 것이다.      


1시간쯤 고문같은 고통을 참고 견디다 결국 벌떡 일어나 '걸으면서 이야기하시죠'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만남이 파투난다. 상대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뜻으로 인지하니까.      


올해 출간하는 새 책 원고를 쓰려 노트북 앞에 앉아도, 앉는 게 부담돼서 자꾸 집중이 깨진다. 한참 몰입해서 쓰다가도 허리 통증이 툭 치고 들어온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하며 타이핑을 하면 애써 붙잡았던 날카로운 문장들이 날아가버린다. 김영하가 장편소설 집필할 때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소설 속 세계에 빠져 하루종일 쓰고 또 썼다는 글을 읽으면서, 제일 부러웠던 건 그렇게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김영하의 척추상태였다.               


결국 며칠 전에 허리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런데 의사가 하는 말. 그렇게 심한 거 아니에요. 골반이 좀 비뚤어졌을 뿐.     


아니, 심한 거 아닌데 왜 이렇게 일상생활이 힘든 건지. 요즘은 의자만 봐도 무섭다. 앉는 행위가 연상되는 모든 사물이 무섭다.           


어디로든지 걷고 싶다. 걸어가고 싶다. 찬 바람을 맞으며, 바람을 견디며 멀리 멀리 걷고 싶다. 걸으며 대화하고 싶다.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오늘도, 꼭 만나야하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먼저 선수쳤다. 철탄산에서 걸으면서 얘기하시죠!                

그렇게 얘기하면 다음에 만나자는 사람도 있고, 마침 산에 가고 싶었는데 잘됐다는 사람도 있다. 잘됐다고 말하는 사람만 만난다. 이렇게 또 인간관계가 체 쳐지는구나, 생각하면서 등산화 끈을 단단히 올려 묶었다.   


그런데 산에서 사람 만나는 거, 꽤 매력있다. 카페에서 둘이 얼굴 마주보고 앉으면 침묵이 부담스러워서 아무말이나 애써 하는 스타일인데 산에선 안 그래도 된다. 얘기하다가 바윗길 오르느라 힘들면 서로 묵묵히 걸어도 마음 불편하지 않다. 우리 동네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과 데크길이 조화를 이루면서 허벅지 빡 힘 주게 했다 느슨하게 풀어줬다 알아서 조절해주는 좋은 산이다. 산에서 대화하면 왠지 내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걸으면서 내 안의 더럽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바람에 잘 흘러가준다.      


이렇게 산에서 사람을 만나다 어쩐지 마음 맞는 분이 생겨 수요일마다 산에서 얘기하는 둘만의 비밀클럽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상황에 따라 멀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는게 새삼스럽다.


 일부러 요즘 잘나가는 카페를 찾아가 비싼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이 있으니 좋다. 동네 앞산이라 등산복 챙겨입을 도 없다. 애들 등원시키고 모자 푹 눌러쓴 뒤 집을 나선다. 산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사계절을 같이 걸었다. 산은 매주 가도 새롭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옮아갈 땐 새로 피어나는 꽃사진 찍느라 더디게 더디게 정상에 올랐다.       


요 몇 달은 추위와 독감때문에 서로 애기 데리고 있느라 못 만났지만 봄부턴 다시 같이 걸을 거다. 모기 기피제 온 몸에 뿌리고 새순이 오르는 산을 걸어야지. 생나무 냄새 새로 돋는 풀냄새 생각하니 설렌다. 지금 당장 팔 앞뒤로 흔들면서 기운차게 산에 올라가고 싶다(현실은 만화책보며 낄낄거리는 첫의 간식을 챙겨주고 있지만).               


아이구. 그런데 대체 이놈의 허리는 언제 좀 나아지려는지. 요가 선생님은 다 코어근육이 부족해서 그런거라는데 이 글 쓰고 얼른 복근 운동 한세트나 해야겠다. 이놈의 거 쓰는 데도 몇 번 자세를 고치며 통증을 참았는지 모른다. 허리 아픈 거, 진짜 존나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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