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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an 22. 2024

평일에만 배가 아픈 너에게

월요일이 되자 너는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 한다.


자세히 세어 보지는 않았으나 대략 스무 번도 넘게 투정 섞인 목소리를 나를 향해 던지고 있다.

네가 배 아프다는 말을 했을 때 나에게 든 감정은 걱정이나 염려, 안타까움이 아닌

얘가 학교가 가기 싫어서 저 소리를 또 시작했구나. 하는 거다.


주말 내내 물놀이하고 풀쩍풀쩍 날뛸 때는 단 한 번도 아프지 않던 배가 왜 월요일 아침만 되면 이다지도 아프단 말이냐.

밥을 차리며 건성으로 그래, 그래 어쩌노 하자 이번엔 책에 베인 데가 너무 아프다고 우는 소리다.

내 안에 남아 있는 친절함을 모두 끌어모아 그저께 사 둔 티니핑 반창고를 세 개나 붙여주었다.


아침으로는 야채를 싫어하는 너를 위해 온갖 재료를 아주 잘게 다져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만들어 팬지꽃이 그려진 접시에 담아주었다.

너는 밥상을 보자마자 먹기 싫다, 이 밥 싫다고 원망의 말들을 던진다. 그러다 물병을 보더니 마음에 안 드는 물병에 물을 담아 주었다며, 이 물병 학교에 가져가면 친구들이 놀리는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면서, 하며 나의 미욱함을 탓한다.

그리고 또 배가 아프다고 한다.


등교 시간이 가까워져 마음이 급해진 나는 양말장 앞에 네가 좋아했던 티셔츠와 양말을 꺼내 놓고 이거 입어, 하니 너는 급기야 울면서 바닥을 뒹군다. 이 옷 싫어, 나 이제 이 옷 싫어졌는데, 나한테 안 어울린다고. 엄마는 내 마음을 하나도 몰라, 하면서 발버둥치며 운다.


나는 결국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학교도 안 가고 누워서 만화책이나 보는 일이냐? 엄마도 엄마가 해야 할 일이 있듯이, 너도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오늘 네가 해야 할 일은 학교에 가는 거야. 지난주에도 가기 싫다고 해서 일찍 데리러도 가고, 검도도 가기 싫다 해서 검도도 끊고 그랬는데 왜 맨날 배 아프다는 소리야. 이제 엄마는 너 배 아프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 빨리 밥 먹고 학교 갈 준비 해."


너보다 덩치가 두배는 큰 엄마가 소리를 꽥꽥 지르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너는 풀 죽은 얼굴로 밥을 한 번 떠 씹더니 못 먹을 걸 먹은 표정을 한다.


이 실갱이를 하다 겨우 너를 학교에 보내고, 창 밖으로 네 모습을 내려다본다. 실내화가방을 질질 끌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떼어 놓는 너의 뒷모습. 울음이 채 삭지 않아 들먹거리는 어깨.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왔다.


선생님도 무섭고, 마음 붙일 친구도 많지 않다는 너의 이야기를 좀 더 차분히 들어줄 수 있었다면.

지각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렇게 안달복달했을까.

오늘 네 이야기를 들어주면 혹여나, 툭하면 학교 안 간다고 할까 봐, 그렇게 네가 나약한 아이로 클까 봐 엄마는 지레 겁먹었던 거야.


배가 아프구나, 그래 학교 가는 거 참 힘들지, 하며 엉덩이라도 툭툭 두드려줄 수 있는 아침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 엄마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나보다.


그래도 네가 학교 가 준 덕분에 엄마는 무거운 육신을 이끌고 요가원에 갈 수 있었어.


참 고맙다.

고오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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